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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Dec 25. 2022

송년회같은 소리하고 있네

20221225


연말의 새벽 시간, 원룸촌 동네의 편의점 매출은 술에 취한 사람들과 술에 취할 사람들, 그리고 술에 취했지만 더 취하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채워진다. 이토록 술 냄새 나는 시간에 여자 혼자서 근무하니 가끔은 무섭고 위험할 수도 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도 아시다시피 필자도 그리 호락호락한 인상은 아니기에, 맹히씨가 어디서 얻어와서 개업 선물로 카운터 한구석에 가져다 놨었던 저 야구방망이를 정말로 실사용할 일 다행히 아직까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야구방망이가 되기 위해 베어졌을 어느 나무의 희생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계산하는 손님의 시야에서 아주 잘 보이는 각도에 비치해 두었기에 존재만으로도 경고의 메시지가 되어 충분히 쓸모를 다 하고 있다.


야구방망이 : 누구든 작은 하마를 건드리면 아주 좆되는 거야.


(작은 하마는 대학 시절 체육대회에서 소프트볼 4번 타자였다.)


만취의 경우엔 차라리 낫다. 적어도 만취자들로부터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거나 성적 수치심을 느낄 일은 없었다. 반려동물용품 매대에 걸린 강아지용 간식이 마른안주인 줄 알고 맥주와 함께 계산대에 올려놓는다거나 하는 건 귀여운 수준이고, 가끔 매장 내/외부 구석에 앉거나 누워서 잠이 들어버려 경찰을 부르게 만드는 정도. 한번은 그렇게 앉아서 졸다가 그 상태로 바지에 똥을 싸고 간 놈도 있었다. 자세한 건 쓰고 싶지 않으니 읽는 누구든 궁금해 말길 바란다. 술이 깬 후에 기억이 나기는 난 모양인지 그놈은 다시는 우리 가게에 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또 아무 잘못도 없이 손님 하나를 잃고.


애매하게 취한 것들만큼 빡치는 게 또 있을까.

생긴 것과는 달리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특히나 더 술 취한 사람을 싫어한다. 진짜 너무 아주 완전 졸라 싫다. 취한 사람이 쌩판 남이라서가 아니다. 그게 친구라도, 가족이라도 싫다. (물론 가족은 안 취해도 싫다.) 술에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주의력이 떨어진다. 편의점에서 손님이 술병을 깨트리는 일은 질리도록 흔하다. 본인이 깨 놓고선 깬 것도 같이 계산해 달라며 꼭 생색을 낸다. 파손에 대한 책임은 당연한 건데. 말로는 미안하다면서도, 같이 치워주고 가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안 좋은 일로 술을 마신 사람들은 기분이 나쁜 티를 꼭 낸다. 무례하고, 그럼에도 대접받고 싶어 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화가 나 있으니 너 나 건들지 말고 똑바로 잘해라. 이런 건가. 니가 화가 나 있든 말든 좆도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절대 먼저는 안 건들이고 원래도 똑바로 잘하는데. 어디서 뺨맞고 와서는 여기다가 화풀이인지. 항상 만만한 게 편의점인 거다.


기분이 좋아 술을 마셨던, 안 좋은 일로 마셨던 간에 본인 사정이다. 내 가게의 물건을 팔아준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분을 맞춰 줄 의무가 없다. 당사자가 특정 물건이 특정 시점에 필요해서 사러 온 거지, 내 기분까지도 돈 주고 살 순 없고, 물건값엔 그런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정 그러시면 팁이라도 주시던가.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 여럿이 취해서 입구에서부터 시끌벅적하게 들어오는 애들은 딱 촉이 온다. 각자 먹고 싶은 비싼 아이스크림을 고르거나, 모두가 흡연자라면 담배 이름을 ‘눈치 게임’ 하듯 순서대로 부른다. 그리고는 카드를 한 장씩 꺼내고서 나에게 고르라고 하는 그 상황.

술김에 친구들과 이런 짓을 해 본 사람이 있다면, 이것도 폭력이라는 걸 꼭 알았으면 한다. 뭘 그렇게 또 ‘폭력’이라는 폭력적인 단어까지 써 가며 예민하게 구냐고? 나 원래 예민한 거 몰라? 나는 원체가 이런 사람이니까 내가 쓴 글을 읽는 너님이 당연히 나한테 생각을 맞춰줘야 하지 않겠냐? 내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자,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지금 이 개소리와 저 상황이 뭐가 다르냐는 말인 거다. 본인들이 신나게 섞은 카드를 주며 나에게 결제할 사람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그 행동은, 니들이랑 뭣도 아닌, 제 3자인, 그냥 편순이인 내가 니들의 그 즐거움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는 건데, 내가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건 생각도 안 해 봤을 거 아냐. 니들이 오기 전에 언년이 깬 병을 치우고 있었을 수도 있고, 언놈이 싸고 간 똥을 치우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좆도 관심없고 그저 자기들의 순간의 재미를 위해 카드 한 장 뽑아주길 바라는 거잖아. 술은 니들이나 마셨지 나는 맨정신인데? 미안하지만 나는 하나도 안 재밌는데?


“죄송한데, 저희는 이런 거 안 합니다. 상의해서 결제하실 분 합의보시고 다시 불러주세요.”


하고 정중히 거절. 그럼 꼭 그중 한 놈이 취기에만 나오는 옹졸한 용기로 정색 빨고 시비를 털기 시작한다. 이거 잠깐 해 주는 게 뭐 어렵다고 안 하냐. 그냥 하나 좀 뽑아주면 되지, 손님한테 무안을 주네, 존나 분위기 파악 못하네, 어쩌네.

상대가 댓가도 없이 자기 기분을 맞춰주길 강요하는 게 폭력이 아니면 뭔데? 그리고 내가 전에도 얘기했다. 카운터를 보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마동석’이었어도 카드 뭉치를 내밀었을까?


1. 기분 좋게 술이 들어간 무리

2. 소비를 하며 소비처에 게임 제안

3. 즐거운 분위기를 깨지 않고 함께 놀아주길 바람


이렇게 놓고 보자고. 뭐 연상되는 거 없어?

저게 업소 가서 아가씨 끼고 노는 거랑 뭐가 다른지 나는 모르겠는데. 나만 그런 거임? 팁이라도 챙기는 아가씨가 차라리 나보단 상황이 낫지. 어휴.


그것도 그래. 카드 하나 골랐다고 쳐. 그럼 걸린 놈은 속으로 내 탓할 거 아니겠냐고.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왜 그런 부담을 가지게 하면서까지 팔게 만드냔 말야. 해달래서 해줘도 욕 먹고잉. 자영업자는 니들이 안 그래도 이미 충분히 힘들다.


그러니 반성하라는 말이다. 당신이 친구, 동료들과 술 마신 후 술값이든 담배값이든 이런 식으로 계산한 적이 있다면, 한없이 가벼운 이기적인 생각으로 우리를 감정 노예 취급한 꼴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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