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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20220917

part 1. 꿈 1, 2

저번 글에 엄청나게 좋은 꿈을 꿨다고 했잖아. 좋은 꿈은 얘기하는게 아니래서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진짜 정말 누가 들어도 얼른 로또부터 사라고 할 그런 꿈이란 말야. 그런데 그 꿈을 꾸고 3일 후 아주 안좋은 꿈을 꿨단 말이지. 벌에 쏘이는 꿈이었는데, 그냥 벌도 아니고 말벌이었어. 집에 작은 거미줄이 있길래 그걸 걷어내려고 하다가 못보던게 보이길래 이게 뭐지 하고 자세히 봤더니, 말벌 벌집이 있는거야. 꿈속에서의 말벌은 너무나 선명한 진한 호박색에 몸통이 엄지 손가락 만큼 크고 굵고 꼭 삶아놓은 대하 같았어. 너무 놀래서 순간 몸이 굳었는데, 피할새도 없이 발견한 즉시 그자리에서 쏘였고, 봉침에 쏘인 부위는 불 속에 담군 것 같이 뜨거운 느낌만 나더라.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휴대폰을 얼른 집어서 1,1,9를 눌렀어. 통화 신호음이 들리기도 전에 그대로 기절.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깸.



깨서는 바로 해몽을 찾아봤다. 말벌에 대한 꿈은 좋지 않은 말만 가득했다. 며칠전 꾼 꿈이 좋은 일을 예감하는 예지몽이 맞다면, 이 꿈도 안좋은 걸 예감하는 꿈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단 며칠 사이에 천국과 지옥.


개꿈이라며 넘기기엔 절박했다. 대수롭지않게 여기며 애써 불안을 떨쳐낸다면, 먼저 꾼 좋은 꿈 때문에 갖던 희망도, 불안을 놓는 것 처럼 똑같이 놓아야 되는 것 같아서.



초조한 와중에 점쟁이(자주 언급되어 점집에 자주다니는 것 같지만, 올해 초 딱 한번 봤다. 모든 언급은 그 '한번'에서 나온 얘기임)가 했던 말이 그 순간 불현듯이 생각났다. 가게 앞에 막걸리는 뿌렸느냐고 했었다. 나는 그런건 믿지 않는다고 했고, 점쟁이는 믿거나말거나 속는셈치고 한번은 꼭 뿌리라고 했다. 해진 후 밤 12시를 넘기기 전, 사람이 없을 때 가게 입구 양쪽에. 그 조언(?)을 들은지 반년도 더 넘었지만 실행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불안한 이 시점에 나는 뭐라도 해야만 했고, 시계를 보니 12시가 되기 15분 전 쯤이었다. 자다 깬 그대로 겉옷만 걸치고 부랴부랴 가게로 나갔다. 내 전 타임인 ㅊㅎ가 근무 중 이었다. 음료 매대에서 급히 막걸리 한병을 꺼내 가게 앞에 결계를 쳤다. 내 기억에, 점쟁이가 문앞 양쪽에 뿌리되 한병을 다 뿌릴 필요는 없다고 했었지만 사방에 그냥 한병 다 들이 부었다. 어지간히 불안했고, 또 불안해 보였는지 ㅊㅎ는 내가 안하던 짓을 하는 걸 이상하게 봤다. 살다살다 별짓 다 하는 내 자신이 나도 유치하고 우습지만서도 어떻게든 먼저 꾼 꿈을 지키고 싶었다.



좋은 꿈을 꾼 날 로또를 사지 않은 건 나에겐 당연했다. 뭔지도 모를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아주 희박한 확률의 행운보다는 나에게 더 가치 있었다. 로또를 산다면 당첨되지 않았대도 어쨌든 그 꿈을 거기에 다 써버린 꼴이 아니겠나. '복'을 한낱 그런 '운'과 엿바꿔 먹기는 싫었다. 만약 길을 가다 5만원짜리 지폐를 줍는다면, 나는 그 꽁돈으로 잃어도 그만인 것처럼 복권을 긁기보다는 치킨이나 시켜 먹는 쪽의 사람이라는 거다. 어느쪽이 더 실속이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밤사이 비가 내릴 때 까지 아스팔트 위의 막걸리 자국은 선명했다.



