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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공병

20220921


편의점이란 곳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것보다 업무가 너무나 많다. 기본적인 상품 판매부터 교통카드 충전, 택배 접수, 공과금 수납, 복권 판매, 픽업 서비스, 와인 예약, 종량제봉투 및 폐기물스티커 지정 판매, 최근엔 자가검진키트 배포, 그리고 공병 매입. 세부사항은 훨씬 더 많지만 대충 굵직한 것만 이정도. 서술한 것 중 대부분은 쥐꼬리만한 수수료라도 떨어지고 해당 서비스 자체의 수익보다는 목적 외의 추가 구매가 이어지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공병 매입은 남는 것 하나없이 국가의 명령에 의해 강제성으로 해야 하는 거라 싫어도 어쩔수가 없다. 매입을 거부하는 경우엔 신고가 들어가 편의점측은 벌금을 때려맞고, 신고자에게는 한때 포상금까지 주는 정책이 있었어서 그걸 작정하고 노리는 '공파라치'라는 꾼들이 생겼을 정도. 상식적으로는 우리가게에서 구매한 주류에 대한 공병만 환급해 주는 시스템이지만 일일히 영수증을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보니 온동네 버려진 공병을 줏어 모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소주는 병당 100원, 맥주는 병당 130원이라 폐지를 줍는 것보다는 노동에 비해 쏠쏠한 편. 리어카를 끌며 수거한 고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겐 공병을 먼저 차지하는 일이야말로 그들만의 리그, 피터지는 경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오직 공병 환급의 목적으로만 편의점에 들르기 때문에 우리의 입장에서는 부수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고, 솔직히 매우 귀찮은 공병 처리 노동(유리라 꽤 무겁고 술냄새가 난다)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발품을 팔며 동네를 여러바퀴 돌아 점점 무거워지는 공병들을 끌고 다니며 힘들게 모아오셨을테니 군말없이 해 드리는 수밖에.



공병 멤버 대부분은 늘 오시던 분들인데, 몇주 전부터 뉴페이스 할아버지가 오기 시작했다. 연세가 꽤 있으신 것 치고는 말투가 상당히 정중하고 기본적인 예의가 있었다. 옷 차림새같은 겉모습도 다른 고물 아저씨들에 비해 굉장히 깔끔하고 점잖은 편이었다. 굳이 묘사해보자면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을지 궁금한, 좀 배우신 분같은 그런 인상이 있었다. 우리가 다른 점포에 비해 공병 매입에 그래도 호의적인 편이다보니 할아버지는 한번 오신 후로는 매일같이 들르셔서 돈으로 바꿔가셨고, 어떤 날은 하루에 두번도 오셨다. 재미들이신 모양이었다. 자주 뵙다보니 그시간에 근무하는 이모님과 가벼운 대화도 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분은 다시는 우리 가게에 오지 않으셨다.



사건의 전말.


슬슬 친해진 할아버지와 이모님은 대화 중 K-노인 특, 자랑대회를 시작했다. 알고보니 할아버지는 굉장한 재력가이신 분. 집도 여러 채에 건물도 천안시내 여기저기 갖고 있으며, 본인 소유 외제차도 두대나 있고 운전을 좋아해 아직도 본인이 직접 운전 하신다고. 자식들도 잘 가르쳐 잘난 대학을 나와 잘난 일들을 하고 있고, 손주들도 블라블라. 본인이 이런 사람인줄도 모르고, 노인이 공병을 줍고 있으니 약간의 양념을 첨가해 조금만 불쌍한 척을 해도 순진한 동네분들이 공병을 손수 모아서 그냥 주더란다. 그런 대단하신 분이 왜 공병을 줏으시는지도 이해할 수 없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신나서 자랑하시던 할아버지는 그만,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버렸던 것.


'기초 노령 연금' 수급 대상자가 아님에도 지원금을 받기 위해 그 모든 재산을 다른 가족들의 명의로 돌려 놓았고, 심지어는 거기에 몇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배우자와 노년에 위장 이혼을 한 상태라는 것이었다(단독+단독=합산>부부, 2022년 6월 기준 한달에 단독 최대 307,500원/부부 최대 492,000원).



이 모든 걸 듣고는, 내가 아는 이모님의 성격상 돌려까기 대신 돌직구를 날리셨을게 분명했다. 역시나 팩트로 조지셨다고. 나라의 돈은 예산이라는게 책정이 되어 받지 말아야 할 본인이 그 돈을 받으면 마땅히 받아야함에도 못받는 사람이 분명히 생길텐데, 신나게 자랑하신것처럼 여유도 넉넉하신 분이 어찌 그러실수 있느냐. 마찬가지로 하루종일 줏은 공병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어째서 배부른 당신이 고작 심심풀이로 그분들 몫을 빼앗고 있느냐. 그걸 또 자랑이랍시고 늘어놓고 있느냐.


그 점잖던 할아버지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가게를 나가셨다고 했다.



예전에 언젠가 "있는 것들이 더 해"라고 했던 내 말에,


맹히씨가 했던 대답이 생각났다.



"더 하니까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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