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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살리는 일

20220920

책 [살리는 일]을 읽고.

살리게 되기까지.


관심도 없던 것에 대해 눈이 가기 시작하고, 점점 신경이 쓰이더니 그 전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마침내 보이게 된다. 그리고 진실을 보고난 후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동물권에 대해 깨우친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모르고 살았었을까 싶을 정도로, 잘못된 것이 명백하고 한없이 참담한 현실. 동물을 향해 있는 사람들의 삶은 그걸 알기 전과 후로 뚜렷하게 나뉜다.



사회에서 '캣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지는 이들은 고양이란 단편적인 종에 한정되어 맹목적인 애정을 갖고 마치 그것이 종교인 것 마냥 몸과 마음을 바쳐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붓는 사람들처럼 사이비 취급을 받기도 한다. 내 정체성의 일부가 캣맘이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틀렸다. 적어도 내가 겪은 사람들은 전혀 아니다. '정체성의 일부'라 표현한 만큼 한 부분일 뿐이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위해 늘 신경쓴다. 그리고 고양이로 '이 바닥'에 입문했다고 하더라도,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다른 동물들도 눈에 밟히게 된다. 나의 경우에는 전공이었으므로 그 과정이 달랐지만. 포괄적인 '동물'의 범주 중 나에게 가장 접근성이 좋고 빠른 실천이 가능한 대상이 고양이였을 뿐이고, 그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나의 첫 고양이 '만수'가 있었다.



만수는 나에게 고유한 존재인 동시에 세상의 모든 고양이를 대변했다. 집에 있는 만수에게 밥을 주고, 밖으로 나오면 또다른 만수들이 보인다. '밥 주지 말라'는 혐오자들의 뇌절에 길 위의 만수들에겐 밥 한번 먹이는 것도 여간 쉽지않았다. 똑같은 고양이인데 집고양이는 사랑받으며 안전한 생활이 보장되고, 길고양이는 왜 잘못한 것도 없이 천대받으며 매 순간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최소한의 욕구인 식욕과 수면욕도 충족할 수 없는 걸까. 그걸 구분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뭐라고 함부로 기준을 정해 편을 가를 수 있는 걸까. 인간이 고작 뭐라고.


너 뭐 돼?



그렇게 길친구들을 구조도 하기 시작했다. 이후의 일들은 알만한 사람들은 알테고, 웬만한 캣맘 공통일테니 패스. 좀 더 나중에는 고양이 뿐만 아닌 다른 동물들에게도 똑같은 생각이 적용됐다. 고양이밥을 뺏어먹는 다른 녀석들에 대해서. 이 동물들 역시 충분한 먹이가 보장되지 않았기에 차선으로 영양에 맞지도 않는 고양이사료라도 먹는 것일테니. 비둘기에겐 모이를 주고, 사료에 꼬이는 벌레와 달팽이에겐 밥집과 조금 떨어진 곳 바닥에 몇 알 흘려주었다. 한번은 족제비도 동냥을 와서 어린 고양이들과 함께 어울렸다 가기도 했다. 책에서도 고양이밥을 뺏어먹는 너구리들을 위해 따로 밥을 준비했다는 내용이 있다. 밥도둑 녀석들에게 처음엔 솔직히 괘씸한 마음이 들지만, 이내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같은 목적을 갖고 살기위해 태어난 다 같은 동물이고, 나까짓 존재가 우열을 가리는건 건방지기 짝이없는 오만한 생각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난 존재는 세상에 없다. 이는 누구에게도 공평하며, 동시에 매우 불공평한 진실이다. 아래는 영화 [은교]에서의 대사.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본래 젊음과 늙음에 대한 말이지만, 어쩔수 없는 어느것에도 적용되기에 항상 상기한다.)


무엇으로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생명체던 간에 사는 동안 자신의 역할에 그저 충실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으로써, 이 땅에 발 붙이고 살며 다른 생명체의 대부분의 것들을 앗아간 존재로써, 우리 때문에 그들이 잘못도 없이 받은 억울한 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잘나서 인간인 것이 아니고, 당신이 인간이라서 잘난 것도 아니다.



우리는 비인간동물에게 매우 관대하지 못한 현실에 살고 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존재가 내가 필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거나, 단지 싫고 거슬린다는 이유로 우습게 학대를 일삼는다. 철저한 자기중심적 세계에 빠져 혐오를 합리화하고 존재 자체에 죄를 씌워 그에 대한 "집행"을 실행한다(학대범이 선택한 단어다. 심각성을 알겠는가). 자기신격화. 우월감. 어떤 동물도 능가할만한 지능을 가졌지만 좇도 써먹을 줄 모르는 오만하고 어리석은 인간.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통틀어 지구에 백해무익한 존재는 오히려 오직 인간이다.



