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볼

20220906

by 김알록달록


나는 운동을 정말 못한다. 미안하지만 겸손이 아니라 팩트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어떤지는 몰라도 굉장히 많이 들은 소리가 1. 술 잘 마시게 생겼다, 2. 운동 좀 할 것같다 였지만 둘다 전혀 아니올시다. 매 년 운동회마다 반 대표 계주를 놓치지 않는 그런 친구들 있잖아 왜. 나는 반에서 달리기로는 꼴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말이야. 다들 제 새끼 뛰는 거 보면서 응원할 때, 맹히씨는 저 새끼 또 꼴찌할 테니까 차마 못보겠더라고 했을 정도. 맴찢.


못하는 건 달리기 뿐만이 아니었다. 질리게도 하던 피구(프로 스포츠 경기로써는 비인기 종목임에도 왜 들 그렇게 피구를 시키는지 모르겠다. 이게 다 통키 너 때문이잖아 개새끼야)는 시작했다 하면 나부터 즉시 제거됐다. 나는 공이 너무 무서웠다. 초등 저학년 시절 등교길, 고학년 오빠들이 아침부터 축구하다가 슛을 때렸는데 그 공이 내 쪽으로 날아와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 때의 트라우마인 걸까. 무서우면 시발 얼른 피하면 되는데 왜 나는 빌어먹을 공이란 공은 다 쳐맞고 있는걸까. 남들보다 체표면적이 넓으니 맞을데가 많아서일까. 아님 나도 몰랐던 염력이라도 있는 거냐고. 하여간 존나 싫음ㅠㅠ



대학생이 되면 그럴 일이 더 이상은 없을 줄 알았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체육시간'이 없으니까. 하지만 '체육대회'라는 큰 난관이 있었고, 그 방면으로 무능력한 나는 어차피 1도 도움이 안될테니 적어도 방해만은 되지 말자 생각했다.


종목마다 대표 선수를 뽑으려면 기본 실력을 테스트해 봐야 하니까, 선배들은 우리에게 이런 저런 시합을 시켜 봤다. 나는 체육을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사람들은 이거에 진심이었다. 겨우 그냥 교내 체육대횐데 뭐 이렇게까지 열정적인가. 동물 전공이었으니 동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나 같을 줄 알았지. 하지만 체육인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게 내가 아닐 뿐. 타고난 친구들이 여러 종목에서 선수로 뽑히는 동안 저 쪽에 쭈그려 앉아 박수나 치는 애가 나였다. 그 시간은 나는 뭘 해도 안됨을 또 한 번 검증받는 시간이었다.


소프트볼 테스트가 이어졌다. 해보나마나인 내 차례. 선배는 우선 글러브를 끼고 공을 받아보라며 던져줬지만, 날아오는 공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당연히 하나도 못 받음. 이미 답은 나왔지만 이번엔 글러브를 벗고 배트를 들어보라고 했다. 야구 배트를 잡아 본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지 싶은데 이상하게도 손에 착 감기는 것 같은게 느낌이 좋더라. 그렇게 긴장이 풀린 순간, 갑자기 예고없이 공이 날아왔다.



"으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악!!!!!!!!!!!!!!!!!!!!!!"



깡-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작은 공이 너무 무서워 얼떨결에 공을 쳐버렸다. 내가 공을 제대로 쳐다는 보고 친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운좋게 얻어걸려 놓치지 않고 치기는 쳤고, 그저 공이 오는게 존나 싫어서 세게 밀어냈을 뿐인 그 힘에 대한 반작용으로 참 멀리도 날아갔다. 관중하던 선배와 동기들은 난데없이 박수를 쳤다.



공은 계속 날아왔다.



"꺄ㅑㅑㅑ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앆!!!!!!!!!!!"



깡-



"흐이ㅣㅣㅣㅣ이ㅣㅣㅣㅣㅣㅣㅣㅣ잏!!!!!!!!"



깡-



"오지마아ㅣ어ㅏㄴ;ㅓ하ㅣ어ㅣㅇ미ㅓㅏㅣㄱ!!!!!!!!!!!!!!!!!!!!!!!!"



깡-



공포심에서 비롯된 나샛기의 타율은 어마어마했다. 단지 적극적으로 맞기 싫어서 쇠빠따로 공을 줘 팰 뿐이었는데, 모두의 함성 속에 나는 무려 4번 타자로 뛰게 된다.




