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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Jan 16. 2024

꽃의 효능

20240116



우리 가게와 마주 보고 있는 카페는 젊은 부부가 운영한다. 매일 인사를 나누면서도 서로가 바빠 사적으로 만난 적은 몇 년 전 동네 빈티지 샵 세일 때 함께 쇼핑을 갔던 날 딱 한 번뿐이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어떤 마인드로 가게를 운영하는지는 거기서 파는 음료와 빵을 맛본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늘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그걸 아낌없이 넣는데도 가격은 딱 다른 카페만큼만 받았다. 냉동 생지로 유통 받아 매장에서 굽기만 하면서도 비싸게 받아먹는 양심 없는 곳들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작년 가을에 문을 닫은 반대쪽 카페 사장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그 여자도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였는데, ‘카페 사장’이라는 근사한 프레임에 취해 장사는 뒷전이었다. 개업 초기, 영업시간이 끝나고 나면 또래 친구들을 잔뜩 불러 밖으로 소리가 다 새도록 노래방 기계를 크게 틀어놓고 밤새워 놀곤 했다. 주변이 모두 원룸 건물인데 동네 장사하면서 소음으로 동네 사람 미움이라도 사면 어쩔 셈인 건지. 가게에 작은 문제만 생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거의 늘 상주하고 있는 즈그 아버지를 찾았다. 매너도 없는데 공주님이기까지. 계약기간도 못 채우고 정리하기 한두 달 전엔 그 아버지란 사람이 우리 가게에서 웬 얼음을 사 가기도 했었다. 한여름에 아이스 음료를 파는 카페가 편의점서 얼음을 사다가 쓰다니, 제빙기가 고장이 났나 했다. 그게 아니라 매출이 안 나와서 전기세라도 아끼려고 전날 밤에 제빙기를 꺼 놓고 퇴근했다고 했다. 그러면 다음 날 영업준비를 좀 더 일찍 나와서 했었어야 하는데, 점심이 거의 다 돼서야 느즈막히 출근해 놓고는 배달 주문이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이 급히 사러 온 거였다. 개업 날 선물 받은 것 같은 크고 비싸 보이는 화분들은 언젠가부터 가게 밖에서 말라 죽고 있었다. 우리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마다 주인 잘못 만난 그 화분들을 가여워했다. 화분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가게는커녕 제 새끼는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그래서 항상 열심히 사는 앞 카페의 친구들이 도리어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게, 내가 다 분하고 억울했다. 또 아이의 간 이식이 취소됐단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간 기증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카페 부부는 새벽부터 아이를 데리고 서울의 큰 병원에 가 수술 준비를 했다. 이식 부적합 판정이 차라리 좀 일찍 나오면 대기 시간이라도 줄어들겠지만(두 번째 취소 때는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 가는 길 도로 한복판에서 취소 연락을 받았었다), 세 번째인 그날에 아이는 19시간이나 금식해야 했다. 어른인 나도 건강검진 전 고작 8시간 금식이 그렇게나 힘들던데. 물 한 방울 마시지도 못하는 와중에 여러 가지 검사도 해야 했을 테니 어린아이는 칭얼댔고, 달래는 부모 마음은 미어졌다.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된 상상 속에서는 수도 없이 들었을 ‘적합 판정’과는 달리 이미 들어 본 말이지만서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이식 취소’란 말을 또다시 들어야만 했을 때, 아이는 “그럼 나 이제 밥 먹을 수 있는 거야?”라며 해맑게 웃었다고 했지만, 부모는 웃는 아이와 함께 웃어 보이며 동시에 울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이 그랬으리라 추측만 할 뿐이지 쥐뿔도 모른다.

다음날, 카페의 주황색 불은 늘 그랬듯이 새벽에 켜졌다. 직접 간 이식을 해 주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 미리 건강관리를 해 둬야 하니 ㄴㅎ씨는 2년 전부터 좋아하던 술도 끊고, 새벽반 수영까지 배우고서 출근한다. 여자는 연약할지 몰라도 어머니는 강하다. 신랑도 같은 이유로 15kg이나 감량했다고 했다.
전날 그 힘든 일을 겪고 왔는데도 치료비를 벌어야 하기에 가게를 쉴 순 없었다. 장기 이식은 이식이 확정되든 취소가 되든 간에 적출을 위한 의료행위에 따른 비용은 물론이고, 운반을 진행한 의료진들의 교통비까지도(헬기를 타더라도) 수혜자 쪽에서 모두 지불해야 한다고 하더라. 이식을 못 받았는데도 이럴 때마다 돈 몇백이 우습게 깨진다. 그런 시스템이 납득이 가면서도 그 허무함을 쉽게 받아들이긴 어렵다. 그럼에도 아이의 엄마인 ㄴㅎ씨는 간 기증자와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기회를 주셔서 그저 감사하다’고 했다. 다음의 기회를 위해 다시 빵을 구우러 부지런히 나온 ㄴㅎ씨의 하루는 너무나도 길다.

