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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Feb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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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5


다섯 번째 알람이 울리면 그제서야 깬다. 저혈압이 있으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던데. 저혈압도 있고 일어나기도 힘들긴 한데 둘 사이의 상관성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꿈을 꾸긴 했지만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고 대충 중고등학생 때쯤의 시점이었는데, 평소에도 그 시절 꿈을 종종 꾼다. 그런 꿈에서의 나는 대체로 뭔지도 모를 뭔가가 항상 막막하게만 느껴진다. 실제로 그때도 그랬었나. 하여간 좆같은 꿈. 늘 부족한 수면에서 억지로 일어나는 것도 좆같지만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잔다면 그 좆같은 꿈을 계속 꿀 테니 이래도 저래도 좆같기는 매한가지다.


비틀거리며 화장실 변기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반만 겨우 뜬 눈으로 자는 동안 온 메시지나 인스타를 확인. 잠을 깨우는 과정이다. 쭉쭉 내리다가 눈에 띈 덥수룩한 Post Malone의 피드를 보고는 ‘맞다, 나 살면서 한 번쯤은 수염을 꼭 길러 보고 싶었는데’하고 생각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여자의 몸으로는 가질 수 없는 그 ‘수염’에 관해 나름의 미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 언젠가 수염 전문 서적을 사 본 적도 있었더랬다. 수염의 종류와 ‘세계 수염 대회’에 대한 내용들이 그림과 함께 있는 책이었다. 수염의 쉐잎에 따른 관리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각각의 모양엔 이름까지 붙여져 있었고, 수염 대회라는 이 기이한 대회의 영광스런 수상자 인터뷰까지 쓰여진 변태 오타쿠 같은 책. 재미로 산 것치고 내용은 꽤 진지한 방향으로의 접근이라 적잖이 당황했던 걸로 기억한다. 본가에서 나와 산지가 한참이라 지금은 그 책을 내가 갖고 있지는 않고 아부지 집 어딘가에 있긴 있을 걸로 추정. 수요가 없어 절판된 모양인지 아무리 검색해도 그 책에 관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세계 수염 대회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도까지도 실존하고 있던 걸로 나온다. 범지구적 weirdo들의 도대체가 아무짝에도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이란.


나는 요즘 특히나 우주 물리에 관한 유튜브에 심취해 있는데, 그것도 사실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관심사였다.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 과목을 좋아하면서부터(해당 과목 선생님이 좋은 분이셨다) 잠시였지만 천문학도를 꿈꾸기도 했었다. 별도 잘 안 뵈는 동네에 살면서도 스마트폰을 바꿀 때마다 별자리 관측 앱은 필수로 설치. 역사적 사실인 세계사는 싫어해도 별자리에 관련된 근거 없는 신화는 참 재밌어했다. 고대 전래 막장 드라마 개꿀잼.

우리의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을 도는 행성은 지구 말고도 더 있으니 그것들과 함께 태양계를 구성하고, 태양과 같은 이런 항성들이 수천억 개의 무리를 이루어 은하가 되고, 그런 은하 역시 우주에 수천억 개가 존재한다. 유난히 별이 많은 날의 하늘을 올려다보면 경이롭도록 방대한 이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는 고작 나노 먼지에 붙은 나노 먼지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인간이란 생명체는 도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나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아가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해당 유튜브 영상의 댓글 대부분이었지만, 어찌 보면 이토록 무의미할지도 모르는 우리의 존재가 우주적 무의미 속에서도 각자 나름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유의미한 것 아니겠냐고. 저 콧수염 대잔치가 우리에겐 개병맛 같아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위해서 수염 한올 한올 온 정성을 다해 노력을 쏟을 괴짜들마저 그런 의미에서 의미가 있고, 작고, 소중한 것이다. 수염 대회에서 1등을 한다 한들 천체의 운동에 영향을 줄 리는 만무하나, 실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다이슨 스피어’와 같은 미래의 천문학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연구하는 것도, 사실 그렇기는 마찬가지 아니냐. 우주적 관점에서는, 둘 중 무엇이 더 의미 있는 일인지 우열을 가리는 게 무의미하겠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의 ‘수염’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러다가 또 다른 피드에서 다리 한쪽이 없는 어느 모델의 사진을 보았다. 절단 부위가 흔치 않게 골반에서부터 잘려있다. 어떤 사연이었을까. 한 다리로는 걸을 수가 없으니 보통은 의족을 착용하겠지만, 그 모델은 ‘가짜’ 다리 대신 양팔에 지팡이 같은 지지대가 달린 보조 기구를 끼고서, 말하자면 세 다리로 걷는 셈이었다.

모델은 장애를 감추지 않고 곧게 뻗은 한쪽의 다리로 농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다른 쪽의 다리는 없는 게 아니라 나에겐 보이지 않는 그냥 투명한 다리인 것만 같다. 발끝으로 시선을 따라가니 아찔한 스틸레토 힐을 신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오른쪽밖에 없으니 어떤 신발을 사도 왼쪽은 항상 버려지는 게 아닐까. 남은 쪽은 그냥 보관해두려나. 근데 그걸 모아서 뭐 하겠어, 신지도 못하는데. 이 사람은 일반인 장애인이 아니라 그래도 모델 장애인이니까 협찬을 받을 텐데, 일할 땐 협찬도 한쪽만 해 주려나. 그러다 업체의 실수로 오른쪽 신발이 아니라 없는 다리인 왼쪽 신발만 보내면 어쩐다. 외다리 모델 협찬이라도 편의상 한 켤레씩 보내겠지?

신체의 일부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 한 쌍인 물건도 한 짝씩만 팔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신발이든 장갑이든 그 값의 반은 굳는 거잖아. 물론 수요도 아주 적을 테고, 유통상의 어려움도 있을 수 있겠지. 그렇다고 해도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닌데. 어느 장애인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혜택이나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것 없이 생활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기에는 모든 것이 비장애인 중심의 편의를 위한 환경과 시설들뿐이고, 특히나 한국은 더 힘들다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다리가 하나인 사람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구매하게 하는 것은 차별적인 강매가 아닌가. 보통 사람들처럼 단지 나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사고 싶을 뿐인데 말야. 하다못해 1인 가구를 위해 수박도 반 통씩만 파는 세상인데.

그럼 이건 어때. 서로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당근마켓 같은 거. 한 켤레의 신발을 사면 내가 사용할 신발 한 짝의 반대편 한 짝을 대칭적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위해 팔거나 나눔하는 거다. 신데렐라처럼 사이즈와 취향이 맞다면 필요한 쪽만 사서 반값에 신을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분명히 같은 장애를 겪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유사한 거래도 있을 것이다. 이걸 앱처럼 전문적인 1/2 거래 플랫폼으로 만들어 다수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생각난 아이디어. 그녀가 신었던 멋진 스틸레토 힐의 반대쪽을 신고 뽐낼 또 다른 그녀를 상상해 보며.


아까 본 피드에 대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씻는 동안, 잠이 다 깨고 찝찝했던 꿈도 어느새 잊혀졌다.

오늘도 우주 속 나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 파워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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