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직 고장 안난거지요?

by 해와달



어렸을 때부터 내가 참 잘 하는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참는거였다.


내 감정을 내뱉어도 받아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였을까.

그렇다면 정말 똑똑한 아이였던거 같다.


그걸 무의식적으로 깨달았을까,

아님, 울고 울어도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는걸 몸으로 체득했을까.


아, 전자였으면 좋겠다.

후자라면 너무나 눈물날 거 같으니.


하지만 다행히도 내 성격으론

전자가 맞을 거 같다.


난 조용하고 유순한 아이였으니.




-



20살이 될 때까지도,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면서도 별 반항 하지 않고 지냈고,

굉장한 모범생이었다.


여러 방면에서 참았다.

심지어 누군가 날 욕해도 참았다.


욕해도 그걸 화내야하는건 줄 몰랐다는게 정확하다.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도 모를 새에,

그 욕찌꺼기들은 공기에 흩날려 날아갔다.

내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선.



-



3X 살.

이제서야 그게 봇물 터지듯 터지는 것일까.


내가 가장 못하는게 생겼다.


그건 바로 참는거다. ㅎ


당장 1시간 거리를 뭘 타고 가는걸 못하겠다.

그 1시간을 못참겠어서.


1시간 수업 들으라는 것도 못하겠다.

그 한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책 1권을 못읽겠다.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장 엊그제만 해도 인형뽑기하는데 17만원을 썼다고 하면

아, 얘가 어디가 아프구나 하고 이제야 알아줄까.


또 한달전에는 30만원어치의 가챠를 해댔다고 하면,

아, 조금 위험한 상태일까 하고 날 보듬어 줄까.


소비가 멈추지 않는다.


한 번 터져버린 마음의 구멍은 마치 소비의 형태로 나타나

끊이질 않는다.


카드를 긁고 또 긁어버린다.


뽑고 싶었냐, 갖고 싶었냐, 사고 싶었냐,


아니다, 아니다 , 아니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다만 이제 못하게 되버렸다.

참는거.



조금이라도 참으라고 하면 그게 정말 너무나 싫어졌다.

화를 내고 싶어진다.



-


어느 누가 요즘의 날 보고

ADHD 초기 증상아니냐고 물었다.

그런가.



그런말을 들을 정도인가, 나.


참고 또 참고 이때껏 참기만 하고 살다가

병이 나서 고장나니 이런 소리를 듣네….


아 병은 병인가.




-


정신과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저… ADHD 인가요?


선생님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아니에요. 극도의 불안이에요.”


라고 말했다.


이상한 안도가 되었다.


그런가요, 선생님?


나... 아직은 고장 안난거지요.?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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