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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귀신

20221110

귀신.

본적도 없는 귀신이 어릴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 된 지금은 귀신을 아주 믿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두눈으로 본적이 없다고 해서 믿을 수가 없는 거라면, 나는 지구가 둥근 것도 직접 본적이 없고, 내 고양이 만수가 정말 천국에 갔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존재한다는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도 없으므로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기에 더 미스터리하고, 확신할 수 없다는 바로 그점이 무서운거겠지. 하여간, 있고 없고의 여부를 떠나 이제서 생각해보면 그게 왜 잠도 못자고 화장실도 혼자 못갈 정도로 무섭기까지 했는지 참.



머리를 감을 때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감으면 거꾸로 메달려있는 귀신의 머리를 같이 감겨주게 된다는 썰이 있었다. 이거 진짜 무서웠었지. 이제 생각을 해보자구. 그렇게 거꾸로 메달려있으면 두상으로 피가 쏠려 굉장히 힘들텐데. 머리 감을때만 그런게 아니라 걔는 귀신이니까 계속 무서워 보여야 해서 하루 왠종일 그러고 있을거 아니냔 말이지. 심각한 혈액순환 장애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자세잖아. 음, 어차피 죽은 사람이니 순환할 혈액 자체가 없다고 봐야 맞으려나. 그렇게치면 뭐 걱정할 일은 아니다만. 그리고 귀신 주제에 모발을 관리할 필요성이 굳이 있을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머리 감고서 어디 누구 만나러 갈것도 아닐텐데? 애꿎은 내 샴푸만 더 쓰게 만드는거 아니냐고. 염치도 없지 진짜.



그리고 또 하나의 화장실 귀신.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의 공포는 전국 어린이들의 소아 변비를 충분히 유발할만 했다. 어릴적 할머니댁 시골집의 화장실은 변기가 없이 그냥 밑에 구멍이 뻥 뚫려있는 야외 화장실이었다. 그것만해도 화장실 가기가 너무 싫고 무서웠다. 쉬야가 마려우면 요강을 쓰면 되지만, 끙아는 어쩐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큰 용기를 내 화장실로 나가서 빨간 휴지 아니면 파란 휴지를 두려움 속에서 골라야만 했다.


지금 내 앞에 휴지 귀신이 나타난다면? 색이 어떻던간에 3겹 엠보싱이 아니면 필요없다고 정중히 거절할 것이다. 아무리 무지개빛으로 알록달록하다고 한들 내민 휴지가 점보롤이라면 크게 실망할 것같다. 잠깐만, 왜 많은 색깔들 중에 하필이면 빨간색과 파란색일까. 태극기를 상징하는 것일까. 의외로 애국자 인증. 오, 사람 다시 보이네, 아니 아니, 귀신. 아니 그것보다 색깔 휴지라니? 지금이야 실제로 '컬러 토일렛 페이퍼'만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도 있고, 색뿐아니라 그림도 찍어내는 세상이지만 거의 30년전인 그때 당시에 빨갛고 파란 휴지를 권한다? 정체가 뭐지, 미래에서 왔던걸까. 존나 힙함 그 잡채. 오늘날 변기에 앉은 내앞에 오랫만에 다시와 묻는다면, 혹시 펄감이 있는 형광 핑크색은 없으시냐고, 그때는 하지못한 그 질문을 꼭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물론 3겹 엠보싱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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