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마 스토리 타임

피곤해도 도서관에 가야하는 이유

by 도럽맘

주말 동안 왜 이렇게 바쁘고 힘든지, 월요일이 되자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밀린 살림과 일도 처리해야 하니 아침부터 나는 아이를 썸머스쿨에 등교시킨 후 부지런히 움직인다. 바쁜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오후에 엘리와 함께 부에나팍 도서관에 가야 하는 약속이 계속 떠오른다.


'저녁 도시락을 만들어야겠네... 뭐 준비하지?',


'파자마 스토리타임이니까 잠옷도 챙겨야겠지? 이따 일 마치고 바로 픽업하러 가야 하니까 미리 챙겨서 나와야겠다.'


'아... 너무 피곤한데 오늘은 도서관에 들르지 말고 바로 집에 와서 쉴까? 그런데 아이와 약속을 했으니 가야겠지.'


종일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간다.
도서관 덕후이고 도서관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나지만, 이렇게 몸이 피곤할 때는 하루쯤 쉬고 싶다. 아이에게 유튜브 하나 틀어주고 1시간이라도 누워서 휴식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분명 이렇게 힘들고 쉬고 싶고 핑계를 대고 싶은 날, 이러한 도서관 여정이 내게 더 큰 여운과 행복을 줄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안다.


'그래, 가자. 내가 다짐했던 걸 이런 작은 핑계로 포기할 수 없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일이 밀려 퇴근이 늦어지는 것이다. 집에 들러 도시락을 만들기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잠옷을 챙겨 나와서 다행이다. 나는 일을 마치고 한인 마트로 달려갔다. 엘리는 조금 작은 오뎅 김밥, 나는 불고기 쌈김밥을 한 줄씩 샀다. 미국에서 살면서 이런 김밥을 바로바로 사 먹을 수 있다니, 나는 파라다이스에 살고 있구나 싶다.


김밥을 봉지에 담아 엘리의 썸머스쿨로 향했다. 아이를 픽업하고 도서관에 도착한 우리는 도서관 입구 벤치에 앉아 김밥을 꺼내어 오물오물 먹는다. 도서관 입구를 오고 가는 이용객들은 우리 모녀를 쳐다본다. 김밥이 맛있어 보여서 그럴까, 아니면 소풍에 나온 듯 두 모녀가 종알거리며 밥을 먹는 모습이 신기한가... 아무튼 우리는 배를 든든히 채우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저녁 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어린이 룸에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엘리에게 파자마로 갈아입을 것인지 물어보니 조금 부끄러워하는 눈치다. 요즘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인 시나모롤 파자마 치마를 가져온 거라 엄마부심으로 꺼내 들었는데, 7세 여아는 부끄러움이 많아졌다. 그래도 입고는 싶었는지 화장실에 들러 파자마로 갈아입고 쭈뼛쭈뼛 서 있는 엘리. 파자마를 입고 도서관에 온 건 처음이라 조금 낯선가 보다.



잠시 후, 엘리가 제일 좋아하는 Ruth 사서가 왔다. 엘리는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사서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한다. 사서가 파자마 스토리타임을 준비하는 걸 돕게 해준다며 사서 옆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사서는 그런 엘리를 언제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주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둘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나는 그럴 땐 조금 떨어진 어린이 테이블에 앉아 엘리와 사서를 지켜본다. 좋은 어른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며 행복해하는 아이의 얼굴이 몽글몽글하게 내 가슴을 만져주는 것 같다.


엘리는 스토리타임에 필요한 물건 세팅을 도와주다가, 항상 사서가 가져오는 우쿨렐레에 눈이 갔다. 스토리타임이 끝나면 엘리는 사서 곁으로 다가가 이 우쿨렐레를 띵가띵가 쳐보기도 하는데, 관심이 많은 악기인가 보다. 엘리는 우쿨렐레 줄을 퉁기며 사서에게 어떻게 연주하는지 집요하게 묻는다. 사서는 바쁜 와중에도 엘리에게 ‘작은별’을 칠 수 있도록 코드 세 개, C, F, G를 알려준다.



