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나지 않기를

by GZ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관계없이 모두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기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나만 이렇게 숨이 찬 건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가만 지켜보니 모두 필사적으로 삶을 마주하고 있다. 제각각의 성취 속에서 시간을 어떻게 운용할지를 생각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그 몸부림의 피로를 알기에, 모두 그 정도는 감당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노력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살아가는 일은 때로 퍽퍽하고 눅진눅진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목이 말라 괴로워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람에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다 같은 평온한 상태에 있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일 것이고 그렇게 보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때로 상대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아주기도 한다. 때로는 말보다는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otato Eaters_Van Gogh_1885.jpg Potato Eaters_Van Gogh_1885

내 속에 한이 되어 쌓인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그 상처의 무게를 함께 느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만나게 되면 어제도 만난 것같이 느껴지고 그렇게 해서 모여 앉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게 만드는 친구들이 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 향이 감도는 카페에 앉아 시간을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홀짝거린다.

정적이 어색해 애써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가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우리를 감아 돈다. 물의 흐름 같기도 하고 따스한 바람의 매만짐 같기도 한 이야기가 온화한 마에스트로의 연주가 되어 귀에 닿는다. 초침 소리 사이로 저마다 마주해 온 일상과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시간이 남겨진다.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하는 대화에 둘러싸여 겨울 속 봄을 맞는다. 부드러운 말속에는 찬 계절에 봄의 온기를 가져다주는 힘이 있구나, 한다.

따사로운 햇살과 향긋한 향기와 부드러운 말의 온화함에 둘러싸여 서야 그동안 내가 뾰족하고 날 선 말속에서 내내 긴장하고 있었음을 알아챈다. 누군가가 내게 남긴 상처와 내가 누군가에게 남겼을 상처를 덧대본다. 남겨진 것도 남긴 것도 모두 나의 상처일 터. 상처를 볕이 잘 드는 내려둔다. 멍하니 창가를 응시하며 속으로 읊조린다. 덧나지 않기를. 동글동글하고 따뜻한 말이 상처투성이의 귀와 가슴을 매만져주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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