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알록달록 Dec 30. 2022

94년생

20221230


수능날로부터 연말까지. 우리 같은 업종은 특히나 주의해야 하는 기간이다. 미성년자들이 지들 나름대로는 한껏 으른인 척하며 술과 담배를 "뚫으러" 오는데, 경험상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재수없으면 잘못 걸리는 거거든.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전적이 있는 매장이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물론 평소에도 당연한 거지만 이 기간에 나와 직원들은 신분증 검사를 더 철저하게 할 수밖에 없고, 우리 매장은 손님들에게도 ‘졸라 빡쎈 매장’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했다. 이런 인식이 굳어질수록 미성년자들의 같잖은 시도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청소년 보호법]을 의도치 않게 위반할지도 모를 확률이 줄어드는 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는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조금은 과할 수도 있는 조심성 탓에, 가끔은 미성년의 경계보다 더 먼 나이를 가진 손님마저 신분증 검사를 하게 될 때도 있다. 누가 봐도 어려 보여서 신분증을 요청하면 이십대 후반이거나 삼십대 초반, 드물게는 내 또래인 경우도 있었다. 이 정도의 나이대 구간을 가진 손님들은 나의 이런 요청에 대부분은 반가워하면서 흔쾌히 신분증을 꺼내며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방금도 담배를 사러 온 한 손님의 신분증 검사를 했더니 ‘내년에 서른’이라며 운전면허증을 꺼내 보여줬다. ‘94년생’이었다.


94년생이라. 숫자가 왠지 익숙한데. 아, 그래. 예전에 카페에서 알바 할 때 같이 일하던 동생들 중에 94년생이 있었지, 참.

읭? 잠깐만, 94년생이 내년에 벌써 서른이라고!?


그때만 해도 그 94년생 녀석들은 열아홉 살이었다. 그 친구들이 수능을 보고서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동안만 일하러 온 거였으니까, 같이 일하던 때가 딱 이맘때쯤이었겠다. 나보다는 일곱 살이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곧 있으면 스물일곱이었고, 녀석들은 스무 살을 앞두고 있으니, 걔들을 보며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의 생각도 나고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스물일곱도 마냥 보송보송하지만, 그때의 내가 느끼기에는 그 애들이 나와는 달리 참 풋풋했다. 수능 끝내자마자 바로 일을 구한 게 큰 누나뻘의 입장에서는 대견하기도 하고, 남동생이 없던 내게 "누나, 누나"하며 잘 따르는 게 귀여워서 나도 잘 챙겨주고 그랬었다.


일했던 곳은 수원의 남문 근처에 있는 카페였다. 지금은 핫플레이스가 된 행궁동. 카페 일을 하며 그곳의 직원들과 참 재미있게 지냈었다. 그 어렸던 두 놈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었는데, 다들 마음이 잘 맞았다. 쉬는 날에도 모여 화성 근처의 맛집 투어를 다니기도 하고, 성곽을 따라 걸으며 시장 구경도 하고. 월급날엔 내가 발견한 빈티지숍에 데려가 쇼핑도 하고 내가 일하던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멤버 중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도 있어서 동네에서 만나기도 했었다. 밤새 공원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배고프면 맥도날드에서 맥모닝. 크- 생각만 해도 좋네.


그러다 보니 일할 때도 합이 잘 맞았다. 크리스마스 날 정말 바빴던 걸로 기억하는데, 본인 타임이 지나서도 자발적으로 연장근무까지 해 가며 서로 도왔다. 사장님은 그런 팀워크가 직원 중 가장 연장자였던 나의 리더쉽 덕이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고, 나에 대한 신뢰도가 커져 나중에는 아예 가게 열쇠도 주시고 돈에 관련한 업무(입금, 환전)도 믿고 지시했다. 그러다 발주의 권한까지 부여. 근데 말이 신뢰지, ‘매니저’라는 직급을 준 건 아니었다. 싼값에 야무지게 부려 먹는 꼴이라는 걸 알면서도 책임의 부담이 없는 그 정도의 권력이 나도 싫지 않았다. 후에 이때의 경험이 내 장사를 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도 했고.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이용해 먹은 걸 수도 있겠다.


카페 친구들은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맙게도 한결같이 나를 잘 따랐다. 그중 열아홉 살이었던 한 녀석은 그런 나를 굉장히 멋있는 누나로 생각했나 보다. 어느 날 퇴근 시간이 맞아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적이 있었다. 해가 저문 늦은 저녁, 남문의 버스정류장은 사람이 굉장히 몰리는 시간이었다. 피곤에 절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지금 생각해도 오그라드는 뜬금없는 고백을 듣게 된다.


“누나, 내가 누나 좋아하는 거 누나도 알잖아요!!!”


ㅇㅇ. 알고 있긴 했다. 그렇게 티를 내는데 내가 병신도 아니고 모를 리가 있냐, 병신아. 그간 내가 계속 모른 척으로 일관했기에 답답했는지 일부러 사람들 많은 데서 보란 듯이 소리 지른 것 같았다. 어릴 때만 부릴 수 있는 패기인 건가.


“(부왘) 야 씨, 너 이 새끼 일루 와... 아, 알았으니까 빨리 오라고.”


창피해서 얼른 애새끼를 데리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도착 버스 안내 전광판]만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 쳐다봤다. 쟤가 저 말을 내뱉는 순간 ‘올~’하며 박수를 치는 소리도 들었다. 쪽팔려 뒤지는 줄.


본인이 방금 조금 멋있었다고 착각하고 있을 것만 같은 녀석에게 우리가 왜 안되는지, 북문까지 같이 걸으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사실 그냥 ‘전혀 남자로 안 보여서’라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이유였지만, 어린애한테 상처 주기가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댔던 것도 같다. 아직 니가 스무 살이 아니니까 내가 너랑 만나는 건 범죄라느니. 스무 살이 되어 만나기 시작한다고 쳐도 니가 언젠가는 군대에 갈 테고 그때쯤엔 나는 서른일 텐데, 내가 나이 서른 먹고서 그거 기다리게 생겼냐느니. 니가 지금은 내가 좋아 보일지 몰라도 곧 대학 입학하면 예쁜 친구들 많이 생길 텐데, 그때 되면 분명히 니 마음도 바뀔 거라느니. 다 팩트지, 뭐.


94년생의 민증을 보고 불현 듯 떠오른 추억.

나는 살면서 후회라는 걸 잘 안 하는 성격이지만 이것만큼은 솔직히 후회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자로 보이든 아니든 일단 그냥 만나볼 걸 그랬다 싶지. 아까비. 내가 또 어 가서 일곱 살이나 어린 남자를 만나보겠어. 그때나 어린애였지 지금은 그 친구도 서른 즈음인데. 물론 만났다고 한들 잘 되진 않았을 게 뻔하다. 다음 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녀석과는 당연히 연락이 끊겼고, 카페의 다른 멤버들과 한 다리 건너서도 교류가 없다. 지금은 아마 결혼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키도 크고 예쁘게 생기고 자상한 타입이었으니까 분명 인기도 많았을 거다. 그리고 그때 내가 했던 말대로, 이젠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을 걸.


일곱살 연하남을 주제도 모르고 찬 썰. 이 썰을 공식적으로 풀었으니 나샛기는 위아래 합쳐 도합 25년이란 터울의 세대를 아우르는 매력을 가진 세기의 팜므파탈 되시겠다. 예? 개수작 부리지 말라고요?

작가의 이전글 송년회같은 소리하고 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