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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Jun 10. 2023

아이고, 아부지

20230610


이런 글을 쓰는 내가 불효자식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불효라고 하신다면, 나는 그냥 천하의 불효자식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함께 가게 일을 하던 아부지를 내 손으로 해고했다.


막 해가 뜰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다. 보통 사람들의 출근 시간보다도 꽤 이른 시간. 내가 아직 바쁘기 전인 폭풍 전야쯤 되겠다. 그때쯤 왔으니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일찍 들른 거였겠지. 와서는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당신이 내 딸한테 담배를 팔았느냐고 했다. 뒤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아이를 봤고, 그런 일 없었기에 그런 일 없었다고 했다. 양복 차림의 남자는, 그럼 그게 누군지 니가 얘기해 보라며 딸에게도 화를 냈다. 무슨 일이신지 상황을 설명해 주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딸애의 방에서 담배가 나와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여기서 샀다고 했단다. 나는 즈그 아빠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인 그 학생에게, 무슨 요일 몇 시쯤 샀냐고 차분히 물어보았다. 차분했다기 보다는 차분한 척했던 게 맞겠다. 그리고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비교적 차분한 척하기도 쉬웠다. 속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몇 시쯤 샀을지 너무 뻔히도 알 것 같았지만 제발 그 시간대만은 아니길, 차라리 다른 근무자 시간대이길 바라며 대답을 듣고 있었다.


“어젯밤 10시쯤이요...”


시발. 왜 좆같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밤에, 그때 계시는 남자 근무자분한테? 학생이 직접 구매했어요? 사복 입고 와서?”


“네.. 아저씨 계실 때.”


가슴팍 한가운데에서 불덩이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얘 탓을 하고 싶었다. 그래, 너도 잘못한 게 없지는 않지. 이 좆만한 년이 아주 발랑 까져서는 어려서부터 싹수가 존나게 노래가지고 어디 시발 으른을 속여 담배를 사느냐고, 나도 쟤 아빠처럼 침 튀기며 화내는 상상을 했다. 상상은 자유고 게다가 공짜니까. 근데 청소년 보호법 위반은 공짜가 아니라서 벌금이 나오거든. 그게 누구 주머니에서 나갈까요, 밤 근무자님? 아이고, 아부지.


“그 남자 근무자가 사장이에요? 그 사람 지금 어딨어, 빨리 나오라고 해!”


“밤에 근무하셔서 지금은 주무실 시간이라 불러드릴 수는 없고요, 제가 책임자니까 저랑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하실 말씀 하세요.”


“여기서 더 얘기할 게 뭐가 있어요! 미성년자한테 담배 팔아 놓고!! 그리고 팔아먹은 당사자도 아닌데 내가 아가씨한테 뭐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지! 내가 지금 화가 나서 그렇지, 나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아니, 물로온! 우리 애가 담배를 산 것도 큰 잘못이니까 내가 집에서 밤새 혼을 냈어요. 원래 그러던 애가 아니니까, 혼내면서도 내가 정말 너무 속이 상해서... 보세요, 여기처럼 애들 상대로 그렇게 장사하는 곳이 있으니까,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애들 일탈을 방관하고 있으니까 애들도 자꾸 그러는 거 아니겠냐구요. 어른이 말이야,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내 이 자식 버르장머리 확실히 고쳐놓으려고, 얘 학교 데려다주면서 선생한테도 얘기할 거고, 지금 경찰서 가서 여기도 확 신고할 거니까 그리 아시라고, 그 얘기 하러 온 겁니다!”


하나하나 맞는 말이라 뭐 깔 게 없네. 말 많은 내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게 이런 상황이다. 내가 그런 게 아니니 나야말로 억울한 상황이지만 책임자이기 때문에 억울해서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하. 책임지는 것도 질린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어야지. 하도 답답해서 이웃 가게 언니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언니들은 “야, 아무리 그래도 아부지가 알고 파셨겠냐? 미성년자인 줄 모르니까 그러신 거지. 연세도 있으신데 그럴 수 있어.” 하며 아부지 탓을 하는 나를 나무랐다.


나도 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단,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면 그냥 신분증을 요청하고 확인만 하면 되는 건데. 사진으로 분간이 힘들다면, 그럴 때를 대비해 쓰라고 비싼 돈 들여 위조 신분증 감별기도 구비 해 뒀는데. 기계에 넣고 지문만 올리면 되는데. 그걸 왜 안 하시느냐고 다그치면 아부지는 ‘물류가 들어와 바빠서 그랬다’, ‘뒤에 사람들이 줄 서 있어서 그랬다’며 핑계만 늘어놓았다. 아무리 바빠도, 기다리는 줄이 가게 밖까지 뻗어 있다고 해도, 미성년자에게는 절대로 금지 품목을 팔면 안 된다. 게다가 이 사건 때도 부녀 일행이 가고 나서 바로 CCTV를 열어봤고, 바빴던 시간도 아니었으며 줄 서 있는 사람도 없었음을 확인했다. 아부지의 이런 핑계들이 핑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제발 핑계가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겨우 잠깐의 녹화 영상 확인 한 번에 쉽게 무너지는 순간, 그의 거짓말이 섭섭함을 넘어 배신감과 실망감이 되어 내 뺨을 후려갈기는 것만 같다. 그냥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앞으로는 정말 조심하겠다고 하고서 그 말에 책임을 지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언니야, 미안하지만 언니가 틀렸다. 내가 쪽팔려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는데 솔직히 얘기하면 나의 아부지는 미성년자인 걸 알고도 파실 분이다. 그래서 저 학생의 아빠가 한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삼십여 년간 나의 아부지를 겪으며 깨달은 건, 이 사람은 심각한 나르시시스트라는 거. 세상만사가 자기를 중심으로만 돌아가고 타인의 사정이나 사회의 규범은 좆도 알 바가 아니다. 이득이 없다면 그건 손해일 뿐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그런 아부지 밑에서 못 볼 꼴 보며 자랐어도 덕분에 배운 건 있었다. 눈앞의 푼돈에 양심을 팔았다가는 되돌릴 수 없는 댓가를 반드시 치른다는 거.


