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막걸리 언니

20221205


그놈의 천안막걸리. 처음 개업했을 때엔 장수막걸리를 디폴트로 구비하고 있었다.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을뿐더러 타지에서 온 거였으니 지역 막걸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잘 모르니 그냥 많이 들어본 것 같은 걸로 시켰던 거지.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저 술이라면 다 좋아하는 줄 알고.


동네 아저씨들은 천안막걸리는 왜 없냐며 지겹도록 잔소리를 했다. 지역막걸리는 본사에서 납품해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입으로 처리해야 해서 별도의 절차가 필요했다. 천안막걸리를 매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점포 점주님의 도움을 받아 결국 판매를 시작했다. 천안막걸리는 정말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어쩌면 그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막걸리를 한동안 매일같이 사러 오던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도 타지에서 온 것 같았는데, 천안막걸리가 입맛에 맞았는지 다른 건 쳐다도 보지 않았다. (혹시 천안에 오시면 꼭 사보시길 바란다. 맛있긴 해.) 문제는 너무 많이 사간다는 것. 한번 올 때 3병 정도씩 사가던 언니가 나중에는 7병씩 사갔다. 하루에 7병을 산다는 말이 아니다. 한번 들를 때 7병이고, 하루에도 두세번씩은 왔다. 그때는 근무를 4교대로 돌릴 때였는데, 모든 타임의 근무자가 그 언니를 알았을 정도로 하루종일 술을 마셨다. 당연히 이미 취해있는 상태로 더 사러온 적도 있다. 동거인이 있어서 같이 마시는 거겠지, 설마 저걸 혼자 다 마시겠어? 라는 생각도 했지만 가게에 올 때 누구랑 같이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편의점은 술과 담배를 팔기 때문에 원치 않아도 알코올과 니코틴 중독자를 하루에도 여러명 보게 되어있다. 중독자를 상대로 중독성 물질을 공급하며 이익을 취하는 이 바닥의 민낯에, 나는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난다. 내가 마약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합법적이라는 것 뿐이다.


막걸리 언니 이전에도 소주를 미친 듯이 사가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때 이런 대화를 했었다.



“아까도 사 가셨잖아요.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더 사시려고요?”



“아까 한 병밖에 안 샀잖아. 계산해 줘, 빨리.”



“한 병만 마시기로 해서 하나만 사 가신 거잖아요. 줄일 거라고 자기 입으로 그러고서는.”



“아, 잔소리 그만하고 빨리 계산이나 해.”



“정말 끊고 싶으시면, 제가 안 팔아드릴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저는 안 팔아도 상관없어요. 이거 팔아서 뭐 얼마나 더 벌어먹겠다고. 근데 제가 안 팔아도 저기 다른 데 가서 사드실 거잖아요. 그럼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려요.”



“당연하지. 그러니까 귀찮게 멀리 가게 하지 말고, 얼른 찍어.”



이렇게 늘 제자리걸음. 중독자와는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고, 본인을 비난한다고 받아들여 버린다. 당사자가 스스로 의지를 갖지 않는 한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겪어본 일을 반복해서 또 겪을 뿐이었다. 겪어온 중독자 중에서도 언니는 좀 심각하다고 느꼈다. 막걸리는 다른 종류의 술보다도 쉽게 배부르기 때문이었는지, 안주도 없이 술만 마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소주 중독자 아저씨는 안주라도 사 갔었는데. 뭐, 편의점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집에서 밥해 먹거나 배달시켜 먹는 걸 수도 있지. 굶기야 하겠어? 어차피 내가 또 개입해봐야 걱정으로 듣긴커녕 오지랖 떨지 말라고 할텐데.


애써 모른 척하는 동안 원래도 마른 편이던 그 언니는 살이 점점 더 빠져갔다. 술 때문인지 나중엔 계산하며 손을 떨기도 했다. 막걸리 7병이면 내가 들어도 무게가 꽤 무거운데, 저 마른 몸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힘겹게 들고 나갔다. 저렇게까지 하면서 꼭 저걸 마셔야 하나 싶게.



