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입술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눈만으로는 상대의 반응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웃고 있지만 울고 있고 웃고 있지만 화내고 있고 웃고 있지만 시무룩해 있다. 그런 생각 속에 나를 둘러싼 웃음 강박에 대해 생각하고는 한다. 나에게서 웃음은 친절과 친절함이 되기도 했지만 거리두기의 방패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상 친절하고 싶지 않았기에 웃었고 그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에 웃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면서부터 귀를 닫고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후 귀에 닿는 말이 남기는 감각을 까마득히 잊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마스크가 이제는 나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그게 내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까지 망각해 버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표정을 잃어버리면 얼굴 근육도 굳게 된다. 연습을 하지 않으면 근육은 형태를 갖출 수 없다. 그리고 원하는 형태가 나타나기까지 나는 끝없이 비틀어지는 내 얼굴의 불균형을 마주해야 한다. 그게 불편해 다시 마스크를 쓰고 귀를 닫아버릴 수도 있다. 어쩌면 비틀어진 그 얼굴이 지금의 나의 얼굴임을 받아들이지 못해 금세 다시 마스크를 써 버릴 수도 있다.
빈 종이를 앞에 두고 있는데 어쩐지 얼굴을 그릴 수가 없다. 내 감정에 진솔하게 마주해 본 기억이 너무 오래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