회전 초밥

by GZ

색색의 띠를 두른 접시가 돌아간다. 정갈하게 손질된 생선에서는 윤기가 흐르고 있다. 조명까지 더해진 초밥은 여느 패션쇼의 모델을 방불케 할 만큼 눈부시다.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한 색감,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빨리 맛보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무엇을 먼저 집어야 할까. 허둥대며 젓가락을 쥐고 앉았다. 회전 벨트가 한 바퀴를 다 돌아오도록 색의 향연에 빠져 한 접시도 고르지 못한다.

먹잇감을 노리는 야생 동물처럼 눈에 힘을 준다. 창 너머로 볼 때는 순식간에 열 접시도 더 먹어치울 것 같았는데 벨트가 두 바퀴를 돌아오도록 젓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요리사가 몇 가지를 추천해 준 후에야 첫 접시를 고른다.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까, 서둘러 초밥을 입에 밀어 넣는다. 입을 오물거리며 생선과 초밥을 버무린다. 기대와 다른 맛. 산 것의 생생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음을 고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자꾸만 생각과 다른 맛이 입을 건너온다.

접시를 들어낸 자리는 복제품 같은 초밥으로 다시 채워져 있다. 기계처럼 놓이는 음식을 보고 있자니 뭔가를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화려한 회전초밥 위로 똑같은 수험서를 편 청년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낙오가 패배의 낙인이 돌아오고 뒤처짐이 미숙함이 되어 찍히는 현실에 기회조차 얻을 수 없음을 한했던 날이 되살아난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은 없지만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조차 모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초밥을 손에서 물리게 한다.

로봇 같은 모습으로 수험서를 파던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 소식을 알려왔었다.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얼굴에는 얼마 가지 못해 또 다른 근심이 서렸다. 대기업에 들어간 녀석들은 기계가 된 것 같다며 푸념을 늘어놓았고 몇 수 끝에 공무원이 된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무료함을 하소연했다. 곱게 손질되어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접시 위에 놓였는데도 얼굴에 만면 미소를 드리운 친구는 없었다. 조금 더 화려한 모습으로 전시되기만 기다릴 뿐, 개성도, 산 것의 퍼덕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취업 이후로 미뤄둔 꿈은 어디로 가버렸던 걸까. 불안과 안도, 괴리감과 초조함에 자리를 내줘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회전초밥처럼 잘 차려지기 위해 오늘도 많은 청춘이 도서관 불을 밝히고 있다. 살이 차고 여물 틈도 주지 않은 채 눈앞에 닥친 현실만 해결하고 보자며 사력을 다해 달려든다. 그 사이 꿈은 표백되어 버리고 그 자리는 일자리와 이력서로 채워진다. 서글픈 청춘 앞에서 불안하고 낯설지만 패기 하나만은 충만한 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열정을 부추길 수가 없다. 공들여 만든 ‘나’라는 물고기의 종착지가 바다가 되는 것은 이상일 뿐임을 이미 알아버렸고, 그 바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고, 손바닥만 한 접시가 최고의 성취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항 속이 아닌 바다를 헤엄치며 살고 싶다, 위협적인 적을 마주할지도 예측할 수 없는 파도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차려진 음식이기보다는 살아있는 물고기가 되고 싶다던 열정을 반추하며 고가의 초밥 접시를 집어 든다. 고추냉이 향이 코를 찌르고 들어온다. 눈물 나게 맵다. 입을 움직이며 생각한다. 비싼 초밥을 입에 넣는 게 우여곡절 많은 시간을 관통해온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초밥이 목을 넘어가는데 왜 눈물이 도는 걸까. 그 눈물 아래로 왜 <노인과 바다>의 청새치 몸짓이 아른거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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