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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Apr 23. 2023

티타늄은 개뿔

20230423


티타늄은 개뿔. 이전 글을 쓰고 조금의 텀도 없이 바로 다음 날, 인간 티타늄은 그렇게 겨우 하루 만에 무너졌다.


꽃집 사장님은 태도를 싹 바꿔 보상은커녕 불법 구조물로 신고한다고 협박해왔다. 어닝이 길 쪽으로 튀어나온 탓에 사고가 난 거니, 오히려 우리가 자기 트럭까지 물어내야 한다고 큰소리였다. 아무래도 보험회사에서 그리 말하시라 시킨 모양이었다. 음. 아직 나 꽤 순진했구나.

우리 가게 입구의 어닝이 사실상 저 아저씨가 우기는 것처럼 불법 구조물까지는 아니지만 규격의 기준치보다 10cm가량 초과했기 때문에 신고하면 벌금이 부과되는 사항은 맞단 걸 마침 그날 방문한 OFC(본사 담당자)를 통해 확인받았다. 사고 낸 사람이 저런 식으로 나오면 보상받을 방법이 없기에 OFC는 방향을 틀어 맞대응으로 나섰다. 꽃집의 배달 트럭은 키가 큰 나무를 태우기 위해 불법으로 높이를 개조한 화물칸을 싣고 다녔고, 그것 때문에 사고가 난 거라고 주장했다. 거기에 꽃집의 내외부 모두에도 충분히 신고가 가능한 미허가 구조물투성이였다. 이 두 남자는 서로의 허점을 지적하며 더 센 협박으로 응수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문제없이 해결될 줄 알았던 이 일이 갑자기 이렇게 커다란 일이 돼버리자 나는 황당해서 말문이 다 막혔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게 아닌데.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만 했다. OFC에게, 개업을 위해 시공할 당시 정작 나는 설계도를 본 적도 없는데 본사에서 이렇게 지어놓고서 책임은 왜 나에게 묻느냐고 따지니 계약서에 그렇게 나와 있단다. 본사의 설계가 합법이든 불법이든 추후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가맹점주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고. 그놈의 계약서. 하여간 뭐만 하면 계약서 타령. 암요. 갑인 니들이 을인 나에게로부터 어디 한 푼이라도 손해 볼 인간들이냐. 본사도 본사지만, 아무리 OFC가 이런 점포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결국엔 본사로부터 월급 타 먹는 그쪽 직원이므로 내 편일 리가 없다. 이들은 항상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척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가 막히게 손절이 빠르다. 뭐 하루 이틀인가. 물리게도 겪었는데 뭘 기대했나.


해결은 무슨, 개싸움으로 번지게 만든 두 사람의 태도가 개좆같은 이 상황보다도 더 실망스러웠다. 꽃집 사장님은 우리 가게와 알고 지낸 세월이 7년이다.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지내던 사람들이 고작 접촉 사고 따위에 본색이 드러나 협박씩이나 하다니, 유치하기 짝이 없어 실소가 터진다. 본인이 정말 파손을 물어주기에 억울한 상황이었다면 저렇게 값싼 협박이나 하기 전에 나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순서 아니냐. 당신이 나보다도 어른이잖아. 그리고 한 동네서 장사하면서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로 동네 시끄럽게 하고 싶을꼬.


물론 저 양반이 협박한 것처럼 정말로 시청에 우리 기물을 신고할 리는 없다는 걸 나는 안다. 단순히 물어주기 싫어서 겁주기 위한 수단으로 협박을 선택했을 뿐, 실제로 신고가 들어가면 불리한 쪽은 오히려 그쪽이다. 막말로 나도 독한마음 먹고 똑같이 나갈 수도 있잖아. 그 집의 트럭과 건물 모두 불법으로 하나하나 신고해 우리보다 배는 더 될 벌금을 때려 맞도록 역관광 보내기도 쌉가능이고, 사건의 발단인 접촉 사고는 뺑소니로 신고해 버려 우리 쪽은 어닝 규격 초과에 대한 벌금만 그거대로 내고서 파손 건은 따로 합의금을 받아 내든 처벌을 받게 하든 정신이 번쩍 들도록 참교육시켜주면 그만이다. (협박은 이렇게 하는 거다, 이 모자란 양반아.) 그러니 실제로 신고할 리는 없을 테고, 그렇기에 더 화가 났다.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런 식으로 나왔을까. 뒷감당도 못 할 거면서 다짜고짜 협박하면 여자라서 쫄 줄 알았을까. 그게 양아치 짓이 아니면 뭐야.


아, 유감스럽게도 OFC는 굉장히 쫄린 모양이었다. OFC는 저 양반이 정말 신고라도 할까 봐서 자꾸 그쪽의 뭐 하나라도 더 불법적인 걸 찾아내 꼬투리를 잡으려 애를 썼고, 나는 저 사람 신고 못 할 테니 그런 거 다 관두시라고 했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그나마 아는 얼굴인 내가 가서 다시 잘 좀 얘기해 보라며 회유했다. 그 집과는 원하든 원치 않든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할 사이니 한 번쯤 이 일에 대해 다시 말을 꺼내야겠긴 하지만 지금은 뭐가 됐던 다 싫었다.

당신들은 사내도 아니다. 부서진 어닝은 그저 플라스틱일 뿐인데 그게 뭐라고.


그 난리를 덮어두고 은행에 전날 수입을 입금하러 가는 중, 맹히씨로부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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