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은 너무 가깝다. 그래서 멀다. 그런 말은 때로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대관절 말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마음을 속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인지 몰라 말의 속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다가 지쳐 나가떨어진다. 말의 속성을 알면 속이 좀 덜 부대낄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에 조소가 일었기 때문이다.
말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순간적이다. 그런데 묘하게 영구하다. 그게 말의 묘미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말은 어렵다. 하나의 말을 두고도 그 느낌이나 생각이 시시각각 변화하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이 말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말이 단지 마음이나 사고를 보여주는 출력에 불과하다면 말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묘하게도 이상한 속성이 있어 발화자의 입을 떠난 순간부터 자생력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사고하는 고등 생물이라는 것과도 관련이 있고 뭔가를 담고 있기는 한데 그게 정확하게 담긴 것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말의 묘한 모호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몇 단어가 가슴에 맺혀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한다. 심장을 두드려 열이 오르게 했다가 차갑게 식기를 반복하며 잔잔한 호수 같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단어의 노략질에 놀아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가슴속 파문이 일 때마다 가슴에 맺힌 단어를 붙들고 씨름한다. 어차피 단어는 단어 그대로 있을 뿐 요동치는 것은 내 속일 것이므로 이번에는 지지 않으리라 두 손을 불끈 쥐고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호의만 가슴에 새기고 상처는 지우리라며 애써 일기도 써 보고 도로를 달려도 본다. 그런데도 파문이 인 어리석은 속은 어째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는다.
이럴 때의 나의 아군은 시간이다. 지금은 나를 옥죄는 듯 느껴져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쨌건 지금의 이 파고는 잠잠해져 있을 것이고 그때는 또 다른 일이 나를 붙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아군은 느리고 느려서 바쁜 내 속을 빨리 매만져주지 않는다. 내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 가는데 시간은 참으로 여유롭다.
애먼 시간을 붙들고 너마저 내 편이 아니냐며 원망을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알아챈다. 내가 뱉은 말이 상처가 되어 내 가슴에 박힌 것을 말이다. 사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나의 무심한 말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말에 민감한 나의 마음이 말이 말을 만들어내는 유령 놀이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힘들여 구축해 온 아름다운 언어의 세계의 상을 무너뜨려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음은 그것을 곱게 잘 사용하여 이 건조한 세상에 온기와 물기가 깃들게 하라는 뜻일 것이다. 말에 깃든 섬뜩한 날보다 그 속의 온기를 믿고 그 힘을 꺼내놓고 싶었던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이 생각보다 서늘하고 날이 서 있지는 않았을까. 말은 말인 채로 있는 것을. 멋대로 기대하고 실망하며 상처받은 것은 나다. 그러니까 괜스레 속이 부대끼는 지금과 같은 때는 말과 의도를 떼어 두고 말에서 조금 멀어져 있을 필요가 있다. 그게 말(言)에 태워진 기수가 아니라 말(言)을 유연하게 다루는 기수가 되기 위해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