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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Mar 04. 2023

나 사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20230304


GS25에서는 본사의 직원으로서 가맹점을 관리하는 사람을 OFC(Operation Field Counselor)라고 부른다. 편의상 ‘오엪씨’라고 쓰겠다. 오엪씨 한 명당 평균 열 개 조금 넘는 지점을 담당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의무적인 매장 방문이 이루어진다. 이들이 하는 일은 관리/감독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매출 향상은 기본이고, 각 점주들의 다양한 장사 성향을 본사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획일화하려고 노력하며, 지점에서 문제 발생시 본사 차원에서 누적된 노하우를 통해 해결을 도와준다. 우리는 서로 갑과 을의 개념이 없는 협력 관계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오엪씨와 점주 사이의 관계가 서로의 이득에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본사의 의도에 따라 담당 오엪씨는 주기적으로 변경되는데(아마 다양한 상권에 대응할 수 있는 직원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목적일 것), 우리 점포를 거쳐 간 분들은 짧게는 임시로 한 달, 길게는 2년을 담당했다. 그리고 최근에 또 한 번 변경이 있었다. 바뀐 새 오엪씨와 나는 서로의 업무 스타일을 탐색하며 맞춰가는 중이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가 오엪씨가 방문하는 날이었다. 나는 발주 마감 시간이 다가와 발주 머신으로 빙의해 존나게 주문을 때려 넣는 중이었고, 오엪씨는 새로 시작한 3월의 행사에 맞춰 입구 쪽 매대의 진열을 손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뭐 좀 물어봐도 되냐’고 질문을 하셨다. 업무에 관련된 거면 두서없이 바로 질문했을 텐데 저렇게 묻는 걸 보니 사적인 질문인 것 같았다. 질문해도 되냐는 질문은 또 뭐람. 조심스러운 사람이네. 되시긴 하는데, 지금은 제가 바쁘니까 죄송하지만 조금 이따 다시 물어봐 주시라고 했다.

발주가 끝나고 다시 들은 그 질문은 그동안의 오엪씨들에게서는 받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질문이었다.


“이렇게 쉬는 날 없이 쳇바퀴처럼 매일 반복되는 그런 일상을, 점주님은 8년 동안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 거예요?”


엥. 나 오늘 좀 퀭한가. 자기보다 내가 더 어려서 괜히 짠해 보였나. 어쨌든 업무 대 업무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질문인 것 같아서, ‘우리 매장’이 아닌 ‘나’에 대한 궁금함인 것이 꽤 반가워서, 아직은 낯선 사람의 카테고리에 분류되어 있는 그분의 질문에 씨익- 하고 미소가 지어졌다.


“저는 취미가 진짜 진짜 많아요. 시간이 없으니까 취미 생활을 할 시간이 필요한 취미가 아니라 일하면서도 할 수 있는 취미들을 찾아서 해요. 손님이 없는 시간에 틈틈이. 의외로 할 수 있는 게 되게 많아요. 하루 중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은데 그냥 보내기는 아깝잖아요.”


그럼 너의 그 취미가 어떤 것들이냐는 질문이 되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았다. 질문의 의도를 들어보니, 오엪씨가 담당하는 다른 점포의 점주님(아마도 신규 점포)이 같은 문제로 고민이신 모양이었다. 음. 나라는 한 점주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뿐 딱히 나에 대해 궁금한 건 아니셨구나. 그래도 일과 상관없는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지 않고 그 점주의 고민도 같이 고민해 주면서 조언이라도 얻어가려는 걸 보면 다행히 좋은 사람 같았다. 이 일이 지긋지긋해진 내가, 과연 조언을 줄 만한 입장인지는 잘 모르겠다마는.




오랜 친구들은 알겠지만 이 일을 하기 전에도 나는 워낙에 취미 부자였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만들고 싶은 것도, 호기심도 많고, 그런건 다 해 봐야겠는데 어떡함. 대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걸 ‘하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살겠다’는 의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런 나의 기질 덕으로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잘 지내올 수 있던 것 같다.


요즘의 취미는 보시는 대로, 닥치는 대로, 글쓰기. 작년 여름부터 갑자기 팔자에도 없던 웬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은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가장 큰 부분은 나 자신에 관한 것들. 항상 나를 더 잘 알기 위해 애쓰는 타입이라서 이 정도면 이미 나에 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착각이었다는 사실. 쓰면서 발견한 ‘나’는 가끔 스스로가 낯설기까지 했다. 앞으로도 더 알아가야 할 새로운 내가 많이 남아 있을 테고, 어떤 것들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과정이 즐겁다. 이 즐거움이 꽤 중독적이기까지 해서 이렇게 계속 쓰고 있는지도. 이런 건전하고 진취적인 중독이라면, 까짓거 중독자 좀 되면 어떠랴.


