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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Sep 09. 2023

잘못을 하셨으면 벌을 받으셔야죠

20230909


그날 출근하자마자 전달받은 내용은, 초롬이에게 주라며 고양이 캔을 몇 개 결제해 놓고 간 손님이 있다는 거였다. 초롬이를 예뻐하시는 단골분들이 고맙게도 종종 간식을 챙겨주고 가시긴 했지만 아까 오셨던 그분은 처음 뵙는 손님이었다는 직원의 말. 누군지 기억해 뒀다가 뭐라도 서비스로 챙겨드리던가, 하여간 감사 인사는 해야겠길래 CCTV를 확인하려고 방문하신 시간을 물어봐 두었었다. 그 시간대의 구간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도난 장면을 발견한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2023년 7월 14일 밤, 고양이 캔을 산 사람이 들어오기 바로 직전에 온 그 남자는 담배 결제가 끝난 뒤 직원이 물류를 정리하려고 자리를 뜬 사이, 계산대 위에 진열되어 있던 츄파춥스 사탕 하나와 바로 옆에 있던 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가방에 챙긴 후, 대범하게도 바쁜 직원을 향해 ‘수고하셔요~’라는 능글맞은 인사까지 하고서 가게를 나갔다. 50에서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앞이마가 살짝 벗겨진 아저씨뻘의 남성.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티끌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자기 물건 챙기듯이 가방에 넣더라.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내가 혹시 무언가 놓친 게 있는 건 아닌지 영수증도 영상도 여러 번을 돌려봤다. 피해 금액은 단돈 1,300원. 정녕 그 정도 돈도 없어서 저걸 훔칠 것 같은 사람도 아니었고, 충동적이라기엔 너무도 태연한 행동을 보였으며, 나나 우리 직원에 대한 적대심으로 앙심을 품고서 의도적인 절도를 했던 것도 아니었거니와(동네 장사 8년 차에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너무도 멀쩡해 보이는 허우대의 지극히 평범한 그 나이대의 사람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CCTV 영상을 녹화한 후에 당일 퇴근하자마자 바로 근처의 지구대로 직행했다.


훔쳐 간 놈이 담배를 결제했을 때 다행히 카드로 결제했기 때문에, 해당 영수증엔 카드 정보가 찍혀 있었다. 영수증과 함께 CCTV 녹화본을 증거물로 제출했다. 경찰이 요청한다고 해도 카드사에서 바로 개인정보를 내어주는 건 아니라서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지구대에서 접수한 내용이 – 형사과에 배정되고 – 형사가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위해 검찰로 정보 공개 요청을 요청해야 하며 – 검사가 검토 후 카드사에 정보 공개를 명령하면 – 카드사에서 형사에게 해당 영수증과 관련된 개인정보를 넘기는 과정. 신상이 특정된 시점부터는 형사가 찾아가 검거만 하면 되니까 어려울 게 없겠지. 사건마다 다르겠지만 여기까지 한 달 하고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훔친 당사자에겐 이미 이 일이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을지도 모르는 기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어제, 범인의 선배라는 사람이 우리 가게에 나를 찾아왔다. 정확히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첫 방문 때는 평일 오후 근무자가 있을 때 와서 내가 일하는 시간을 물어보며 다음 날 내 시간에 재방문하겠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지만 오지 않았다. 그리고 열흘 뒤 두 번째로 왔을 때는 주말 오후였고, 당연히 또 내가 없으니(나는 새벽부터 점심까지 근무한다) 자기 명함까지 주면서 주말엔 자기가 쉴 거니까(...) 일요일엔 못 오고 월요일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갔다는데 결국은 월요일에도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였던 어제, 드디어 내가 있을 때 온 거였다. 나는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2주 동안 의구심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훔쳐 간 범인 당사자도 아니고 왜 지인이라는 놈이 와서는 뭘 어쩌라고 나를 보자고 하는 건지, 그리고 (아쉬운 건 그쪽일 텐데도) 뭐가 그렇게 사람이 경우도 없어서 지 편할 때 불쑥불쑥 찾아와 놓고는 만날 약속도 일방적으로 통보하질 않나, 그마저도 두 번이나 안 지키질 않나. 하여간 도대체가 이해가 가질 않아 내게 무슨 말을 하러 온 건지 존나게 궁금하면서도 저런 사람 사정은 쥐뿔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이중적인 마음이었다.


