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먹고살려고하는일, 먹고사는일

20220914

나를 오래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개업 이후 20키로가 넘게 살이 쪘다. 초반 10키로는 날짜가 지나면 나오는 '폐기'를 먹고서. 삼시세끼 주식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신선식품(도시락,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유통기한이 하루인 것들)은 살짝 간간하고 수분이 적은 조금은 뻑뻑한 질감으로 만들어 진다. 이건 의도적인 가공으로, 컵라면이나 음료수 하나라도 더 끼워 팔려는 편의점 업계 일종의 상술이다. 같이 먹는 그런 것들이 인스턴트라 그렇지, 편의점 음식 자체가 몸에 나쁜것은 아니기에 쉽게 먹었다. 날짜가 지난 재고가 버리기 아깝기도 하고, 원가보다도 저렴하게 때울 수 있고. 매주 신상이 쏟아져 나와 나름 다양하게 먹는 재미도 있었다. 그래도 라면이나 탄산음료를 같이 안 먹은건 아니다보니 일이 아무리 체력적으로 힘들었어도 살찌는 건 순식간이었다. 개업 초반, 하루에 17시간씩 일할 때(정신없이 일해서 그 당시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때 마저 오히려 살이 찌더라. 업종이 이렇다보니 사방 천지에 널린게 먹을 거니까 오랜시간 근무할수록 중간중간 계속 먹어댔다. 가게때문에 수원에서 천안으로 올 때 옷을 몇벌 못 챙겨 온 채로 지냈었는데, 이제는 그 옷들이 당연히 안맞기도 했을 뿐더러 어차피 본가에 다녀올 시간도 없어 다 새로 사야했다. 갑자기 찐 살이니 일만 열심히 하면 저절로 다시 빠지겠거니 했다. 아니, 사실 그런 걸 생각할 여유도 없어서 방치하고 있었던게 맞겠다.

1년 정도 지나니 물려서라도 못먹겠더라. 물론 1년 내내 올드보이 군만두 먹듯 그것만 먹은 건 아니고 질릴 때마다 가끔 외식도 하고 그러긴 했다. 그래도 주식으로는 더 이상 안되겠더라고. 신상품이 나와도 거기서 거기였다. 뻔한 맛. 사실 맛도 맛이지만, 일에 진지해지기 시작하면서 '폐기'는 단순히 날짜 지난 한끼식사가 아니라 나의 무능함의 산물같이 느껴졌다. 팔릴 거라고 생각해 발주를 넣었던 상품들. 이정도는 나가겠지라며 어림짐작하고 시켰던 수량. 팔지 못하고 날짜가 지나버린 상품들은 그 자체로 손해이니 보기만 해도 자괴감이 들어 도저히 입에 들어가질 않는데, 직원들과 가족들은 눈치도 없이 쏠쏠해 했다.



이쯤되니 집밥 맛이 기억도 안났다. 본의아니게 중학교때 부터 살림을 도맡아 했어서 천안오기 전까지는 늘 집밥을 해먹었었는데, 가게 음식만 먹다보니 가스렌지는 켤 일이 없고 요리하는 법도 잊었다. 뭘 해 먹을 시간도 없더라. 배달음식으로 눈을 돌렸다. 마침 딱 그 시기쯤 배달 어플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던 시기였다. 게다가 천안이란 곳은 타지에서 유입된 1인가구가 넘쳐나 배달 어플 지역 매출이 2위인 곳이라고.(서울이 1위) 이동네는 배달서비스를 하지 않는 음식점이 거의 없고 24시 운영하는 곳이 많아 돈과 식욕만 있다면 못 먹을 게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어렵지않게 배민 '천생연분' 등급을 유지했고, 금새 누적 15키로가 찌게 됐다.



