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꽃

by GZ

밤은 짧고 아침은 이르다. 자정을 기점으로 하루에 한 번. 너와 내가 만나는 찰나 같은 시간을 기다린다. 긴 하루를 보내고 노트북 앞에 앉아 너를 그리며 메일을 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너에게는 내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 닿아있을까. 너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밤이 깊어 있다.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아직도 할 말이 남은 것인지, 그토록 사랑을 읊조려 놓고도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눈을 떠서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리움이 몰려온다.

이슬을 머금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길을 걷는다. 안개로 뒤덮인 산이 터너의 그림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새들이 지저귐이 귀를 간질이고 뽀얗고 뿌연 안개에 가린 해는 상아색 빛을 흩뿌리고 있다. 침묵과 나란히 걸어온 길의 끝에서 이슬 맺힌 보라색 꽃을 만난다. 밤새 이슬을 맞고 있었던 보라색 꽃의 이름은 자주달개비다. 아침에 피었다가 오후가 되면 지고 마는 꽃 자주달개비. 그래서일까. 자주달개비에는 외로운 추억, 짧은 즐거움, 사랑할 수 없다, 존경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슬픈 꽃말이 있다.

너와 마주 보고 앉는 짧은 밤이 자주달개비의 개화를 닮았다. 그 시간에 네가 있고 내가 있고 우리가 있다. 피는 꽃이 아침을 불러오고 지는 꽃이 오후에 밀려 나간다. 너를 그리는 나의 부지런한 개화에 해가 있고 달이 있다. 어둠이 있고 빛이 있다. 우리의 사랑의 꽃잎 위에서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해와 달의 운행 속에 안겨 있다.

나에게 자주달개비는 이른 아침 피었다가 오후면 져버리는 꽃이 아니라 방사선 농도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영민한 꽃이다. 그리고 나는 너라는 우주를 중심으로 네 위험을 감지해 색을 달리하는 너의 꽃일 것이다. 오후에 진 자주달개비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피어나 있을 것이다. 너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감지하는 나라는 꽃은 밤도 낮도 없이 너를 향해 꽃잎을 피워내 있을 것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너를 위해 이슬이 되어 앉은 그리움을 품어 보석으로 빚어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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