일을 안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듣기로는 프리랜서라고 했다. 가끔 일이 잡혀있을 때는 말끔하게 차려입고 와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입출금 용건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며 출근을 나가기도 했다. 일하는 기간에는 술은 전혀 마시지 않는 것 같았다.



하루는 또 현금인출기를 쓰려고 들렀는데, 어디서 낮술을 하고 왔는지 이미 취해있었다. 뭐가 잘 안된다며 나보고 이리 좀 오라고 했고, 가끔 잔고장이 있을 때가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 다른 손님도 없겠다, 바로 인출기 앞으로 갔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화면이 떠 있었다. 언니는 자기가 취해서 비밀번호를 정확히 못 누르겠다고 나보고 대신 눌러달라고 했다. 또 손을 떨고 있었다. ‘언니, 근데 이거는 개인정보라 제가 대신해 드리기가 좀 곤란한데요...’ 하자 괜찮다고 부탁 좀 한다며 숫자를 불러주셨다. 친분도 없는 나를 어떻게 믿고.


*, *, *, *. 숫자를 누르니 통장 잔액이 바로 떴다. 언니, 됐어요. 하며 의식적으로 얼른 눈을 돌렸지만, 그 짧은 순간 의도치 않게 대략적인 금액을 봐 버렸다. ‘0’이 적어도 여덟개였다. 최소 억대의 잔액. 더 수상한 건 억 단위 아랫자리 수들이 다른 무작위적 숫자가 아니라 전부 ‘0’이었다. 그래서 찰나에도 똑똑히 보였던 거고, 그 딱 떨어지는 숫자를 보고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정체가 뭐지. 놀란 티 내지 않으려고 카운터로 자리를 피했다.



그 후로도 한동안 일, 술, 일, 술. 같은 패턴의 반복이다가 갑자기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며칠 오지 않은 걸 인지하고 있지는 못했다. 다른 근무자와 얘기를 나누며 ‘그러고 보니 요즘 그 언니 안 오네. 니 시간엔 왔었어?’하고 서로 물어보다가 내 타임이 아닌 시간에도 아예 방문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 그 주 낮에 이모님 근무 시간에, 처음 보는 사람이 가게에 와서 사진을 내밀며 ‘이 사람 아시냐’고 물었다고 했다.



사진을 가져오신 분은 그 언니의 가족분이셨다. 그분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많은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그 언니는 남편이 있었다. 오래 만나고 결혼했다고 했다. 결혼한지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남편이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떴다고 한다. 추측하기론 그때가 많아봤자 삼십대 초반 정도였을 거다. 그때부터 술을 그렇게 마셨다고 했다. 가족들이 옆에서 보기 속상해서 본가로 다시 데리고 와 같이 살았었지만, 숨 막힌다며 매번 나갔다고 했다. 간섭할수록 더 멀리 도망갔다고. 알았으니 네 뜻대로 사는 대신 연락은 주기적으로 하게 해달라고 약속하며 놓아준 거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연락하고 지낸 모양이다. 어디냐고, 뭐하냐고 물으면 ‘편의점에 막걸리 사러 간다’고 대답하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편의점이 그 편의점인 것 같아 찾아왔다고 하셨다. 최근 연락이 안 닿은지 며칠됐는데, 마지막으로 여기 온 게 언제였냐고 물으시면서. 이모님이 ‘며칠 안 오셔서 우리도 못 봤다’고 하자, 근처 지구대를 알려달라 하셨단다.





나는 당시에 그 자리에 없어 다 동네 분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경찰은 실종 신고를 받고 건물주의 협조를 통해 가족분과 함께 언니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언니는 집에서 업혀 나왔다고 한다. 구급차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과학수사대 차량이 들어왔고, 곧 모두 철수했다고 했다. 그 건물의 건물주는 우리 가게에 방문해 경찰들에게 나눠줄 커피를 사면서 집값을 걱정하며 하소연했다고. 건물주의 염려와는 달리 벌건 대낮 시간 동안의 일이라, 동네는 경찰차/구급차/과학수사대가 연달아 왔다 간 것치고는 아주 조용했고, 근처에서 가게를 하는 소수의 사람만이 기억하는 일로 남았다.