그리고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나머지 5키로가 쪘다. 작년부터 힘든 일들이 이것저것 좀 많았다. 밥먹을 시간이 없어 하루에 한끼 몰아서 폭식으로 해결하고, 잠도 잘 못자는데다 스트레스도 워낙 많았어서 여러모로 생활습관이 아주 안좋았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어느날엔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혼자서 한끼에 9만원어치를 시킨적도 있었다. 물론 반도 못먹었다. 어쩌다 한번씩의 사치였지만, 그런날이 아닌 평상시라고 해도 항상 혼자 시켜먹다보니 남겨서 버리는게 일상이 됐다. 다음날이 되면 어제 먹은게 싫고 또 다른게 먹고 싶으니까.


돈 낭비, 음식 낭비.




편의점 음식이 더 이상은 입에 안들어가 집밥을 먹고 싶었으나, 밥 해먹기엔 귀찮으니 먹고 치우기 편한 배달음식에 빠진건데, 나중에는 그거 치우는 것 마저도 귀찮아지더라. 이게 다 돈 벌겠다고 이렇게 된건데 존나 시켜먹으니 결국 그렇게 번 돈 대부분이 식비로 나간다. 득 될게 하나없는 악순환. 1회용품 쓰레기가 어마무시하게 나온다는 것도 양심에 찔렸다. 텀블러 쓰면 뭐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제서야 문득 이 일을 하면서 포기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환경에 관해서는 신념적으로 지키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전에 비하면 내가 욕하던 수준이다. 그때는 정말 어쩌다 한번 먹는 배달음식이라 신중히 메뉴를 고르고, 남이 해 준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그만(살림해 본 사람만 공감할 듯) 버릴 것 하나 없이 소중히 아껴먹기까지 했었는데. 게다가 나 요리하는 거 그리 싫어하지 않았고, 제법 잘 했는데. 그리고 여자의 생에 가장 예쁠 나이일 30대에 20키로나 찌다니. 그렇게 옷을 좋아했는데도 이젠 오프라인엔 맞는 옷이 없어 남자옷을 사거나 큰 사이즈가 나오는 외국브랜드에서만 쇼핑을 할 지경.


가장 중요한건 건강이었다. 신체적 건강의 악화는 당연한거고, 정신적으로도 내가 나를 덜 사랑하게 됐다.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걸 7년만에 알았다. 나는 모두의 예상보다 이 일을 (끝내주게)잘 해냈지만 좋아서 한 건 절대 아니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아닌 것 치고는 하다보니 썩 나쁘지만은 않더라는 정도. 상황이 나를 이리로 데려왔고, 딸린 입이 많으니 관성으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관성이 적어도 앞으로 1년은 마찬가지겠지만, 이젠 이 생활을 좀 벗어나서 새로운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어제, 현직을 퇴사하는 과정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작년의 어지러운 일들을 겪고 인생관이 많이 바뀌게 됐다는 것과, 여기가 아닌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우리는 잘 할 수 있을거란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나는 사실 얼마전부터 지금이 나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물론 당장은 경제적으로도 다른 여러 상황적으로도, 준비된 것도 계획된 것도 아무것도 없지만, 나에게 유익한 다른 걸 찾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과, 익숙한 일을 접을 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큰 스텝을 밟은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그것이 뭔지 찾는 게 지금부터의 숙제. 어제 마침 너무너무 좋은 꿈까지 꿔서 꿈얘기 하고싶은거 참느라 입이 근질근질 한데, 아무튼 예감이 좋다.



이랬다가도 어쨌든 내년 재계약 때는 연장할 가능성이 큼. 그렇다 해도 조금 늦춘 것일 뿐일테니 지켜봐 주길. 솔직히 1년은 촉박하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함부로 운명을 맡기기에는 아직 책임져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 겁이 난다. 그래도 할 수 있겠지.


결론적으로 핵노잼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쓴 목적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함이다. 꼭 지키고 싶으니까 굳이 뱉고 있는 것.



뭐가 됐던 뭐라도 해보면 뭔가는 되겠지.



추신. 현재는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던 그 상태에서 5키로가 빠졌다.


거 봐라, 되기는 된다.

작가의 이전글 노잼글 모음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