들은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본인은 그날 범인과 함께 술을 마셨던 일행이다.

2. 경찰이 추적한, 여기서 결제한 카드의 실 사용주는 범인 당사자가 아니라 본인이기 때문에 경찰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도 그가 아닌 본인이다.

3. 즉, 당시에 본인이 후배인 범인에게 자신의 카드를 내어주며 담배 좀 사 오라고 심부름시킨 거였고, 범인은 카드를 받아서 대신 결제했던 것.

4. 그리고 그 직후 사탕과 젤리를 ‘더 가져갔을 뿐’이다. ‘그냥 계산을 안 했을 뿐’이다.

5. 그래서 계산하러 왔다.

6. 그러니 없던 일로 해 달라.


“합의”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그때 안 낸 돈을 결제하러 왔다’고 하는 걸 보면 1,300원으로 합의금을 퉁 치려고 온 거다. 내가 처음에 신고하면서 여기저기서 수집했던 정보로는, 남의 물건은 단 천 원짜리 물건을 훔치더라도 합의시 합의금은 기본이 백만 원부터 시작이다. 저 능구렁이 같은 양반은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무식한 인간이거나, 존나게 약아빠진 인간, 둘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저쪽 길 건너편에서 부동산을 운영한다고 하니 후자일 가능성에 내 돈 모두와 내 손모가지를 건다.)

확실한 건, 백이 아니라 몇백을 준다고 해도 애초에 합의 의사가 없었다. 진술서에도 무조건 처벌만을 원한다고 작성했었다. (현재 내 이름으로 된 빚을 한 방에 다 갚을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을 합의금으로 제시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 볼 의향이 있다. 물론 그럴 리가 없으니 합의는 절대 없다는 뜻) 그리고 합의를 한다고 해도 당사자가 합의를 해야 맞고, 그 일에 대해 사과를 한다고 해도 역시 당사자의 몫이지, 이놈은 지가 뭔데 여기까지 세 번이나 찾아와서 갖은 염병과 오지랖을 떠는 걸까.


내가 가장 화나는 부분은 범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담배를 계산하면서 다른 걸 ‘더 가져갔을 뿐’이고, 그걸 ‘계산하지 않았을 뿐’이라니. 이게 시발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르겠다. 막걸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역시나 ‘그날 술에 취해서 잠깐 실수했던 거’란 뻔한 말도 했었다. 아오, 재미없어. 식상하다, 식상해. 원래 븅신 새끼들은 술 핑계 말곤 다른 레퍼토리도 없냐? 주사가 도벽이면 새꺄, 술을 쳐 먹지를 말아야지, 내말이 틀려?


“아즈씨, ‘더 가져간’ 게 아니고요, ‘계산을 안 한’ 것도 아니고요. 그게 정확히 [훔쳐 간] 거예요. 그리고 아즈씨 말씀대로 술 취한 사람들이 남의 물건 좀 훔쳐 갈 수도 있는 게 당연한 거면, 나 같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장사 어떻게 했겠냐고. 적당히 말 같은 소릴 해야 들어주지.”


”않이, 우리 사장님이 왜 자꾸 그걸 [훔친] 거라고 표현하시는지 모르겠는데, ~”


“CCTV 보셨다면서요. 그게 훔친 게 아니면 뭐에요? 그럼 훔친 것도 아닌데 여긴 뭐 하러 오셨고요? 그러면서 무슨 합의를 봐요, 누구 좋으라고.”


그 와중에 다른 손님 계산도 해야만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눈치 보던 손님이 계산대에 맥콜 500ml 하나를 올려 두었다. 성질 같아서는 바로 뚜껑을 따서 내 목구멍으로 벌컥벌컥 들이킨 다음, 남은 건 저 양반한테 쏟아붓고 싶었다.


삑-


“2,000원입니다.”


