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외국어를 가르치는 지인이 요즘 아이들의 외국어는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자연스럽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세대가 바뀌고 있으니 다음 세대라면 적어도 하나 정도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그 소리에 자극받아 더 정교한 표현을 위해 원서를 붙들고 앉았겠지만 더는 그 피로를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의 미세한 차이를 비교하다가 외국어로부터 떨어져 나갔던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 넣어놓은 단어가 나도 모르는 사이 까마득히 사라져 버렸을 때의 낭패감과 패배감이 남기는 기분은 정말이지 가능하면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애써 노력해 쌓아 둔 뭔가가 내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의 허망함에 더는 절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도 사라져 가는 것이 넘쳐나고 있으니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실패감만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외국어라는 장벽을 넘어서는 것은 다른 이들의 몫으로 두자며 외국어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을 반쯤은 포기한 채 아는 단어 속에 안주하는 외국어 난민 생활에 접어들고 있었다. 난민 생활을 넘어 난파한 배 위에 있는 것 같은 절명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밤, 따뜻한 자극을 받았다. 단순하지만 틀림없는 한 마디가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 지난날이 생존의 흔적이 되어 남겨진 것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을 느낀다. 지독하게 바빴는데 딱 그만큼 나태했던 것 같은 느낌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터. 지난해 나는 분명 바빴다. 바빴는데 게을러진 것 같은 아이러니한 감각 때문이었는지 나는 지난해 내내 나로부터 떠돌고 있었다.
나에게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 쉬고 있는데도 쉬고 있지 않은 설명하기 힘든 느낌에 둘러싸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멍해졌던 지난해를 지나 새해에 이른 요즘의 나는 전쟁 같던 날들에서 벗어나 드디어 평안한 날을 보내고 있다. 쉰다고 해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고약한 강박은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들고 그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끝없이 뭔가를 설계하는 것으로 내 머릿속을 바쁘게 한다. 그런데도 지금은 쉬고 있는 것 같다.
버릇은 어디 가지 않기에 내 머릿속은 끝없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드라마 속 대사처럼 TURN IT OFF를 외치며 그동안 손가락을 움직일 엄두조차 나지 않아 시작하지 못했던 글쓰기도 조금씩 시작하고 있고 책도 읽고 있고 그림도 그리고 있다. 내 모든 인생을 다 걸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일이었으나 딱 그만큼 나를 질려버리게 한 열정의 지표들을 다시금 천천히 손에 쥐고 있다. 손을 벌려 뭔가를 쥐려고 하는 시도를 해 보는 것을 보니 사는 데 지쳐서 뭔가를 좋아하는 것조차 포기해 버려야 하는 시간이 지금은 나로부터 조금 멀어졌나 보다.
외국어로 밥벌이를 하고 살기도 했고 외국어 또한 내가 격하게 애정을 쏟은 것 중 하나였으니 다시 귀를 열고 입을 움직이고 눈을 열어야 했다. 그런데 그 또한 놓고 있었다. 그리하여 외국어 대한 감각이 떨어지고 있다는 공포에 나를 무뎌지게 만들었다. 날 섦을 둔하게 만드는 생존의 힘에 굴복하고 만 것이었다.
긴장감을 놓아버린 것은 나였다. 하여 내가 등 돌린 것들이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효율과 업적을 무기로 마음속 열정과 나를 생이별시켜버리고 마는 끝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구도 속 생존이 나는 참 버거웠다. 여하간 나는 아직 병사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또 다른 생존 경쟁을 앞두고 숨을 고르고 있다.
이 숨 고르기가 잘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 폐부로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숨을 쉬고 있음을 지각할 수 있다. 시간은 그렇게 바짝 말라붙어 있는 것 같던 내 폐부에 산소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나와 다르게 쉬는 것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을 정도의 영민함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열정을 손에 쥐고 있는 이들의 생기 있는 목소리가 내 가슴을 설레게 해 주었다. 뭔가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을 되찾아주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할 것
외국어 공부의 기본 법칙은 그랬다. 이 단순한 법칙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일에 치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같이 일이 늘어나는 것 같은 막연한 부담감 속에 나는 일들을 쳐내느라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보는 것도 아닌데 무얼 그렇게 빨리빨리 벼락치기하듯 다 처리해 버리고 싶었던 걸까. 업무라고 할 수 있을 일에 매몰되어 있었기에 일이 아닐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일조차 하기 싫어지는 사태가 나를 장악해 버렸고 그로써 사는 건 살아가는 일이 아니라 생존 전쟁이 되어 있었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라고들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생이 경주가 되면 지치고 만다. 그리고 지치면 완주해도 기쁘지 않다. 완주가 성취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실로 몇 년 만에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낀 것은 매일매일 자신이 목표한 바를 천천히 조금씩 이루어가며 나만의 여정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아름다운 노력 때문이었다. 생존과 열정을 현명하게 잘 조율해 가고 있는 이들의 활기찬 삶이 나를 가다듬게 해 주었다. 내일 인생이 끝나버릴 듯 목숨 걸고 달릴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목표한 바를 조금씩 실천해 나갈 것. 지금은 그 속도를 찾아야 한다. 인생을 경주가 아닌 여정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하여 나만큼 지친 누군가가 어느 날 나를 보고 숨을 고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