말로만 듣던 고독사.


이모님은 처음 가족분이 내민 사진을 보셨을 때, 같은 사람인 줄 못 알아봤을 정도라고 하셨다. 적당히 보기 좋게 살집도 있고 건강한 모습. 우리가 알던 그 언니와 달랐다.


내가 포착했었던 통장 속 고액의 잔액은 남편의 사망보험금이었으리라. 가족분 말씀으로는 사망한지 몇 년이 지났다고 했었는데, 한 푼도 안 쓰고 가지고만 있던 돈인 거다.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그 통장에서 출금을 하려던 걸 보면, 그렇게 지켜온 남편의 목숨값을 그날은 꼭 쓸 수밖에 없었나 보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렇게 술에 취해 왔었겠지.


그 언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겠지만 조금만 더 친절할 걸 하는 후회가 남았다. 나는 술 취한 사람에겐 그리 친절치 못한 편이니까.



벌써 몇 년이 지난 이야기다. 그 후로도 언니 같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거쳐 갔다. 각자의 사정들이 있겠거니. 나고 드는 주기가 워낙 빠른 원룸촌 동네라 이사를 갔는지, 그곳에서도 또 그렇게 술을 마시며 살지 알 길이 없다.



작년에는 한 아저씨가 막걸리 언니와 똑같은 패턴으로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안 오던 때가 있었다. 그 아저씨의 주종은 맥주. 개근상이라도 드려야 할 정도로 거르지 않고 왔고, 하루하루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본인도 그걸 의식해, 밖에서 지켜보다 다른 손님이 없을 때만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항상 밤에만 오셨고, 실내는 밝으니 낯빛을 숨길 수 없으니까. 사람이 아프면 피부색이 그렇게 초록색이 된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정말 팔기 싫었다. 내가 팔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라도 살 것이 뻔했고, 그렇게 되면 아저씨가 괜찮으신지 이렇게라도 확인할 길이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망설이던 차에 안보이기 시작하니 또 다시 죄책감이 밀려왔다.


3일째 안 오셨을 때 지구대를 찾아갔다. 최근 열흘 동안 구매해가신 영수증 내역을 뽑아, 매일 오셔서 술을 사가시던 분이 갑자기 오지 않는다고 실종 신고를 부탁드렸다. 정확한 신원은 내가 알 수 없으니, 카드사용 기록으로 파악해 주시라고. 경찰은 ‘그냥 다른 가게를 가는 게 아니냐, 가족도 아닌데 단순히 편의점 단골이 안 온다는 이유로는 접수를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설득해도 방법이 없었다. 막걸리 언니 생각이 자꾸만 났다. 이분 잘못되면 니들 책임이라고 욕을 뱉으며 경찰서를 나왔다. 사실은 내 책임인 것 같았다. 답답함에 눈물이 났다.


길었던 주말을 아저씨만 기다리며 보내다 월요일 아침부터 시청에 전화했다. 천안시 복지과에 [파랑새 편의점]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겨, 우리는 참여 매장 중 하나였다. 소외계층의 위기나 아동학대 등을 감지했을 때 편의점 측의 신고로 해당 가구가 임시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제도였다. 다행히 담당 부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당일에 바로 방문해 정보를 얻어갔고, 신원 확보는 물론 내가 갔던 지구대로 협조를 명령해 휴대폰 위치추적까지 해가며 모든 상황을 나에게 공유해 줬다. 건강상의 문제로 타지에 계신 걸로 사건 종결. 다행히 본인 의지로 병원행을 선택하신 것 같았다. 회복 후로는 몰라보게 몸 상태가 좋아지셨지만 다시 술을 사러 오시곤 했다. 하지만 그 전과 같은 주기와 주량은 아니었다.


나나 잘해야지. 누구보다 금연하고 싶은 한편 실천하지 못하는, 또 한명의 중독자일 뿐인 내가 무슨 자격으로. 여전히 술, 담배를 판 소득으로 살아가는 내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작가의 이전글 TMI(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