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고해성사

20221030


새벽에 근무하기 때문에 그시간에 누군가에게 연락올 일이 거의 없는데, ㅂㅇ언니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언니와 나는 몇달 전 여러 오해가 겹쳐 다툰일이 있어 사이가 좀 서먹해져 있던 와중이었다. 그러다보니 더욱이 올만한 전화가 아니었지만 상황이 그럴수록 무슨일이 있음을 직감했었는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늦게까지 친구를 만나고 오다가 우연히 로드킬을 목격했는데, 사고차량은 이미 자리를 떴고, 차에 치인 고양이는 누워서 발버둥치다 지금은 움직임이 없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로드킬 사체처리 신고 연락처를 찾아 전화해봤지만 당직 근무자가 1명이기에 자리를 비울수 없어 아침에나 온다고 했고, 건너편 차선에서도 아이의 뚜렷한 움직임을 봤던 언니는 혹시나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 때문에라도, 아니면 이미 늦었대도 그냥 길바닥에 저렇게 두기엔 발이 떨어지지 않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이라고 했다.



"움직이는 걸 봤다고? 지금도 살아있어?"



"아니, 지금은 안움직이는 것같아..."



"숨이라도 쉬고 있는지 봐바."



"반대쪽 차선이라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가까이서 확인해 봐야지."



"주변에 핏자국도 있고, 무서워서 가까이 못가겠어..."



"그럼 줌 해서라도 사진 찍어 보내줄 수 있어?"



"...알았어, 해 볼게."



사진이 왔다. 축 늘어져있는 고등어색 고양이. 사진을 봐도 살아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상태 였지만 죽었다고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출혈을 보니 혹시나 아직 숨이 붙어있대도 살리기 힘들 것 같았다.



"나 어떻게 해야돼?"



"어떻게 할지 알려주면 할 수는 있겠어?"



"......아니...못하겠어..."



"성정동이랬지? 태우러 와, 준비하고 있을게. 많이 놀랬을텐데 운전 조심하고."



전화를 끊고 시계를 봤다. 새벽 세시 좀 넘은 시간.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이니까 가게문 잠그고 얼른 다녀와야지. 언니가 성정동에서 여기까지 오면 금방이니까, 녀석을 담아올 큰 박스를 얼른 찾아 꺼내 펼치고 가게에서 파는 애견용 패드를 하나 뜯었다. 바닥에 하나 깔고, 혹시모르니 한장 더 챙기고. 그리고 고무장갑. 새벽에 동네 녀석들 밥줄때 쓰는 밝은 손전등도 같이 넣었다.



언니가 왔다. 차 뒷자석에 준비물을 싣고나서 나도 타 안전밸트를 맸다. 사고장소까지 가는 그 길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가엾은 것. 어쩌다가 큰길로 나와가지고. 그쪽이 이시간에 어두운 곳도 아닌데 운전자는 왜 고양이도 못보고 속도를 내가지고. 못봤을까,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까. 움직임을 봤다는 언니말처럼 아직 살아있을까. 만약 죽었다면 계획대로 싣고와서 오전에 동물병원으로 공동화장이라도 보내면 되지만 살아있으면, 그땐 어떡하지. 24시 병원을 간다고 해도 그정도의 응급수술이 가능할까. 그렇다쳐도, 그후에는 또 어떻게 해야할까. 아냐, 일단 확인부터 하고 고민할 일이니 그런건 나중에 생각하자.


차라리 죽어있는게 우리에겐 더 '쉬운 일'이었다. 내 예상대로 어차피 살리기 어려울거라면, 그 긴 고통을 버티지 않고 가는게 차라리 서로에게 나을거라는, 사실이면서도 동시에 죄책감이 느껴지는 생각을 하면서, 차라리 죽어있기를.