한참을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는데 30분이 되어가자, 파자마를 입은 꼬꼬마들이 엄마 손을 잡고 어린이 룸에 들어선다. 아마도 엘리가 제일 큰 언니 같다. 그런데 엘리가 사서 앞에 앉지 않고 사서 옆에 앉는다. 순간 왜 저러지 싶었는데, 바로 엘리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엘리는 이날 스토리타임의 발렌티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냥 앞에 앉아 스토리타임에 나오는 노래와 율동을 따라 하는 참가자가 아니었다.


사실 엘리는 학교와 교회에서 자신보다 큰 언니, 오빠들이 베이비시터 하거나 발렌티어 하는 모습을 동경한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자기도 동생들을 돌보고 앞에서 선생님을 돕고 싶어 한다. (나서는 성격이다.) 아마도 사서에게 오늘 자신이 스토리타임 시간에 발렌티어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사서가 허락한 모양이다.


엘리는 사서 옆에 서서 곁눈질로 사서의 율동을 따라 하며 아이들을 쳐다본다. 그 순간 자신 또한 '사서'처럼 보이고 싶었던 걸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사실 엘리는 꿈이 참 많다. 동물 의사, 배드민턴 선수, 발레리나, 학교 선생님 등. 그중 하나가 ‘사서’가 되는 것이다. 이유야 많겠지만, 엘리에게 ‘사서의 꿈’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서’의 모습에서 시작됐다.


사서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그 이야기에 행복해하고, 자신도 행복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 직업이 참 보람되고 멋지다고 느끼는 듯하다.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언젠가 자신도 아이들에게 책을 재밌게 읽어주고 싶어서란다.


Ruth 사서 곁에 서서, 품었던 꿈을 조금씩 펼쳐보는 엘리의 모습에 왠지 울컥 눈물이 났다. 이날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내 눈에 각인시켜두고 싶을 정도였다. 30분간의 스토리타임이 끝나자 아이들은 하나둘 떠나고, 엘리는 정리까지 돕는다. 그러고는 다시 우쿨렐레를 붙잡고 또 사서에게 질문 세례를 쏟는다.


‘아… 이제 그만 좀 하지… 사서님 바쁘신데…’


그런데 그때, 엘리가 흥분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말한다.
“우쿨렐레를 대여해서 집으로 가져갈 수 있대!”



아, 맞다. 도서관에서는 책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대여가 된다는 걸 문득 떠올렸다. 여러 도서관을 다니다 보면, 바이올린, 우쿨렐레를 벽에 걸어놓고 ‘대여 가능’이라고 써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보드게임 및 퍼즐, 장난감, 공예 및 창작 키트, 관찰 장비, 공구 및 실생활 장비 등 다양한 물품들을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대강 그럴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대여해보지 않았던 나. 이번에도 엘리 덕분에 처음으로 책이 아닌 (예전에 DVD는 대여한 적 있었지만) 다른 물품을 대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도서관 데스크에 가서 우쿨렐레를 대여하고 싶다고 하니, 안쪽에서 가방에 담긴 우쿨렐레를 하나 가지고 나오신다. 그리고 내가 건넨 도서관 카드 바코드를 찍고, 반납 기간이 적힌 영수증을 건네받으니 끝. 이렇게 간단하고 쉽다고?


반납 기간은 3주였고, 연장 또한 웹사이트에서 가능하다고 한다.
우쿨렐레를 건네받은 엘리는 파자마 옷 위 어깨 한쪽에 걸치고 룰루랄라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 다 되어간다. 나는 녹초가 되었고, 엘리는 아빠에게 우쿨렐레를 꺼내 들고는 사서에게 배운 세 개의 코드를 기억해내며 '작은별'을 쳐본다.


피곤했지만, 내 멱살을 잡고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 덕분에 엘리는 오늘 하루 사서도 되어보고, 우쿨렐레로 '작은별'을 연주하게 되었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역시 오늘도 도서관에 가길 참 잘했다.
토닥토닥,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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