체육대회 본선. 동물 전공이다보니 우리가 '최약체'라는 편견이 있던 다른 과들은 우리를 우습게 여겼다. 손담비 업신 짤처럼 '니가?ㅋ'라는 표정들이었다. 당시의 나는 그런 경기에 나가 본 게 처음이라 그 분위기에 좀 쫄렸었다. 우리는 열심히는 하는 애들이었지만 욕심이 있는 애들은 아니었기도 했고. 동물 좋아하는 애들이 순수하고 착하다는 건 찐이거든. 공을 못잡아 수비엔 무쓸모인 나를 한 번도 무시하지 않고 '너는 치기만 해, 다른 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라며 격려해 줬고, 그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에 이 팀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운동에 관해서는 누군가 나 따위를 이렇게 끼워 준 적이 없었으니까. 이들을 위해 빠른 달리기가 불가능한 나의 단점을 보완하려 최대한 멀리 치려고 했으며, 못 뛰는 발로 온 힘을 다해 냅다 뛰었다.


경기마다 열심히 임했고, 우리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서 소프트볼 우승의 영광을 안게 된다.



그리고는 다음 학기, 대망의 캠퍼스 매치 전. 전 편에 설명했 듯, 공주대는 캠퍼스가 4개고, 각 캠퍼스에서 우승한 학과가 서로 토너먼트를 하는 방식. 첫 경기가 준결승인 셈. 캠퍼스의 자존심과 위상이 걸린 문제라 안그래도 부담이 컸다. 게다가 과대표들이 모여 팀 매치 제비뽑기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첫 상대팀이 최종 빌런이나 마찬가지인 유력 우승 후보, the "사회체육학과"였다......


밥먹고 운동만하는 사체과랑 붙는 게 애초에 말이 안됐다. 피지컬 조건부터가 다른 애들인데. 어릴 적 운동회 때부터 어떤 종목이든 다 제일 잘 하는 네임드들. 그런 애들만 한 과에 싹 모아놓은 그런 어나더 레벨이랑 우리가 경기를 한다는 것부터 뭐 해 볼 것도 없이 진 거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그들은 홈 경기, 우리는 원정 경기였다.


본캠에 도착해서부터 기가 눌렸다. 선수만 간 우리와 달리, 걔네팀은 그 쪽 캠퍼스 애들이 나와서 응원했다. 우리가 경기장에 들어서자 야유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팀 주장이었던 투수는,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거에 의의를 두자고 했다. 역대 소프트볼 경기에서 우리과가 이만큼 올라온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래, 게다가 나 따위가 말이야. 배트를 처음 잡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무려 사체과랑 경기를 해 본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팀 선수들은 전공에 대한 자부심이 당연히 있었기에 우릴 상대로 쳐주지도 않는 느낌이었다. 저렇게 여유를 부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공을 다 잡아 내는구나. 앞 타자들의 연속된 아웃에 나는 홈베이스에 제대로 한 번 서 보지도 못하고 회차가 넘어갔다. 하지만 저쪽에서 힘을 뺀 만큼 우리는 잔뜩 힘을 주고 수비했기에, 점수를 내 주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잘 버티니 상대팀도 슬슬 긴장을 하기 시작한 듯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내 차례가 왔다. 헬멧을 쓰고 배트를 잡았다. 그 순간에 아무 생각도 안났기 때문에 다른 건 기억이 안나고, 투수와 눈이 마주쳤는데 눈빛이 확실히 다른 과와의 경기와 달랐다. 운동피플 특유의 '승부욕' 같은 거. 살기가 느껴졌지만, 나는 오히려 담담했다. 어차피 내가 쟤랑 싸워서 이길리가 없었으니까. 아니, 비벼 볼 마음도 없었다. 나는 그냥 오는 공만 홀랑 치고 저 눈을 피해 1루로 호다닥 도망 가야징.



깡-



첫 공에 안타. 몇 경기 뛰어본 것도 짬이라고, 이젠 치는 것 정도는 솔직히 그리 큰 일은 아니었는데(예선에서 만루홈런을 때린 적도 있었다) 나는 뛰는 게 약점이니까, 배트고 헬멧이고 뭐고 그냥 다 손에서 놓고 냅다 튀었다. 그 와중에 뒤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급한 맘에 던져버린 배트와 헬멧이 볼과 함께 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배트가 던져진 방향은 경기장 안이 아닌 관중석 쪽이라 경기의 흐름에 지장을 주진 않았지만, 상대편을 응원하던 녀석들이 쇠방망이에 맞지 않으려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고 있었다. 덕분에 그 응원소리를 닥치게 할 수 있었다. 1타 2득. 그 사이 나는 1루를 밟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은 걸 확인했다. 휴, 나도 니들도 세이프.


아이고 미안합니다?



