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과정 중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생 자체가 중간고사가 기말고사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나에게 닿은 모든 것을 시험을 보듯 마주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부담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무의식이 오히려 부담감 속에 나를 얽매는 결과를 가져와 버렸다. 인생은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의 연속일진데 오늘 밥 다 먹고 내일 당장 죽을 사람처럼 모든 것에 달려들었으니 오늘은 오늘대로 배가 안 부르고 내일은 내일대로 허기져 있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쉬기를 연습하고 있다. 해야 할 일들의 목록에 갇혀 있기를 이 한 달 동안은 놓아보기로 했다. 생각이 생각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에 온전히 쉰다는 감각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A가 A로 수렴되어 남겨지는 뇌의 구조를 갖추지 못해 나에게 들어온 A는 a가 되었다가 Aa가 되는가 하면 Ba가 되기도 하고 AaAaAa와 같은 일정한 규칙을 만들며 나를 괴롭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쉼을 노력은 하고 있다.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고리가 너무 피곤했었다. 머리를 비울 필요가 있었는데 그럴 여력은 없고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쳐 내는데 바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 피로를 종이 위에 덜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상황이 생각으로 교체되어 있는 것 뿐이니까 뭔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내가 출구를 찾게 하는 구조는 다름없다. 하지만 그 미로를 헤매고 있는 사람이 나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각은 달라져 있다. 감각이 달라지니 세상을 대면하는 눈과 행동도 바뀐다. 그게 어깨를 가벼워지게 한다.
그렇게 조금씩 변화하는 나를 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나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리더라도 곱씹어 생각해 보고 움직이던 감각의 소실이 나를 버겁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나를 복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 정도는 훼손되어도 된다던, 모두들 그 정도는 참고 사니까 나 또한 그러해야 한다던, 이 모든 것이 나의 예민함과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던 생각을 물리고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며 천천히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세상이 나를 떠밀어도 나는 나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