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나뭇잎의 꽃이다

by GZ

단풍은 나뭇잎이 만드는 꽃이다. 울긋불긋한 잎은 여름 내내 먹었던 햇빛을 바람에 실어 내보내는 나무의 시다. 가을이 무르익으려면 아직인데 벌써 잎이 진다. 물도 들지 않아 떨어지고 있는 나뭇잎이 어쩐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가을을 도둑맞아버린 것 같아 쓸쓸해진다.

잎 진 나무에 푸른 여름을 비춰낸다. 파란 잎사귀 사이로 스며들던 햇빛은 눈부셨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은 겁먹은 얼굴로 뜨겁게, 소리 없이 눈물 흘리던 네 눈동자를 닮았다. 그래서일까. 내게 여름은 시린 계절로 남아 있다. 찬란했던 만큼 아린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른 너를 본다. 모서리가 깎인 너는 둥글어졌다. 둥글고 둥근 너에게서 평온을 느낀다. 너에게 이른 가을에 감사를 느낀다.

활짝 웃으며 괜찮다고 말할 줄 알게 된 네 성장에 눈물이 인다. 괜찮다고 말하며 상냥하게 웃는 얼굴을 대면하고 있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초라한 내가 마치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를 거쳐 나를 읽어나가는 나이기에 이 계절이 너에게 준 여유에 가슴이 울린다.

가을이 더디게 갔으면 좋겠다. 겨우 닿은 너와 나의 오늘이 깊고 그윽하게 이 시간을 감싸 안아주면 좋겠다. 가을의 색을 내기도 전에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나뭇잎이 아니라 여름의 빛을 천천히 내뱉으며 영글어가는 가을이면 좋겠다. 그리하여 잎이 다 지고 나면 눈으로 뒤덮인, 외롭지 않은 우리의 겨울을 불러와 주면 좋겠다. 겨울에 이르면 너의 눈을 매만지며 말할 것이다. 잘 견뎌주어 고맙다고. 네가 뿌려둔 씨가 널리 퍼져 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잎 진 겨울이면 내가 너의 꽃이 되어 너라는 나무를 감싸 안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나무에는 너라는 꽃이 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가을이 아름다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천천히 이 시간을 음미했으면 좋겠다. 어디에 있건 어떤 모습이건 너라는 우주를 사랑할 것이기에. 네 얼굴에 주름이 늘고 반짝이던 청춘이 사라진다 해도 변함없이 너는 나의 너일 것이기에. 내가 너를 가슴에 들인 것은 네 청춘이 빛나서가 아니라 너였기 때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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