양 팀 모두 1루 진입도 허용이 안되고 있던 상황에 내가 나샛기 주제에 그걸 맨 처음으로 밟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어라, 이거 잘 하면 이길 수도 있겠는데?




답답하던 진행 상황에 숨구멍이 한 번 트이고나니 경기에 활기가 돌면서 다음 타자가 바로 또 안타를 쳤다. 수월하게 2루, 3루 진입. 그 다음 순번의 타자를 보고 나는 득점을 확신했다.



이 친구는 워낙 운동도 잘 하지만 데드볼(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몸에 맞는 것, 그 상태로 한 루씩 출루가 인정 됨)의 장인인 녀석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공을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물론 데드볼이라는 게, 투수가 타자에게 사적인 악의가 있지 않고서야 고의적으로 몸을 저격해서 맞출리도 없고, 맞췄다해도 치명적인 실책이기에 그걸 의도할리가 없으므로 게임에서 흔한 판정이 아니지만, 정말 이상하리만큼 거의 매 게임마다 데드볼을 당해 점수를 내는 녀석이었다. 염력은 내가 아니라 얘한테 있는 모양이다. 천운인지, 불운인지. 하여간 당사자인 너(보고 있나, ㅂㅈㅇ)만큼이나 골때렸다.



투수가 공을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내 머릿속 시나리오대로 공이 스트라이크존이 아닌 타자의 뒷쪽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눈 앞에 슬로우모션이 펼쳐졌다. 타자는 공을 치려는 듯이 허리를 굽히는 '척' 하면서 엉덩이를 스을쩍 내밀었고, 내밀었기 때문에 엉덩이에 공을 스치듯 맞았다(얘가 가만히 있었다면 명백히 안 닿았을 공이었다). 일부러 내민 티가 날듯도 말듯도 했다. 운과 실력(?)이 만난 운명의 순간. 타자를 맞췄던 공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모두의 눈이 심판을 향했다.



데드볼 인정. 함성.



3루에 있던 나는 사실 홈까지 쥰나 멋지게 슬라이딩해 역사적인 첫 점수를 내는 상상을 하고 있었지만, 저샛기 때문에 다 망했다. 저 놈의 데드볼 덕에 시시하게 그냥 걸어 들어갔고, 아쉬운 마음에 홈을 밟으면서 세레모니라도 했다. 감격의 웨이브를 시전. 드디어 [1 : 0].


그 후로는 뒤 따라오던 선수들 역시 쭉쭉 득점을 하며 들어왔다. 사체과 녀석들은 한 번 멘탈이 무너지고나서부터 속수무책으로 계속 당하기만 했다. 한 바퀴를 돌고 거의 다시 내 차례가 올 만큼의 꽤 큰 점수를 냈다. 격차가 벌어지니 심판의 콜드 선언으로 게임 종료.



운동엔 소질이 없던 내가 사체과를 상대로 원정경기 뛰어서 발라버리고 온 썰. 이건 내 버전의 기억이니 내 자랑만 실컷 쓴 것 같지만, 내가 잘 해서 잘 됐단 이야기는 아니고(물론 잘 함). 자신들보다 한참 부족한 나에게 기회를 준게 고마웠고, 내가 그 안에 속해 한 역할을 해냈다는 것만 해도 '운동 고자'로써 너무나 영광이었다. 매 년 체육대회를 극혐했던 내가 처음으로 그걸 즐긴 순간이었다.



아, 결승전은 어떻게 됐냐고? 아쉽게도 결승엔 출전할 수 없었다. 교수님들이 마지막 경기 날 수업을 안 빼 주셨다. 사실 과 측에서도 우리가 당연히 지고 올 거라고 생각했기에 스케쥴 변동을 예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허락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기권으로 준우승. 이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너무 아쉽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뭐 하나라도 스스로 단정짓지 말 길. 당신이 누구든 당신에겐 당신도 모르는 잠재력이 분명히 있다. 운동은 남 얘기인 줄만 알았던 내가, 지나가다 코인 야구연습장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난독증 때문에 책을 잘 읽지 못하는 내가, 지금 당신에게 읽힌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뭐든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 뭐가 됐든 뭐라도 해 보면 뭔가는 되겠지. 뭐 아니면 또 어때.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나의 주관적인 기억에 의존해 썼으므로 다소 왜곡되거나 미화됐을 확률이 크고, 전문가가 아니기에 틀린 용어들이 있을 수 있다. 고증의 필요성을 느껴 같은 추억을 갖고 있는 동기에게 자문을 구했으며, 최대한 복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다를 수 있다. 그 날에 대한 관련인의 신뢰할 만한 의견이 있다면 편하게 댓글을 부탁한다. 내용 추가 및 수정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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