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유린

by GZ


꿈을 꾸는 일이 유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꿈을 꾼다는 것을 이유로 나의 마음이 그 꿈을 위해 훼손되는 것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것 자체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이루지 못한 뭔가를 손에 얻기 위해서는 나에게서 소중한 뭔가를 당연한 듯 내주어야 거래가 성립된다는 잘못된 거래 법칙에 길들어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만큼의 성취를 얻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희생은 당연한 듯 받아들여야 해. 모두 그 정도는 소진되며 살아가고 있어. 그 정도로 불평해서는 꿈을 이룰 수 없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정도 상처에는 무감각해질 수 있어야 해. 누군가를 희생시켜서라도 남들보다 빨리 꿈을 움켜쥐어야 해. 그 과정에서 내게 남겨진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꿈을 현실로 만든 이후로 미뤄야 해.

나로서 살기 위해 꿈을 꾸기로 했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를 버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 내가 사라지고 꿈만 남아 있는 것이 과연 나의 꿈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 찬란하기 위해 꿈을 꾼 것이 아닌데 위대해지기 위해 꿈을 가슴에 품은 것이 아닌데, 성취가 꿈이 되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현실에서 꿈을 손에 쥐고도 아사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분명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꿈인데 언제부터인가 꿈에 가까이 가려 하면 할수록 희미해져 가는 나를 느끼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따라 긴 길을 걸어오며 가슴이 너덜너덜해진 친구들을 본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꿈을 따라 걸으면 행복할 줄만 알고 무모하게 꿈길을 택한, 나를 똑 닮은 친구들의 타들어 간 심장을 본다. 구구절절 사연을 듣지 않았는데도 어느 지점에서 심장 한 부분이 뜯겨나갔고 어느 지점에서 등에 화살을 맞고 어느 지점에서 돌아서려 했는지 전부 다 알 것 같은 것은 나도 그들만큼 마음을 다쳐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굴곡진 삶을 보던 사람들의 눈이 그러했듯 그들을 보는 나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맺혀 있다. 동정할 처지도 되지 못하고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눈치 없이 눈물은 차오르는 건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아픈 건지, 속은 왜 이렇게 또 부대끼는 건지. 가만히 멈춰 서서 애먼 가슴을 치며 자문해 본다.

꿈은 위대하다.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생명체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꿈을 성취하는 과정이니 꿈을 이루는 것은 위대할 수밖에 없고 그러하기에 힘든 여정일 수밖에 없다. 꿈을 이루는 것은 역사를 쓰는 일이기도 하니 꿈을 이룬 자들에게 또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이들에게 위대하다 또는 대단하다는 단어를 붙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대단하다고 하여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부당함에까지 정당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처를 받더라도 참아야 하고, 말도 안 되는 부당함도 받아들여야 하며 나의 실패가 아닌 구조가 만들어 낸 함정 같은 실패도 내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것이라면 꿈은 꾸지 않는 것만 못한 것이다. 인간이 꿈을 꾸는 이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지 인간임을 잊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신화가 되기 위해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꿈을 꾼다.

그래서 결심했다. 꿈을 미끼로 나의 자존을, 나의 고귀한 버팀을 그리고 나의 고결한 존재함을 침범하려 한다면 당당히 거부하기로. 세상의 방식과 세사의 방식을 따르기에는 이제 내 머리가 조금 굵어진 까닭이고 나만큼 너덜너덜해진 꿈의 파수꾼들의 상처가 내 상처에 닿아 나의 아픔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영원히 꿈을 꾸며 인간임을 망각하지 않고 살리라 다시금 다짐했기 때문이다. 꿈길을 따라가기도 바쁜데 절뚝거리며 걸어야 할 이유는 없다. 꿈을 꾸고 있는데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내가 나의 꿈에 당당한 이상, 세상 누구도 나에게 꿈의 죄인이라는 굴레를 덧씌울 수는 없다. 꿈을 꾸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들의 가슴에서 번져오는 향을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향이 외부의 황량하고 건조한 모래바람을 막아서 꿈을 꾸는 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Other World_Escher_1947.jpg Other World_Escher_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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