합의 의사가 전혀 없다는 내 입장을 확실히 전하고서, 이런 식으로 또 찾아오시면 굉장히 불쾌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 양반이 나간 직후 다음 손님 계산해 드리려고 포스 화면을 봤는데, 아까 찍었던 맥콜이 계산이 안 된 채로 그대로 찍혀 있었다. 시발!? 일단 항목을 지우고 기다리던 손님 물건을 새로 찍어 계산해서 보낸 뒤, 아까 상황의 CCTV를 확인해 보니 카드 승인이 분명히 되긴 했는데 정상 승인이 아니었다. 손님도 계산이 된 줄 알고 그냥 나갔고, 나도 아까 꽤 격앙된 상태로 대화를 하던 중이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나 보다. 결국 1,300원짜리 도난 사건에 쉽게 합의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2,000원의 손해까지 더해진 꼴이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블랙코미디인 걸까. 내가 옳다고 믿던 것들이 정말 옳은 게 맞기는 한 걸까. 순전히 내 고집이었던 걸까. 웃음밖에 나오지 않더라. 엉망진창.


이러니 주변에서 들었던 [큰 금액도 아닌데 피곤한 일에 엮이지 말고 그냥 눈 딱 감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 아니냐], [그냥 좀 봐주지, 뭘 굳이 이렇게까지 하느냐], [왜 괜히 일을 키우느냐]는 우려의 말들이 머릿속에 스친 거다. 그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보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커서 그렇다는 것도 안다. 가게 이모님만 해도 요즘 세상이 흉흉한 만큼 저 인간들이 새벽에 나 혼자 있을 때 쳐들어와서 보복성 깽판이라도 치고 갈까 봐 걱정하셨다. 혹시나 비슷한 걱정을 하실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해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저 멍청한 인간은 내가 묻지도 않은 정보들을 자기 입으로 질질 흘리고 갔거든. 본인이 이 동네에서 부동산을 한다는 것과, 본인과 범인은 천안의 ㄹㅇㅇㅅ라는 친목 단체(심지어 봉사 단체라는 게 킬링 포인트)를 통해 알게 된 사이라는 것. 그러니 평판 개좆되고 싶지 않다면 절대로 나에게 함부로 해코지할 수가 없다.


그리고 반면에 조용히 지켜보며 몰래 응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다. 자신이라면 피했을 수도 있는 일을 나는 고집스럽게 굳이 싸우고 있으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 대리만족을 충족시켜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저년 저거 또라이라고, 저 미친년이 또 미친년 했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어떻게 생각하던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집착스럽게라도 하고 싶다. 난 그저 나와 당신들에게 속이 다 시원한 사이다 결말을 써 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꽤 스트레스받는 건 사실이지만 너님들에게 캬라멜 팝콘각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이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업데이트 받고 있는 한 친구는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행동의 이유가 궁금한 이유는 그들의 행동을 어떻게든 이해는 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거다. 나 역시 그 과정을 거치며 한참을 고민해 봤었다. 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지들도 지들이 왜 그랬는지 모를 거다. 어쩌면 아무런 이유도 없을 거다. 나는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봤자 어차피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해할 필요도, 이해해볼 가치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제는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생각할수록 똑같은 인간들이었다. 훔쳐 간 놈이나, 그놈 감싸주려고 나에게 찾아와서 얼렁뚱땅 합의를 강요하는 놈이나. 그리고 우연히 손에 넣게 된 남의 카드를 도용해 경찰 조사까지 받아놓고서는 ‘왜 그러셨냐’는 나의 질문에 ‘호기심에 그랬다’고, 쿨내 진동하는 대답을 했던 나의 아부지나. 다 똑같은 인간들이다. 나는 그들을 도저히 너그러이 용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건 옳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1,300원이란 금액은 여전히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은 매우 옳지 않았고, 나는 다른 옵션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옳지 않은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던 것뿐이다. 어쩌다 보니 그 사건 때문에 추가적인 손해를 입었지만 결국은 별개의 사건이다. 그건 그냥 다른 데에 정신을 쏟았던 내 실수였고, 맥콜을 구매하려 했지만 구매하지 ‘못하고’ 그냥 가져간 게 돼버린 그 고객도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 온전히 내 실수이기에 내 책임이니 내가 메꿨다.

마지막으로, 잊지 마시길. 고양이 캔을 사주었던 한 선한 사람 덕분에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는 건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분이 고양이 캔을 사주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고양이가 늘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고양이의 보은. 기승전 고양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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