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도 미래의 CEO가 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아이와 비지니스 도전기

by 도럽맘

새해가 시작된 1월 1일, 남편에게서 뜬금없이 인스타그램 DM이 날아왔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메시지를 클릭했다. 메시지는릴스 링크였고, 영상에서는 반짝이는 조명이 켜진 어느 크리스마스 시즌의 풍경 속에서 아이들이 테이블에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꿀단지부터 인형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영상엔 영어 자막이 나오고, 배경엔 영어로 말하는 남자의 오디오가 흘러나왔다. 릴스 제목엔 “Future CEO”라고 쓰여 있었다. 미래의 CEO?


나는 릴스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며 자막을 읽고, 캡션까지 꼼꼼히 읽었다. 킨더(6세)부터 12학년(18세)까지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비즈니스 수업이었다.


모든 수업을 이수하면 프로그램 주최 측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 참가해 자신의 제품을 실제로 판매할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새해 첫날,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은 용기가 샘솟던 나는 무슨 배짱인지 웹사이트 링크를 클릭하자마자 10분 만에 프로그램 신청과 결제를 끝내버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 비즈니스 프로그램이 이렇게 우리 가족의 장대한 프로젝트가 될 줄은.


한가한 저녁, 다시 웹사이트에 들어가 수업 안내와 설명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구글 클래스룸에 접속해 수업 교재를 모두 다운로드했다.


수업은 총 5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과는 비디오 강의와 PDF 형식의 수업 교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부를 마친 뒤에는 워크북을 작성해 다시 업로드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모든 교재는 영어… 잉글리시였다.
하… 이건 내 공부가 되겠구나 싶었다.


일단 모든 수업 교재를 프린트했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교재를 공부해야 할 상황이었다. 킨더에 다니는 6살 엘리가 혼자서 이걸 해내기엔 무리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나는 한 과목씩 천천히 번역해가며 워크북에 글씨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수업은 비즈니스 기초와 사업 계획 수립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뭘까?’
‘이걸 누가 사고 싶어 할까?’
‘이름을 뭐라고 짓지?’
‘로고는 어떻게 만들까?’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으로 바꾸는 사고의 전환을 배우게 된다. 참 인상 깊은 접근이었다.


두 번째 수업은 비용 계산과 가격 책정.
그래도 다행히 엘리는 더하기 빼기 정도는 할 줄 안다.
실제 원가 계산, 손익분기점 분석, 가격 설정 전략까지… 실생활 속 숫자 감각을 키우는 훈련이었다. 나 또한 이 수업을 통해 처음으로 원가와 수익의 관계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수업은 제품 준비와 안전 규칙이었다.
제품을 준비하는 공간은 얼마나 청결해야 하는지, 음식은 몇 도 이상에서 보관해야 안전한지, 손은 얼마나 자주 씻어야 하는지…


이 수업을 통해 아이는 기본적인 위생 원칙을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며 책임감과 성실함이라는 인성 교육까지 함께 익히게 된다.


네 번째 수업은 마케팅과 고객 서비스.
자신이 만든 것을 어떻게 알리고, 어떻게 설득할지.
전단지를 만들어보고, 부스를 예쁘게 꾸며보고,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고…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경험. 이 모든 활동이 아이에게는 세상과 처음으로 연결되는 ‘리얼 커뮤니케이션’ 훈련이었다.


마지막 수업은 돈을 다루는 감각, 즉 금융 소양에 대한 수업이었다.
판매 후 수익을 받으면 아이는 신난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장난감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하지만 진짜 교육은 그다음부터 시작이다.


‘이 돈을 어떻게 쓸까?’


이 질문을 통해 아이는 수익률을 나누고, 저축과 재투자를 계획하고, 앞으로의 운영비까지 계산해보는 훈련을 받는다.


돈은 단순히 ‘버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키우고, 관리하는 것’임을 배우는 것이다.


게다가 은행 계좌 개설, 카드 결제 방식, 송금 앱 사용 등… 이 수업을 통해 아이는 실제 디지털 금융 사회에서 필요한 금융 문해력도 함께 익히게 된다.



나는 이 모든 수업을 아이와 함께 공부하기에 앞서 먼저 꼼꼼히 살펴보며 정말 놀랐다.


“미국은 왜 이렇게 어릴 때부터 실용적인 경제 감각을 가르칠까?”


“왜 이런 비즈니스 교육이 활발한 걸까?”


