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뒤에서 당신을 비추고 있을 뿐

by GZ


콘텐츠가 폭증하는 흐름을 따라가기가 버겁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 시대에서의 생존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꽤 열광적으로 뭔가에 매달렸을 때가 있기는 했는데. 지금은 뜨거움과 집중력이 어쩐지 제각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때문인지 하나에 집중하는 일이 요즘은 꽤 어려운 일이 되었다.

정말이지 다양한 생각이 폭발하고 있는 콘텐츠를 보면 모두가 온 마음을 다해 인생에 마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저런 발상이 가능할까 하면서 그 모습에 상당히 자극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묘한 심리 때문인지 세상이 원하는 식의 소통방식을 따르지 않는 나의 나태함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조바심이 묘하게 나의 신경을 긁는다.

남들에게는 자신만의 속도와 자신만의 조도를 가져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해 말하면서 정작 나는 슬그머니 다른 이들을 보며 초조해하는 이 심리는 대체 뭔지.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해 본다. 그렇다고 해도 묘한 고집이 있어서 온전히 마음이 다 가지 않으면 지구력이 좀처럼 나오지 않으니 그 자극은 며칠을 넘기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괜스레 미디어 열광 시대가 조금씩 피곤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굳이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군색한 자기 방어를 발동시키게 된다.

세상이 내가 모르는 것으로 넘쳐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바보가 된 것 같은데 그 새로운 걸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부터인가 뭔가를 보게 되고 듣게 되는 상황에서 나를 구출해 내게 되었다. 슬그머니 그 세상은 나와 관계없는 곳이라며 도망 나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벽을 쌓아버리게 되었다. 조금은 편하고 조금은 불안했다.

편안했던 것은 뒤처짐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고 불안했던 것은 나의 불안이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서만 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에게서 나를 온전히 확보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끝없이 급류에 떠밀려 내려가는 듯한 공포를 느낀 것은 결국 나의 인생에 대한 나의 불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지 외부 자극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억지로이기는 했으나 여하간 숨 쉴 여유를 확보하게 되자 아이러니하게도 남들이 만든 세상을 다시금 기웃거리게 되었다. 이리저리 콘텐츠를 드나들며 그 속에 담긴 진정성에 감동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는 나를 새롭게 경험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플랫폼의 그물망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은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자신에게 맞는 플랫폼을 선택해서 뭔가를 공유하는 것은 성취를 위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다수를 상대로 또는 나를 상대로 이야기를 건네는 새로운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미디어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여하간 더 엄정한 잣대에 내몰려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막연히 짐작한다. 익명성은 야누스적이라 더없이 천사 같을 수도 있지만 이를 데 없이 악마 같을 수 있어서 여하간 대중을 대상으로 한 직업을 선택한 이들은 출퇴근을 반복하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피로를 느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나를 알리는 것은 설레고 떨리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나를 피 말리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에 따라 A인 나를 a로 보기도 하고 Z를 보기도 하여 나인데도 나가 아닌 것 같은 불가사의한 상황을 꽤 자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시선의 차이가 있어서다.

얼마 전 한 영상을 보며 가슴이 무너질 듯 공감한 적이 있는데 순간, 온갖 스트레스가 난무할 수 있음에도 자기만의 고집을 가지고 진정성이 담뿍 묻어나는 콘텐츠를 정말로 성실히 올려주는 콘텐츠 제작자에게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저토록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솔직하게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여러 사람을 앞에 둔 자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을 때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이곳저곳에 많이 알려진 사람이 자신의 인생의 쓰린 이야기를 툭 터놓고 말하기까지는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 한다.

콘텐츠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되기도 하고 유명세를 얻는 수단이 되기도 하면서 그 명암으로 인해 여러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명세가 어떠하건 간에 콘텐츠 제작을 업으로 삼기로 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내보이는 일을 함으로써 피해 갈 수 없는 남다른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성취감과 보람도 남다르겠지만.

문득 며칠 전 한 영상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고는 충동적으로 이렇게 공개된 일기장에 여하 간의 감사를 남기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음은 어쩌면 상처 남기는 말을 남기는 사람보다 말없이 감동받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그러니까 혹여라도 반응이 기대와 달라서 속을 쓰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빛은 당신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뒤에서 당신을 비추고 있다고. 당신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찔해질 때면 당신 앞에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이 말은 콘텐츠 제작자에게만 한정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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