또 알게 된 재밌는 사실은 알고 보니 주변에도 쓰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는 것. 이 녀석들은 하나같이 미공개인 글을 쓰고 있어서 여지껏 그런 줄도 몰랐던 건데, 흥미롭게도 본인들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쓰는 나’에게 조심스레 커밍아웃해 왔다. 헐, 너도? 야, 나두!

이게 참 재미있는 포인트.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모두가 꼭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공통관심사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상황과는 다른 것 같아서.


나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수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운, 때로는 수치스러울 수도 있고, 취향에 따라서는 핵노잼인, 내놓기 참 부끄러운 필력의 글인데도 나는 왜 전체 공개이고 그 친구들은 비공개일까. 그냥 나만 ‘관종’이라서? 뭐, 그럴 수도 있기야 하지만.

일단 나의 경우, 누구라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싶었다. 혼자 몰래 종이에 쏟아붓기만 해도 어느 정도 해소는 되겠지만 벽 보고 하는 이야기만큼 부질없고 답답한 게 또 있을까. 나는 소통을 원했다. 어떤 피드백도 좋았다.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아주 반대인 의견을 내비쳐도 그건 그거대로 또 좋았다. 애초에 같길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만큼 나 또한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러니 자유로운 생각과 마음을 댓글로나마 달아준다면 고맙겠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친구들의 행동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전히 공개하지 않을(또는 못할) 글이지만 그런 게 있다는 걸 나에게 알려왔다는 것은 “나 사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엪씨가 나에게 질문을 위한 질문을 던졌듯이, 드디어 운이라도 띄운 거다. 시간이 더 걸려 그 이야기를 정말 들려주게 될 수도, 아니면 영원히 숨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리고라도 싶은 그 마음은, 어떻게 보면 내 글에 대한 분명한 공감의 의사였고 소통의 시도였다.




우연히 커밍아웃을 하게 된 친구들 중에는 심지어 나보다 훨씬 전부터 이미 브런치 작가인 녀석도 있었다. 알고 보니 1세대인 대선배님이셨고, 아쉽게도 작품 활동을 하진 않지만. 읽은 책이 아주 많은 친구라서 그런지 ‘훌륭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 보였다. 본인 기준에서의 좋은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공개의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게 녀석의 생각. 그 친구가 추천해 준 책들을 봤을 때, 그 기준은 매우 높을 거라 짐작되고 그만큼 그 친구의 글을 보기는 힘들어지겠다. 그래도 중년즈음엔 자신의 책을 내는 게 버킷리스트라 했으니 기대해보도록 하자.


다른 친구는 시를 쓰는 아주 감성적인 녀석이고 나보다도 훨씬 오랜 시간을 참 꾸준히 써 왔다. 아주 가끔은 써 놓은 글을 나에게만 보내주곤 했는데, 나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유일한 독자로 선정된 걸 고맙게 생각하는 한편, 그걸 나만 본다는 게 참 아쉬웠다. 나는 친구의 글을 저장해 두었다가 새로운 시인을 찾는 문예지 프로젝트의 창작자에게 그걸 몰래 보냈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내면 깊은 곳의 비밀글을 쓰던 녀석은 무려 고정 필진이 되었다. 괜한 짓을 했다며 질색팔색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내 예상대로 친구는 아주 기뻐했다. 이제 우리는 곧 이 녀석의 글을 책으로 볼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녀석은 글삭캐. 올렸다가도 잠시 뒤에 지우거나 아예 혼자만 볼 수 있게 비공개로 돌리는 식. 궁금한 건 못 참아서 이유를 물으니, 자신이 쓴 걸 보고 상처받을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책임감에 꾹꾹 눌려있는 속 이야기들. 차마 솔직하게 내보일 수 없는 것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만 해도 이런 주절거림 뒤엔 훨씬 더 딥하고 다크한 것들이 있고, 나는 그런 부분은 오히려 쓰지조차 않는다. 친구는 이제 새로 생긴 혼자만의 공간에 그런 것들을 적겠다고 했다. 나는 끝내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순 없을 테지만 그런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이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너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졌기를.


내가 글을 쓰게 된 데에 많은 영향을 준, 작년에 개인 출판을 하신 지인의 새 책을 읽고 문학적인 표현력에 감명받아 ‘글이란 건 정말 이런 사람이 써야 하는구나’하면서 비문학의 극치를 달리는, 하이퍼리얼리즘의 표본인 내 글에 의기소침해 진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으신 그 분은 ‘글은 모두가 써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천잰가.

글을 쓰지 않더라도 누구나 가슴 속에 하고픈 이야기를 가지고 산다. 글을 쓰더라도, 타인에게 한 번도 읽히지 않은 글일 수 있다. 그런 글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작가님의 말씀처럼 모두가 글을 쓰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글을 읽은 당신이 나에게 한 발짝 더 가까워졌듯이 나도 당신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말인데,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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