나는 이런 교육을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이게 아이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정말 궁금했다. 사실 그 배경에는 미국 특유의 교육 철학과 사회 분위기가 있다고 본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창의성과 자립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존중받고, 스타트업과 비즈니스가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축으로 여겨지는 사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CEO처럼 생각하는 훈련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미드나 영화에서 자주 보는 ‘레모네이드 가판대’도 그런 문화의 상징이다. 아이들이 여름마다 집 앞에서 직접 만든 레모네이드를 파는 모습, 그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수요와 공급, 가격, 홍보, 고객 응대까지… 아이들이 직접 배우는 미국식 경제 교육의 대표적인 장면이다.


생각해보면 미국 교육은 ‘앉아서 듣는 수업’보다

‘직접 해보는 프로젝트형 학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경제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개인의 재정 관리 능력 부족이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고, 그 이후 미국의 많은 학교들이 예산 세우기, 저축, 투자, 세금, 신용카드 사용법 등

실질적인 금융 문해력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학교를 넘어 지역의 비영리 단체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확산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결핍을 잘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부모가 모든 걸 채워주기 때문이다.

마트에 가면 장난감이 넘쳐나고, 아이가 조금만 떼를 써도 부모는 아이의 힘듦을 참지 못해 쉽게 요구를 들어준다.


그게 아이에게 진정한 풍요를 주는 길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 고민을 해왔다.
그리고 내가 가장 후회하고 안타깝게 여겼던 것은 ‘경제 교육’에 무지하게 살아온 내 과거였다. 나는 돈 공부를 하지 않았고,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 나서도,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나아가 내 창의성을 경제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는 점차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이에게는 어릴 때부터 경제 교육을 제대로 시키자.’


남편은 미국에 와서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나는 옆에서 도왔다. 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편이 그 DM을 내게 보낸 건, 나도 함께 비즈니스를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사실, 이건 내가 먼저 배워야 했던 공부였다. 그래서 아이보다 더 열심히 워크북을 파고들었다.


아이와 도서관에 갈 때면, 나는 프린트한 워크북을 챙겨 가서 한 과목씩 함께 공부했다. 물론 아이가 100% 이해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아이는 많은 것을 이해했고, 나와 대화를 나누며 점차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아이의 눈은 반짝였다.


우리는 함께 비즈니스 이름을 짓고, 어떤 물건을 팔지 구상하며,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다.

시간이 꽤 걸리는 프로젝트였다.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비교하고, 품목을 정리했고 그렇게 어느새 5개월이 흘렀다.


점점 일상에 바빠지면서 귀찮음도 찾아오던 어느 날,
5월에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플리마켓 날짜가 정해졌다는 알림이었다. 참가 신청을 원하는 아이는 등록하라는 안내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론으로만 배우던 경제 공부를 실천으로 옮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혹시 안 팔리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아이는 오히려 더 눈을 반짝였다.
그래, 아이도 이렇게 용기를 내는데 내가 여기서 주저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플리마켓 참가 신청을 하고
다시 판매할 물건 목록을 정리한 후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하루하루 시간이 가까워지고 어느새 플리마켓까지 1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아이와 나는 물건을 펼쳐놓고 가격을 정하는 과정에서 한참 토론했다.


(아이) “비싸게 팔면 안 팔릴 수 있으니까 싸게 팔아야 해.”
(나) “많이 사는 손님에겐 풍선 머리띠를 서비스로 주는 게 어때?”


가격표를 만들고, 포장을 준비하고, 계산 연습을 하고, 응대 멘트까지 연습했다. 엘리는 그날을 상상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WELCOME TO OUR STORE’


라는 문구를 하얀 도화지에 색연필로 정성껏 쓰고 꾸몄다.


아빠는 다시 한번 말했다.

“판매한 수입 중 30%는 나에게 원가로 돌려줘야 해.”


비즈니스에는 투자비용이 든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은 한마음으로
엘리의 첫 비즈니스 성공을 위해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플리마켓 디데이가 찾아왔다.

엘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고, 우리는 30분 동안 프리웨이를 달려 요바린다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요바린다는 내가 자주 찾는 도서관이 있는 도시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의 학구열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백인들이 오래전부터 정착한 도시답게 아이들 교육과 미국 문화에 진심인 동네다. 이 프로그램도 요바린다의 한 비영리 단체가 주최한 것으로, 대부분 이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행사였다. 그런데 나는 운 좋게도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덜컥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이날은 7월 3일, 미국 독립기념일 전날이었다.
요바린다에는 ‘Lake Village’라는 큰 인공호수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매년 저녁이 되면 보트 퍼레이드가 열린다. 우리는 퍼레이드에 앞서 ‘빌리지 입구’에 마련된 플리마켓에서 한 테이블을 할당받아 제품을 판매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행사 시작 시간은 오후 6시였지만, 우리는 4시 30분에 미리 도착했다. 큰 나무 아래 그늘진 공간에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우리는 준비해 온 박스를 꺼내 판매 준비를 시작했다. 판매 물건은 다양했다. 런치백(보냉백), 캐릭터 볼펜, 지우개, 스티커, 머리삔, 헤어밴드까지.
나는 기다란 테이블 위에 흰 테이블보를 깔고, 그 위에 물건들을 최대한 예쁘게 꾸몄다.