안 그래도 아픈 아이가 그 고생을 하고 와서였는지, 좋지 않은 신호의 증상들 때문에 하루만에 다시 급히 서울로 올라가 응급실에 입원하게 됐다. 사유는 정맥류 출혈. 우리는 하루가 더 지나고 나서 다행히 수술이 잘 됐다는 기다렸던 소식을 들었다. 여전히 새벽에 출근한 아이 엄마의 얼굴이 한결 나아 보였다. 나중에 더 자세히 들어 보니 정말 큰 일이 났을 수도 있었던 위험한 출혈이었더라. 당장 급한 불은 꺼졌지만 혹시 모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회복 과정을 면밀히 모니터링 해야 해서 퇴원까지는 사나흘 더 걸린다고 했다. 그 며칠 동안은 아이 아빠가 병원을 책임지고, 아이 엄마는 가게를 책임지기로 한 모양이었다. 자리를 지키느라 병원에 갈 수 없었던 ㄴㅎ씨한테, 마취에서 깨어난 아이의 얼굴마저 영상 통화로 확인했다고 들었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것도 없지만, 이상하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철없는 그 나이의 여느 또래들과는 다른 하루하루를 보내며 사는 ㄴㅎ씨가 자꾸 괜히 신경 쓰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함께 일하는 직원과 가게에 온 손님들 앞에서 힘든 티 내지 않으려 애쓰는 게, 삐에로처럼 웃으며 괜찮은 척 억텐으로 버티는 게,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저항 없이 부서져 가루가 돼 버릴 것 같으면서도 책임감과 의무감에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하루 종일 온 에너지를 다 쓰는 게 뭔지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씩씩한 척하는 게 아니라 씩씩해지는 것 말고는 별도리가 없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무언지 징하게도 겪어서 모르지 않기 때문에. 내 눈에는 보이는 그걸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주제넘게도 굳이 아는 체 하고 싶어 못 견딘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요 며칠 아침에 인사를 나눌 때마다 웃어주던 그 예쁜 눈이 꼭 전날 한참을 울고 잔 눈같이 보였던 게 기분 탓만은 아닐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겠는데 염병 뭘 해야 좋을지는 모르겠고, 뜬금없이 그냥 무턱대고 꽃을 주고 싶더라.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꽃’이 어떤 깊은 생각을 거쳐 나온 결과값이 아니었기에, 결과값을 정해 놓고서 왜 그러고 싶은지 찬찬히 생각해 봤는데, 그러다 보니 그게 또 그리 나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안절부절못하는 어설픈 위로의 단어를 써가며 밑도 끝도 없이 ‘다 잘될 거야’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기도 싫었고,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위로의 근처도 못 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차선이었다. 그냥 아주 잠깐만이라도 ‘애써 웃는 척’ 말고, 애 같은 거 쓰지 않고도 찐텐으로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꽃이라면, 아마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하필이면 새로 갱신한 운전 면허증을 받으러 경찰서에 다녀와야 했던 날이었다. 칼퇴근 후 경찰서 점심시간 전에 도착해 일찌감치 수령하고 와야 빨리 꽃집에 다녀오고 또 빨리 줄 수 있을 것 같아 꽃을 사기로 마음먹은 아침부터 마음이 초조했다. 꽃이란 것은 자고로 예외 없이, 받은 그 순간부터 남은 하루를 꽉 채워 기분이 좋은 그런 것인데, 조금이라도 더 일찍 주어야 그걸 보며 웃을 수 있는 시간도 횟수도 그만큼 길어지고 많아질 것 같았다. '선물'은 정말 주는 사람이 늘 똥줄이 타는 묘한 행위이다. 내게 쥐를 잡아다 준 초롬이도 그 끔찍한 걸 물고 오는 내내 이런 기분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깐 꽤 귀여워 보인다.
다행히 택시도 바로 잡히고 경찰서 민원실 대기도 길지 않았다. 새로 발급받은 운전 면허증 속 사진의 내가 라틴계 마약 카르텔 조직 보스의 세컨드처럼 나와서 그렇지. 현타가 오졌지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럴듯한 몽타주 때문에 경찰서 출입구 검문에서 괜히 붙잡힐 수도 있으니 얼른 빠져나와 돌아오는 택시를 타고 꽃집에 도착했다.

