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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Feb 21. 2023

다마고치

20230221


오빠와는 서로 개인적인 연락을 하지 않는다. 각자의 인생에 서로가 필요할 일이 없어서다. 물론 맹히씨가 중간에서 오빠샛기의 소식을 굳이 종종 알려주긴 했지만 내가 궁금해할까봐서는 아니고, 궁금해했으면 해서였을 거다. 같은 맥락으로 내 소식을 그쪽에도 전하겠지. 안봐도 비디오다.


오빠와 나는 같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지만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이다. 취향 같은 건 비슷한 점도 많지만 어릴 때부터도 성격이 워낙에 달랐다. 오빠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집착이 컸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마는.

내가 엄마 대신 살림을 했을 당시, 오빠는 집에서는 개판을 쳐 놓고 꼬질꼬질하게 살아도 밖에 나갈 때는 신경을 써가며 겉보기에 번지르르하게 하고 다녔다. 옷장을 열어 이옷 저옷 입어 보며 치장하는 시간이 여자인 나보다도 더 걸렸다. 4년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한 후 적당한 연차에 적당한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평균적인 신혼 기간을 보낸 다음 또 적당한 시기에 아기를 가져 거의 뭐 교과서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남자이고, 장남이라서 더 그랬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오빠가 결혼할 당시, 오빠는 처가에다 우리 집의 가정사를 알리는 것을 굉장히 수치스러워했다. 그래서 본인 결혼식 시기에 맞춰 엄마와 아빠의 재결합을 이제와서 갑자기 추진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었다. 본인은 그게 될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다 나온다. 하여간 남들 보기에 그럴 듯 해 보이게 포장하는 것이 고질적인 습관이 되어 버렸을 정도라 굳이 허풍을 떨지 않아도 될만한 것들마저 MSG를 쳤고, 나중에는 본인조차도 자기 입에서 나온 그 구라와 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반면에 나는 남들의 생각보다는 내자신이 바라보는 나에 관해 지나치게 검열하는 강박이 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저런 형제를 옆에서 보고 자라서 그런지 꾸며내거나 사실과 다른 것에 대해 강한 경계가 생겼다. 나는 거짓말을 잘 알아챈다. 특히나 오빠의 거짓말에 그 능력이 특화돼 있어서, 그게 오빠가 나를 더 어려워하고 불편해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내가 오빠를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초등학교 4, 5학년 때쯤 ‘다마고치’가 대유행이었다. 당연히 갖고 싶었다. 지금도 고양이, 물고기, 화분 등 무언가를 키우는 것만큼 애정이 깊은 게 또 없는데 어릴 때라고 뭐 달랐으려구. 학교 앞 문방구에서도 팔긴 팔았지만, 어린이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어른이 사 주지 않는 이상 내 능력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만 같았다. 일본에서 건너온 거라던데, 그렇다면 엄청 비싼 물건일 텐데. 내가 살 수도, 그렇다고 사달라고도 하지 못한 소심했던 나는 저 펭귄 모양의 빨간색 다마고치를 매일 멀찌감치 쳐다보며 침 흘리기만 했다.

그런데 오잉, 오빠가 그 다마고치를 산 것이다! 오빠껀 파란색이었지만 분명 내가 갖고 싶던 그 다마고치가 맞았다.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그 문방구에서 사 왔다고. 동생이 눈을 못 떼고 부러워하자 오빠는 자기가 문방구에 다시 가서 내꺼도 하나 사다 주겠다며, 얼마가 있느냐고 물어왔다. 세뱃돈 받았던 걸 안 쓰고 가지고만 있던 게 생각났다. 다마고치가 얼마냐고 물으니 오빠는 이만 원이라고 했고, 우와- 역시 비싸구나- 하면서도 한참을 갖고 싶었으니 그 정도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서 선뜻 돈을 꺼냈다. 빨리 갖고 싶기도 하고 오빠가 다른 색을 사 올까 봐 걱정도 돼서 나도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오빤 지 다마고치를 건네주면서 이거 갖고 놀고 있으면 자기가 금방 다녀오겠다고, 빨간색으로 사 오면 되지 않냐며 나를 안심시킨 후 바로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웬일로 서비스가 좋다 싶었지.

나는 그때 오빠가 사다 준 이만 원짜리 빨간 다마고치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때의 나에게 참 소중했던 물건이라서 그런지 쉽게 버릴 수가 없다. 게다가 아직도 멀쩡히 작동되는걸. 게다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물건이거든!!!



나중에 알았지만 다마고치는 겨우 오천 원이었다. 당시의 시세와 어린 나이를 감안하면 오천 원도 상당히 큰돈이었을 건데, 도대체 어떻게 된 새끼가 친동생을 상대로 4배 규모의 사기를 칠 수가 있나. 존나 약아빠진 새끼. 개 씹새끼. 그것도 모르고 나는 오빠가 사 온 다마고치를 받으며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그날 이후 너에게 갑자기 미니카 하나가 더 생겼지만, 정말 조금의 의심도 한 적이 없어 문방구에서 그 다마고치의 가격을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 일을 계기로 오빠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그게 상황 파악을 하게 된 계기였을 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을 거다. 각성하면서부터 빅데이터가 쌓이니 거짓말의 패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뱉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콧구멍을 발름거리는데, 신기하게도 이 특징은 웬만한 다른 남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고 대부분이 그걸 감추지 못한다.


대화 중에 오빠의 타고난 개뻥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엄마에게 저 때의 썰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엄마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 설마 그랬겠냐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면서. 오빠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공 CD에 각종 게임을 구워 친구들을 상대로 대량 판매를 하던 놈이다. (불법이었고, 뉴스에 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다.) 엄마의 말대로, 좋게 말하면 생활력이 강한 거겠고 세상 물정에 일찍 눈뜬 거겠지. 철없던 어린 시절의 객기라고 볼지도 모르겠지만, 한참을 옆에서 지켜본 나의 판단으로는 스케일이 더 커지면 커졌지, 사람 성향 그렇게 쉽게 안 바뀐다. 그래도 이런 점이 희한하게 좋은 쪽으로 작용해 영업직이 아주 천직이었고, 직장에서 영업을 맡는 동안 실적이 꽤 좋았던 모양이다. 운 좋게 잘 풀려서 참 다행인 케이스. 영업왕과 사기꾼은 한 끗 차이다.

오빠는 어른이 된 후에도 나를 어떤 목표의 수단으로써 이용할 생각만 했다. 내가 꼭 필요한 순간에만 아주 가끔씩 찾아왔고, 그게 아닌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다. 본인의 수를 빤히 보는 나에게 이제는 더 이상 씨알도 안 먹힌다고 판단해서였는지 자기가 먼저 나를 놓았다.


오빠야, 너는 내가 너를 이유도 없이 싫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나는 너를 믿었다. 믿음이 있었기에 실망이 컸다. 군대를 다녀왔으니, 직장에 들어갔으니, 결혼을 했으니, 아이가 생겼으니 이제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며 순진하게도 다시 믿어보곤 했지만 매번 실망했다. 우리가 떨어져 산지 오래된 지금은 너에게 더 이상의 기대치랄 것도 남은 것이 없다. 그러니 오빠 너도 나에게 어떤 것이든 기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니 조카’라고 부르던 너의 아이에게 내가 어떠한 관심이 없는 것도, 니가 전혀 섭섭해할 일이 아니다. 서로에게 있던 적도 없던 부담은 그냥 끝까지 없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네가 ‘현실 남매’가 아니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직시해야 할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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