전날 프린트한 비즈니스 이름 'Fluffy'도 테이블 앞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두었다. 옆 테이블엔 엘리보다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미국 국기 색상의 팔찌와 모자를 진열해 놓았다.


총 세 테이블이 있었던 작은 플리마켓이었지만, 우리 세 가족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드디어 오후 6시, 엘리의 첫 비즈니스가 시작되었다.


고맙게도 ‘큰손 이모’ 몇 분이 오셔서 오픈하자마자 물건을 잔뜩 구매해주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도 찾아왔고, 동네 아이들 역시 귀여운 머리삔을 사기 위해 우리 테이블로 몰려들었다.


엘리는 손님이 오면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종이백을 들고 다가가 손님이 고른 물건을 정성스럽게 담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종이백 손잡이를 꼭 쥐고는 손님이 계산을 마칠 때까지 놓지 않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물어봤다.

“왜 종이백을 끝까지 네가 붙들고 있어?”
그러자 엘리는 한마디 했다.
“돈 안 내고 가져가면 안 돼.”


하하… 이 아이, 나중에 뭐가 되려나.

귀엽고, 기특하고, 든든하기까지 했다.


물론 가끔은 옆 테이블 구경 가고 싶어 안달이 났고, 나는 “엘리~!” 하고 불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엘리는 우선순위를 기억하고는 번개처럼 자기 자리로 달려와 손님을 응대했다.


우리는 2시간 30분 동안 총 210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대부분 1~2달러짜리 제품이었으니 200개 가까운 물건을 판 셈이었다.


해가 지고, 보트 퍼레이드 준비가 시작되자 엘리의 마음도 바빠졌다. 퍼레이드를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엘리는 아직 아이니까.


우리는 오후 8시 40분쯤 모든 물건을 정리하고 성공적으로 첫 장사를 마쳤다. 차에 짐을 실은 후, 다시 호숫가 근처로 이동해 보트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고, 미국 국기로 장식된 보트들이 물 위를 떠다녔다.


미국에 온 지 2년이 조금 넘은 우리 가족. 그날은 처음으로, 진짜 미국 사회의 삶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동양인 가족, 그리고 꼬마 숙녀가 열심히 준비한 자신의 제품을 판매하는 모습이 이곳 백인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이 뭐가 중요한가. 이 낯선 땅에서 스스로 해낸 이 경험은 우리 가족에겐 결코 잊지 못할 날이 될 테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엘리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4시간 가까이 서서 물건을 팔았으니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 엘리는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말했다.


“정산은 지금 바로 해야 해!”


우리는 돈 지갑을 열고 함께 수익을 셌다.
총 매출은 210달러.

아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하지만 아빠가 말하던 원가 계산을 떠올리자 곧 풀이 죽은 표정이 되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전체 수익의 30%는 투자비로 아빠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남은 금액 중 10%는 십일조로 따로 떼어놓았다.


그리고 남은 수익 전액은 엘리의 김치 저금통에 ‘저축’이라는 이름으로 넣었다.


그 돈은 3년 뒤, 엘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강아지를 맞이할 때 사용할 예정이기도 하고, 앞으로 엘리의 비즈니스 활동에 필요한 재투자금으로도 쓰일 예정이다.


엘리는 김치통 뚜껑을 단단히 닫고, 옷만 간신히 갈아입은 채 침대에 누워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우리 집의 작은 CEO는 오늘, 자신의 첫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실패해도 괜찮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도전.

하지만 이 여정은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었고,
내 안의 결핍되었던 경제적 감각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었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자신감, 실행력, 성취감을 안겨준 큰 배움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 누구도 몰랐던 2025년 1월 1일의 선택이 이토록 우리 가족의 삶을 바꿔놓을 줄은 정말 몰랐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고, 우리는 그 용기를 내어, 함께 해냈다.


엘리는 이제 더 이상
미래의 CEO가 아니다.


그녀는 이미 진짜 CEO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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