작년에 접촉 사고로 우리 가게와 한 차례 트러블이 있던 그 꽃집이었는데, 나중에야 그 일을 알고서 사고를 낸 바깥양반을 대신해 따로 사과해 주신 사모님 덕분에 다시 편하게 인사하고 지낼 수 있었다. 사건 이후로 꽃을 사러 간 건 오늘이 두 번째였다.

“안녕하세요! 꽃 좀 사려고요.”

“뭐 좋은 일 있나 봐요? 졸업 시즌이라 조금 기다려야 되는데, 어디다 선물하시게?”

“아. 좋은 일은 아니고요, 상황을 따지고 보면 아직은 안 좋은 일에 더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 하여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으응? 왜, 병원 같은 데라도 가는 거야?”

“아뇨, 그건 아니고 앞집 애기가 아파서 입원 중이라 애기 엄마한테 주려고요. 수술은 다행히 잘 됐다는데, 가게 일 때문에 보러 가지도 못했대요. 병원엔 아빠가 가 있는데 애기랑 영상 통화만 했대서 속상해가지고... 며칠 더 입원하는 동안 집에도 혼자 남아 지내야 하는 모양이에요.”

“아이고, 저런. 편의점 지나서 거기? 한 동네 살면서 나는 그런 것도 몰랐네. 그 집에 그런 사연이 다 있었구나, 아이고. 나도 다음에 케이크 살 일 있으면 거기 좀 팔아줘야겠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음, 가만있어 보자. 그러면 어떤 꽃이 좋을까.”

“저는 이런 거 잘 모르니까, 사모님이 예쁜 걸로 알아서 해 주세요.”

누가 보아도 꽃집 할 것 같은 외모의 온화한 인상과 말씨를 지닌 사모님은, 대책 없이 들이댄 오마카세 요청에 튤립을 고르셨다. 어때, 괜찮냐는 물음에 나는 예쁘다고 답했다. 수줍게 오므려진 몇 송이를 꺼내어 줄기를 자르는 용도로 보이는 짧은 가위로 길이를 살짝 다듬으시고는 주변에 안개꽃을 대어 보셨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포장하시는 동안 나는 화원을 둘러보았다. 공장에서 찍어내지 않은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는 우리 가게와는 달리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것들로만 가득 찬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고 있을 때, 사모님이 ‘거기 난로 위 주전자에서 대추차가 끓고 있는 중이니까 이쪽에서 종이컵 하나 가져다가 따라 마시고 있으라’고 우아하게 외치셨다. 커다란 난로 위의 커다란 주전자에 손이라도 델까 무서웠지만 곧 손이 따듯해지고 그걸 마신 몸도 따듯해졌다. 살짝 덜 우러나 아직은 은은한 대추 향이 그래도 구수했다.

“에휴. 나는 멀쩡한 애들 키우기도 힘이 들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맘고생일까. 정말로 아이들은, 건강하기만 해도 그저 고마운 존재야.”

내가 듣든 못 듣든 상관없이 혼잣말하듯 궁시렁거리며 무심하게 뱉으신 그 말에, 별 탈 없이 건강하기는 했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내가 저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자식이었다면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됐었을까.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을까. 오래 고민해 볼 것도 없이 그럴 것 같았다. 이 버전의 나와는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었을 거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최근에야 본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서처럼 다중우주가 실존한다면, 적어도 어느 몇몇 멀티버스에서는 그런 내가 살고 있겠지. 그대들은 내 몫까지 행복해라. 피-쓰.

그사이 포장이 끝나, 입구 쪽에 손 글씨로 써 붙어있는 계좌로 꽃값을 보내드리고서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내가 안녕히 계시라는 대사를 쳐야 할 타이밍에 사모님은 따로 포장한 튤립 한 송이를 더 내미시며 내 말 문을 막았다.

“이거는, 내가 자네한테 주는 거야. 동네 고양이들 챙기고, 주변 사람도 챙기고. 맨날 쉬지도 못하면서 밤엔 일하느라 바쁘고 낮엔 또 남들 챙기느라 바쁘잖아.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하여간 나는 자네가 주는 것만 봤지 받은 건 못 봤으니까, 이건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그러니까 거절 말고 가져가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마침 하트가 잔뜩 그려진 바지를 입고 나간 날이었다.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카페를 들렀다가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닫힌 문에 반사된 나를 보았을 때, 그때의 내 기분이 그려진 바지를 보고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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