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알록달록 Dec 24. 2022

아메리칸 스타일

20221113

아메리칸 스타일.

극소수인 고정 독자의 대부분이 이미 아시다시피 전남친과 나와의 나이차이는 18살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써의 이 '나이차'는, 사람들의 (내가 어쩌지못하는) 편견 때문에 외부적으로 그리 언급할만한 사항은 아니지겠만, 사실 글을 쓰는 관점에서는 참 재미있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것도 다 지난일이니 웃으며 말할 수 있는거겠지.



장거리 연애 3년차 정도 됐을때 쯤 남친이 천안에 놀러와있는 기간동안 공교롭게도 맹히씨가 수원에 갈일이 있대서 타이밍이 맞은김에 서로 인사를 하자고 약속을 잡았었다. 나의 엄마는 그 연배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사고가 꽤 개방적인 편이라, 내가 남자친구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니들이 좋으면 됐지 뭐'라고 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그 진부한 말도 한번 없이. 그래도 어쨌든 직접 만나면 나란히 서있는 우리 둘의 시각적인 나이차가 더욱 체감될 것은 사실이라, 내 입장에서는 걱정을 좀 했었다. 그리고 약속한 그 날이 왔다. 약간은 변경사항이 있었다. 엄마의 남친도 함께, 넷이 보기로 한거다. 엄마는 딸의 남친과 첫인사를 하는 거였고, 딸은 엄마의 새남친과 첫인사를 하는 자리. 이 상황만 해도 벌써 '막장 드라마'라 생각하며 읽을 사람도 있겠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고, 내 인생은 특히나 시트콤이었다. 네 사람의 이 희한한 만남은 서로에게 어려운 자리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냥 '더블 데이트' 같기도 했다. 어쩌면 미래에 가족 비스무리한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첫인사 자리인 만큼 나름대로는 남들처럼 격식을 차려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나의 50대 남친은 맹히씨에게 '장모님, 장모님'하며 호칭했지만 사위와 장모와의 나이차이는 9살에 불과했다. 이런걸 예상치 못한건 아녔지만 막상 코앞에서 들으니 솔직히 썩 듣기 편안한 장면은 아니긴 했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진짜 문제는, 엄마 남친이라는 분이 엄마보다 연하였고, 4살차이가 난다는 거였다. 엄마가 남친에게 '이서방, 이서방'하자 엄마의 남친분도 내 남친에게 '이서방'이라고 불렀고, 이서방과 장인어른은 서로 5살 차이. 그냥 형님동생 하는게 더 자연스러운 그림. 어르신 셋을 모시고 식사하는 나 자신을 유체이탈을 통해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혼이 나갔다는 말.



이 이야기를 나중에 친구에게 했더니 미드의 한 장면같다고 했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어질어질하다. 아마도 앞으로의 인생까지 다 통틀어도 내 인생에서 가장 이상하고 불편했던 식사자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그날 이후 맹히씨에게, 딸내미 남친을 만나보니 어떻더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한 아들뻘이 아니라서 혹시 불편하지는 않았느냐고.



"뭐, 사람이 좋으니까 불편하고 그런건 없었지, 근데 그래도 반말은 안나오더라."



나만 이상하게 느낀게 아니라 다행인(?) 순간이었다. 남친도, 엄마와 엄마의 남친에게 '장모님' '장인어른'이 아닌 '누님' '형님'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올까봐 조마조마 했다고.



여전히 시트콤같은 내 인생. 누구도 겪지못할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글로나마 당신께 들려 드릴 수 있다는게 행운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끝.

작가의 이전글 귀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