그시간에도 불켜진 가게들이 많은 거리라 혹시나 그사이에 누가 수습을 했을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았지만, 도착했을때 거기에 그대로 있었고, 오늘 처음 만난 고양이의 모습은 붉고도 처량했다. 동네 고양이의 로드킬. 있었는지도 몰랐던 존재의 사라짐에 대해선 지나가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모든 계획을 결정할 생사확인 먼저 해야했기에 장갑을 끼고 다가가 손을 댔다. 죽었다. 언니가 본 움직임은 죽기전의 발작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죽은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확인했다. 그때의 머릿속 생각들을 글로 옮기기가 어렵다.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살았으면 하는 바램과 죽었으면 하는 바램이 우열없이 동시에 강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살아있었다면, 작은 희망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도, 돌아가 일하긴 글렀을테고 치료과정과 병원비에 대한 걱정부터 했겠지. 눈앞이 캄캄하고 숨이 턱 막혔을거다. 일이 굉장히 복잡해질지도 몰랐을 그 경우의 수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예민한 나는 어쩌면 이미 그랬었는지, 그 녀석이 죽었다는 걸 굳이 재차 확인한 후에 오히려 그제서야 숨통이 트였다.


참 잔인하게도, 죽어서 다행이었다.



그러고나서야 아이를 제대로 보았다. 우리집의 '보리'와 비슷한 흰색이 많이 섞인 고등어색 무늬에 1살도 안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 바닥의 핏자국으로 보니 차에 받친 후에 누가 도로변에 옮겨 놓은게 아니라, 최대한 인도쪽으로 온 힘을 다해 제 발로 걸어 온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도 살고자 했던 본능이었을 것이다. 그 덕에 2차 사고에 따른 추가 훼손은 없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많이 무서워했던 언니에게는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했다. 가져온 박스만 건네받고 두손으로 아이를 일으켜 안았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살아있는 생명체였던 죽은 몸을 드는 일은 몇번을 겪어도 매번 낯설게 느껴질만큼 살아있는 몸을 들어 올리는 그 느낌과는 굉장히 이질적이다. 힘없이 축 쳐진 사체는 (실제로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 몸집에 비해 더 무겁다. 박스 속 깔아둔 패드에 조심히 눕히고, 여분으로 가져온 패드를 펼쳐 덮은 후에 차로 옮겼다. 바닥에 남은 핏자국을 한동안 보다가 나도 차에 탔다.



동물병원이 문을 여는 시간까지 내가 가게에서 데리고 있기로 했다. 카운터 한쪽 구석에 박스를 두고 손님이 아무도 없을때 딱 한번 열어봤다. 밝은 곳에서 보니 더욱 선명하게 처참했다. 언니가 애기 눈이라도 감겨줄 수 있느냐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그럴 수 없던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사고당시의 충격으로 한쪽 안구가 돌출되어 있었다. 측면에서 아주 강하게 부딪힌 모양이었다. 이정도면 아마 운전자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그대로 밟았을거다.


아가, 너는 그 시간에 왜 그 길을 건너고 있던걸까. 고생많았다.



미용실 동생이 주었던 '향'이 생각나 꺼냈다. 마침 그 며칠전에 받았었는데, 왠지 그냥 아무런 순간에 피우고 싶지는 않아서 갖고만 있던거였다. 녀석이 담긴 박스 근처에 올려두고 불을 붙였다. 향을 다 태울때까지, 불꽃으로부터 새어나와 잠깐 희미하게 형체를 보이고는 금새 사라지는 연기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한시간 전 만해도 나는 녀석이 죽어있길 바랬었는데, 지금의 이런 의식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내 마음 편하자고? 좆같았다. 병원으로 보내기 전에 한번 더 아이를 보고 인사할 면목이 도저히 없었다.



아침이되자 밤새 놀던 초롬이가 밥먹으러 다시 들렀다. 오늘도 무사히 돌아온 초롬이 얼굴을 보면서, 아까 죽은 저 녀석의 길을 건너기 전 얼굴은 어떻게 생겼었을지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오만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