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은 늘 쉼 없이 움직여주었다. 아플 때나 행복할 때나 괴로울 때나 기쁠 때나. 손은 늘 내 끝에서 나, 여기 있어라는 생존 표시를 해왔었다. 손만은 나의 아군임을 자처했다. 미친 듯이 손에 기대 마음을 덜어내고 나면 숨쉬기가 조금은 수월해졌으므로. 날 선 바늘이 명치를 찌르는 듯한 아픔을 한숨에 실어서나마 토해낼 수 있었으므로. 타자기 소리에 기대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두통이 가시리라 위로하며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통증을 무디게 할 수 있었으므로. 손만 풀려준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있었다.
수다스럽던 손이 마스크를 쓰고 침묵의 시위를 한다. 써야지 녹아내리는 가슴에 온기를 전할 수 있는데 손이 굳어 있다. 손을 움직일 수 없으니 심장이 굳어온다. 차갑게 식어가는 심장.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기라도 한 듯 숨을 쉴 수가 없다. 폐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만 느껴질 뿐, 들이쉬어도 내 쉬어도 공기가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없다. 숨 쉬는 소리가 귀를 울리는데 어째 그것이 내 속에서 나온 것 같지가 않다. 손이 굳어 있기 때문이다.
물끄러미 굳은 손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무엇이 너를 질리게 했을까. 무엇이 너를 질식하게 했을까. 무엇이 너를 마르게 했을까. 무엇이 너를 돌아서게 했을까. 무엇이 너를 벼랑 끝에 서게 했을까. 무엇이 너를 굳게 했을까. 너는 침묵했고 나는 곪아갔다. 우리의 시간은 멎은 듯 흘렀다. 세상은 그리고 세사는 너와 내가 대면하고 있는 암흑의 시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쁘게 돌아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성취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고 나는 그 가운데 어둠의 우물이 되어 놓여있었다. 손을 잃어가는 나의 상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애초부터 손 따위에 숨통을 내 준 내가 어리석었다는 듯, 나는 태생부터 그들과 다른 존재라는 듯. 빛을 발하고 있는 이들 모두가 그 빛이 영원할 것처럼 승리의 춤을 춰 댔다.
죽어가는 손을 붙들고 운다. 울고 울다 보니 눈을 뜨지 못할 지경으로 눈두덩이 부어있다. 우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쏟아지는 눈물만큼 속이 더부룩해진다. 손이 굳어 있기에 눈물은 토로일지언정 슬픔의 결정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깍지 낀 손을 모아 웅크려 눕는다. 가슴이 녹아내리는 듯한 이 슬픔이 가시기를. 속이 뒤집히는 듯한 이 고통이 사라지기를. 살가죽이 벗겨지는 듯한 이 통증이 잠잠해지기를. 손이 굳어 있으니 온몸이 저미게 아프다. 지독히 아프다. 대체 무엇이 널 고장 나게 한 거니.
바람 앞. 바다도 산도 하늘도 치유제가 되지 못했는데. 손가락을 펴 바람을 맞는다. 손가락 사이사이 끈적한 눈물과 손끝의 가시와 손바닥을 빼곡히 채운 압정. 바람을 맞고서야 알아챈다. 손이 아픔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참는 게 습관이 되어 아픔이 아픔조차 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바람에 손의 이야기가 실려온다. 내 순수한 움직임에 허락 없이 값을 매긴 것. 권위라는 무딘 도끼로 내 손등을 내려친 것. 앞선 성취로 내 손목을 잘라내려 한 것. 나도 아플 수 있는데. 나도 아픔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데. 너덜너덜해지긴 했지만 내 심장은 뛰고 있고 내 몸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데. 죽은 게 아닌데.
재가 되어가는 손을 보고서야 알아챘다. 내 무심함을. 내게는 아가미가 손에 있었음을. 이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숨이 끊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대단한 성취 때문이 아니라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들여다 봐 주지 않는 그 행위 자체에 내 숨통이 있었음을. 시계 초침처럼 꾸준히 그리고 무던히 쓰는 성실함에 값을 매길 수는 없는 것인데, 나를 위한다는 시선이, 그 위에 얹힌 말이 숨구멍을 막았다. 그들의 무심함이 손을 굳혔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부러뜨렸다.
나는 여전히 내놓을 것이 없는데 굳은살 없는 저 너머의 손은 크기만 하다. 그 큰 손을 닮으려는 작은 손들은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재가 되어가는 내 남루한 손을 내려다본다. 초라함, 남루함, 쓰라림. 손을 굳게 한 이 모든 감정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내 선택에 대한 대가라면 응당 받아들여야겠지. 아프다는 소리 조차 내놓지 못하는 것, 아픔은 그런 것이었다.
에셔의 손을 그리는 손. 나는 이 딜레마에 빠졌다. 벗어나야 하는가, 끝이 보이지 않는, 홀로 추는 이 춤을 계속해야 하는가. 손이 소리를 내놓는 걸 보니 내일은 조금 나아지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