펜데믹 이후 과학자들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성 바이러스가 인간의 개체수 조절을 위한 '지구의 반격'의 시작이라는,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가진 의견들을 여기저기서 내 놓았다. 개체수 조절은 물론이었고, 격리의 목적으로 인간의 외부활동이 줄자 실제로 일시적이게나마 하늘과 바다의 환경이 개선됐으며 자연 곳곳에서 재생 작용이 일어나기도 했다.


자,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들이 다른 존재에게 최악의 민폐캐란 것에 대해 반기를 들 수 있는가. 당신은 이 사실이 정녕 미안하지도 않은가. 계속 그렇게 하던대로 진상짓이나 하면서 염치도 없이 얹혀 살다 끝끝내 발암물질로 남을텐가.



이런 현실을 알면 알수록 화가 난 작가는 본인이 가진 직업적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여 비인간동물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사육곰에 대한 내용은 모두가 꼭 찾아서 읽었으면 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기자'라 해서 글로만 조지는게 아니라, 몸으로 뛰며 직접 행동도 한다.


나 역시 단순히 돈이나 벌겠다고 편의점을 계속 하는 게 아니다. 편의점이란 업종은 동네의 동물들을 챙기기에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러사람이 드나들다보니 이 구역의 크고 작은 정보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24시 운영인 이곳에서 주체가 되어 동물들을 돌보기 때문에 항상 감시하는 셈이라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쉽게 해코지 하지 못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그저 할 뿐이다.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오랫동안 알아온 주변인 중에 나처럼 동물을 챙기게 된 친구들이 몇년새 참 많아졌다. 이들이 나에게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 마음에만 두던 일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근에도 본인 차에서 새끼고양이를 구조한 친구가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 작은 생명을 지키고 싶단 마음 하나로 내게 도움을 요청해 상담해 주었고, '여름'이란 이름을 갖게 된 작은 녀석을 돌보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누구들이 몰랐던 것을 일깨워줌에 있어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로인해 한 생명이라도 우리가 더 살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나와 자네들의 소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식으로 점점 영향력을 넓혀간다면 현실도 조금은 나아지겠지.



꼭 직접적으로 동물을 돌보지 않고도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분리수거와 재활용이다. 사실 이건 안하는게 이상한, 너무나 당연한 거라 당연한 것에 대해 생색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당연한 것조차도 안하는 일부의 너님들이 반성했으면 해서 언급한 말.


지구 : 정신차려, 너샛기 존나 민폐캐임ㅇㅇ



추가로 나는 요즘 비건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 관련 SNS를 잔뜩 팔로우하며 관심을 둔지는 꽤 오래였지만 덜컥 실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동물권에 있는 누구나 그러하듯 비건에 관해서는 참 곤란하고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아침에 비둘기 모이를 챙겨주고 점심엔 치킨을 시킨다...? 모순적인 내 자신의 행보가 나를 간간히 괴롭게 한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퍼와 가죽을 사랑하지만 에코퍼, 비건레더라는 대체품이 있고, 화장품의 경우엔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크루얼티프리제품도 요즘엔 꽤 많이 나와 선택지가 다양해 졌다. 하지만 먹는 문제에 있어서는 쉽지가 않다. 다만 조금씩이라도 노력해 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고기를 소비하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어제도 먹었던, 비비고에서 나온 비건만두는 일반 만두와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대체육의 맛과 식감이 좋았다. 사람 참 간사하게도, 이런 한끼만으로도 양심의 가책에서 아주 잠깐은 벗어날 수 있었다. 당연히 근본적으로 단순히 내 맘 편하자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아직은 겨우 이정도라 해도 뭐라도 한다는 것이 중요하겠지.



'살리는 일'에 정답은 없다. 내가 이렇게 하니까 당신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되고, 그걸 모두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도 내가 뭘 알고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먼저 터 놓은 길을 뒤 따르며 밟을 뿐.



어쩌면 나는 이미 활동가이기에, 책의 내용 중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의외로 본문이 아닌 마무리 글이었다. 이런 비폭력적인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이 인류의 3.5%만 되어도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



당신은 3.5%에 속하는가, 96.5%에 속하는가.



오늘도 세계 각지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살리는 일'을 하며 애쓸 3.5%의 동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책을 선물해 준 ㅅㅁ @ami__korea 에게 찐한 고마움을 전한다. 드디어 다 읽음!



가만히 보고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해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걸 모두가 꼭 알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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