...


part 2. 꿈 3



어릴 때부터 무언가에 시달리고 쫓겨 도망다니는 꿈을 자주 꾸었다. 기억에 남아있는 한은 늘 항상 그런 꿈이었어서, 내겐 일상적인 그게 악몽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정도였다. 자고 일어나면 오히려 더 지치고 피곤한 그런 꿈. 그래서 잘때 꿈을 잘 꾸지 않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한동안은 나도 꿈을 꾸지 않았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푹자느라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수면시간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으니까. 뭐 확률적으로 그 만큼 꿈 꿀 시간도 줄었겠지.



갑자기 요즘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는데, X꿈과 말벌꿈에 이어 오늘은 꿈에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없는 그런 꿈을 꿨다.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지만 자꾸 일이 틀어졌다. 약속잡을 때 부터 오해가 생겨 서로 엊갈리더니 이동 수단 마저 지연이 되거나 겨우 잡아 탔어도 엉뚱한 곳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 꿈에서 내내 답답하고 애가 탔다.



깨어나 생각해 보니 전에 그 친구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더라. 이렇게 인스타에 에세이를 쓰기 몇년 더 전, 블로그에서 '글'이랄 것도 없는 일기 정도의 몇자를 끄적이던게 생각이 났다. 오랫만에 한참을 방치하던 블로그에 들어가 그 친구에 대해 썼던 그 글을 찾았다.



(찾느라고 다른 글들도 쭉 내려 봤는데 의외로 꾸준히 많이 썼고, 꽤 솔직했고,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읽을만해서, 생각보다 구리지 않아서 놀랬다. 나 쓰는 거 좋아했네? 나 조차도 '글 욕구'가 이제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같다. 만약 그때부터 쓰고 싶은 마음이 '진지하게' 있었더라면, 지금 벌써 7년차 에세이스트 였을텐데. 역시 모든것은 타이밍. 그리고 주변 사람의 영향. 7년 후의 나는 오히려 지금의 내가 이제라도 이걸 시작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블로그는 비공개)



친구에 대한 글은, 그때의 내 글과 지금의 내 생각에 큰 차이가 없었다. 물론 그 사이 각자의 상황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한결같은 친구인건 맞나보다. 아래는 그때 쓴 글의 일부를 가져왔고, 약간의 수정을 거쳤다.




얘랑은 참 묘한게, 나와 모든게 참 잘 맞는데도 왜때문인지 별로 붙어다닌 적은 없는 그런 친구인데, 웃긴건 주변에서는 다들 우리 둘이 굉장히 친한 줄 안다는 거다.


. . .



굳이 따로 만날 일이 거의 없지만 오랫만에 봐도 어색함이 전혀 없고, 여럿보다 단 둘이 만나는게 더 편하긴 했다. 다른 친구와는 할 수 없는, 우리만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 . .



그 친구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이 그냥 아무랑 수다나 떨고 싶어서 건 전화였기에 애초에 길게 통화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밤이 새도록 할 수도 있겠더라. 사소한 안부에서부터 철학적으로 심도깊은 토론과 논쟁까지의 영양가있는 진취적인 대화. 그런데도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고 의견이 달라도 서로 적극적으로 들어주었다. 영화 [비포선셋]의 극을 이끄는 방대한 대본 처럼. 대화가 통한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결혼을 한다면 이런 사람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니까.




글을 옮기며 생각해보니 지금은 이런 친구가 단 하나는 아니고 그래도 몇 있더라. 이 글을 그중 누군가 읽는다면, 각자가 본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낄낄.



나는 왜 램수면의 무의식 속에서 너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을까. 나는 왜 잠에서 깰 때까지 끝내 너를 만날 수가 없었을까. 이 꿈이 나에게 의미하는게 뭘까.



오늘은 꿈을 안 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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