내가 저 학생의 나이였을 때, 혼자 집에 있는데 갑자기 웬 형사들이 찾아와 아부지를 찾았었다. 지금 회사에 계신다고 대답하고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관계가 어떻게 되냐길래 제 아부지라고 했다. 회사 위치를 묻는 말에, 무슨 일인지 말해주시면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아부지가 도난 카드를 사용해 피해자로부터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본인 카드가 있는데 왜 남의 카드를 쓰겠냐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아부지가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의 카드를 주웠는데 주유소에서 그 카드를 사용해서 카드 주인에게 사용 알람이 떴고, 그 즉시 도난 카드로 신고해 사건이 접수되어, 사용처에서 사용 시간 당시의 CCTV를 확보한 후 범인(ㅎr...)의 차량번호를 추적해 등록된 차주의 주민등록상 주소로 방문한 거라고 했다. 그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도 겨우 미성년자 나부랭이였던 나샛기는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해 형사를 상대로 극딜을 박았다.


“아부지 회사 위치 알려드릴 테니까요, 아저씨, 조건이 있어요. 지금 일하는 중일 텐데 형사님들이 회사로 무작정 들어가서 경찰서에서 왔다고 하시면, 그래도 직장인데 아부지 입장이 많이 곤란해질 것 같거든요. 일단 회사 주차장에 도착하셔서 아부지한테 전화로 경황을 말씀하신 다음에 본인이 직접 회사 밖으로 만나러 나오길 기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몇천만 원 긁은 것도 아닌데 겨우 기름값 한 번 긁은 것 가지고 목숨 걸고 튈 리는 없잖아요. 부탁 좀 드릴게요, 형사님.”


후에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온 아부지한테 범행(ㅎr...)의 이유를 물으니 ‘호기심’에 그랬다고 했다. 뭐? 호기심? 무엇에 대한 호기심? 남의 카드를 함부로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호기심? 누가 봐도 당연히 범죄인 건 잼민이도 아는데 대체 무슨 호기심? 도덕적인 개념도 다 무시할 만큼 그게 그 순간에 막 참을 수 없는 강렬한 충동일 정도로 궁금했다고? ㅇㅅㅇ??? 남의 카드로 기름을 넣으면 차가 더 잘 굴러가는지 뭐 그런 엉뚱한 호기심을 말하는 건가? 상식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데, 내 상식에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호기심’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돌이켜보니 그게 이 지옥의 시작이었다. 그땐 그 이후로 또다시 그런 일을 겪어야 할 줄 꿈에도 몰랐다.


형사들이 아부지를 잡으러(ㅎr...) 회사로 떠난 후, 이상하게도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왜 우는지, 이 마음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 그런 감정들이 휘몰아쳤었는데 이제 와 특정해보니 서러움이었던 것 같다. 이 사람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한은 서러움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저 아이의 아빠는 제 딸을 지키기 위해 책임을 물으러 나에게 왔는데, 내 아부지의 딸인 나는 또 아부지가 저지른 잘못을 수습하며 대신 고개 숙이고 있었다. 서러웠다. 서러웠고 부러웠다.


“아버님, 일단 저희가 정말 죄송합니다. 철저하게 확인하고 판매하는 게 저희가 하는 일인데 말이죠. 그래도 오해는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미성년자인 걸 알면서도 파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담배 하나 팔아서 얼마나 남겨 먹는다고, 아니 얼마를 남겨 먹더라도요, 저 양심 팔아가면서 장사하는 사람 아닙니다. 그리고 어제 학생한테 담배 판매했다는 직원이 사실은 제 아부진데요, 연세가 있으신 분이잖아요. 올해 손주 본 ‘할아버지’예요. 요즘 애들 화장도 진하게 하고 따님처럼 저렇게 타투도 하고요, 완전 어른 코스프레하고 다니는 거 아버님도 따님 있으시니까 잘 아시잖아요. 저부터도 헷갈리는데 나이 많은 사람 눈에는 오죽하겠습니까. 위반한 걸 정당화하려고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아니고요, 편의점 운영하면서 저희도 정말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거, 실수하지 않는 게 아버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는 거. 그런 걸 좀 알아주셨으면 해서 그냥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여기서 제일 가까운 지구대는 이쪽으로 나가셔서 두 번째 골목에서 좌회전하시고 쭉 내려가시면 바로 보이실 거예요. 그래도 신고 전에 먼저 이렇게 귀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직원이 명백하게 잘못했으니 처벌 주셔도 달게 받을 각오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 처벌을 피할 길도 없었고 피해서도 안 되니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에도 습관처럼 변호에 애써 최선을 다했다. 언니들이 했던 말 덕에, 아부지의 잘못마저 듣기 좋게 포장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나의 모든 언어가 진실인 것은 아니었으므로 말하면서도 마음은 불편했다. 거짓말이라는 불편한 짓을 할 때마다 역겨워서 토할 것 같다. 이젠 아부지 변호를 능숙하게 하는 나 자신도 역겹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딸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당신이 무엇보다 역겹다.


내 사과를 들은 부녀는 경찰서 방향으로 가는 듯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결국 신고하지는 않았더라. 아마 아버지다웠던 그 남자에게 아버지답지 못한 사람의 딸인 나의 서러움과 부러움을 들켰던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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