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그리고 상실감

by GZ

산을 넘어가는 해가 세상을 붉게 물들인다. 지는 해가 붉다는 사실을, 번지는 석양이 곱다는 것을, 저녁놀에 평화가 깃들어 있음을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을 보고 섰다. 티끌 한 점 없이 맑고 적요한 순간을 붙들어 두고 싶다는 욕망이 일게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지 흐르는 시간이 남기는 잔영인지 알지 못한 채 빨간빛을 검은 눈동자에 담아낸다.

그대로 눈을 감으면 빛을 머금을 수 없을 것 같아 두 눈에 힘을 준다. 눈이 시리더니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온다. 태양이 종일 머금고 있던 고요함을 내 눈에 내려두기라도 한 듯 두 눈이 따뜻함에 감싸인다. 해가 지는데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을 감는데 숨통이 트여오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는 것은 자연의 묘한 조화 때문인지 감수성 때문인지.

천천히 숨을 내쉰다. 가슴 위 돌덩이가 떨어져 나간 듯 가벼움을 느낀다. 어깨를 매만지며 눈을 뜬다. 해는 산에 반쯤 가려 있고 바다는 온통 붉은빛이다. 붉고 푸른빛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잔잔한 물결이 하늘과 바다를 가르며 유유히 흘러간다. 나를 둘러싼 평행 세계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해 질 무렵 평온함이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바다를 넘어다볼 거리감도 상실한 채 어딘가로 떠내려가고 있던 내 모습을 바다에 비춰낸다.

소용돌이에 휩싸여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생각한다. 무엇이 그리 급하여 숨도 고르지 않고 달려버린 것이었을까. 무엇이 그리 불안하여 내 속을 까맣게 태워버린 것이었을까. 무엇이 그리 초조하여 나를 자꾸 벼랑 끝으로 몰아댄 것이었을까. 무심한 바닷바람이 명치를 누르고 있던 허깨비 같은 상실감을 들춰낸다.

목표를 이루었음에도 상실감을 느끼는 것은 목표를 잃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을 터. 나는 성취의 상실감에 꽤 오랜 시간 시달렸다. 성취감의 공식은 ‘A를 원한다. 그리하여 A를 손에 넣는다.’라는 구조로 간단하다. 그러니까 이 공식을 성립시키면 성취감을 느껴야 함이 당연하다. 그런데 나는 묘하게도 A를 가졌음에도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주 마주했다. 내 눈에는 A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였고 그리하여 나의 A는 A가 아닌 a로 보여 그게 나를 허탈하게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만족보다는 추구의 갈급함으로 나를 끝없이 몰아넣게 되었다. 그게 A를 소유하기 위해 들인 내 노력이 제로가 되게 만들었다. 들인 공이 적지 않은데 모두가 A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나는 결국 출발선에조차 이르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왠지 모를 허탈감으로 이어졌다. 허탈함이 남긴 공허를 메우지 못한 나는 나를 재촉하는 것으로 유령 같은 상실감을 외면해 왔다.

노을 앞에서 양손을 펴본다. 손 위의 온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손에 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온기가 손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피어오르는 내 노력의 아지랑이가 나를 감싸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뜨고 지는 명분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인생 파고의 원인도 찾을 수 없다. 없는 이유를 찾으려는 데서부터 괴로움과 허탈감, 상실감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온기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번져나가는 것으로 제 몫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러니까 나의 상실감은 내 손의 온기를 미처 알아채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Anxiety_Edvard Munch_1894.jpg Anxiety_Edvard Munch_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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