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곧 기관이나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므로 기회가 내게 닿은 것만으로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라는 것이 때로는 너무 일방적이라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목을 눌러오기도 한다. 그리하여 사회가 원하는 일정 기준을 넘어섰다는 것에 안도할 새도 없이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하게 된다.
기회를 준다는 것은 인정한 바를 증명해 보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의 성취가 기회를 준 사람의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오히려 기회를 받지 못한 것보다 못한 패배감을 나에게 남길 수 있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니까 기회를 덥석 잡게 되는 것은 그만큼 그 기회를 잘 활용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가 될 텐데 알고 보면 사실 전부 그렇지만은 않다. 워낙 기회가 적다 보니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음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일단은 수락을 누르고 마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모두가 기회를 희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회 자체가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져 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세상이 반드시 지금 있는 이곳보다 더 나은 곳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새 기회가 내게 주어짐으로써 마주하게 되는 상황과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 나아가 그 속에서 넘어서게 될 여러 난관까지 지금까지 내가 익숙해져 있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 펼쳐질 것이기에 가능하면 새로운 기회를 붙들려고 하는 것이다.
기회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 되므로 나의 지평을 넓혀주게 된다. 중요한 것은 기회의 탈을 쓰고 내 손에 주어진 그것이 나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취하려고 하는지 판단하는 데 있다. 나는 기회를 포착한 자답게 나를 내보임으로써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 증명의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해서 기회와 증명 간 거래가 부당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때로는 그 기회가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라며 거절하고 싶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회에 목말라 있기에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을의 입장에 있다는 무의식적 결속에 가로막혀 우리는 기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택권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남들이 다 원하는 기회가 나에게 특별하게 주어진 것이니 어찌했건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또는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다음의 기회도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에서 말이다.
워낙 경쟁이 치열한 사회이다 보니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일 수 있다. 그런데 그 기회가 독이 될지 복이 될지를 고민해 보고 거절이라는 선택지를 가져볼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기회가 주어졌으니 응당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떠밀리듯 선택하게 되는 기회가 바람직한 것인 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통계를 내보이며 수치의 증가가 기회의 질의 증가로 보이게 하는 것을 자주 본다. 과연 그럴까? 셋 셀 동안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식으로 급박한 결정을 강요하는 기회가 과연 모두에게 유용한 기회인지는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달려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되는 이 기이한 현상은 어쩌면 그만큼 자신의 능력을 내보일 기회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기회의 폭력을 버텨나감으로써 기회의 불모지에 조금이나마 훈기가 돌게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기회를 감히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