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빠진 투두리스트가
우리를 지치게 한다
일은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을 투두리스트에 올리고, 그것을 하나씩 지워가며 살아간다. 그렇게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보람보다는 피곤함과 허무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우리가 만든 투두리스트에 '마음'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교생 실습을 하는 대학생 한 명이 그룹 멘토링 시간에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칠 교안을 만드는 작업을 단순히 빨리 끝내야 하는 과제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자신이 교안을 만드는 이유는 단지 제출기한에 맞춰 일을 마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사랑하고 그들의 성장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본질적인 목적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고백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일을 하는 본질은 무엇일까? 물론 빨리 끝내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의 진짜 가치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고 누군가에게 전하는 데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물론이고 과정까지 완전히 달라진다.
가령, 투두리스트에 흔히 올라오는 '기획 PT 발표 준비하기'라는 항목을 살펴보자. 만약 이 업무를 단지 체크리스트에서 빨리 지워버리기 위한 과제로만 여긴다면, 발표 자료는 그저 표면적인 정보로 가득 찬 형식적이고 딱딱한 내용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발표자의 목소리에는 열정보다는 성의 없음이 묻어나고, 그 모습을 보는 이들도 금세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같은 업무를 '우리 팀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준비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해 의사결정자들을 잘 설득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준비 과정부터 달라진다. 자료를 더욱 꼼꼼히 살피고, 핵심 메시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애정을 쏟게 된다. 발표 순간에도 듣는 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마음이 자연스레 표현된다. 그렇게 발표자의 열정과 진정성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일에 의미와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필자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진행하는 '리더십 마스터클래스' 강의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일을 단순히 매주 처리해야 하는 업무로만 바라보면, 강의 준비는 그저 끝없는 부담감과 피로만 쌓여가는 시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대학생들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을 품고 강의 준비를 시작하면,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되새기며, 그들에게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강의 중에도 학생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부정적이거나 이기적인 언행을 교정하려다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한다. 그렇게 진심을 담아 노력하다 보면 내 마음이 학생들에게도 잘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강의를 통해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다.
의미가 없는, 마음이 빠져 있는 투두리스트는 우리의 하루를 단순한 노동과 소모의 연속으로 만들어버린다. 반면,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전하려는 마음으로 임할 때, 일상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에너지를 전하는 삶의 일부가 된다.
지금 이번 주 투두리스트를 한번 펼쳐보자. 거기 적힌 항목들을 바라보며, '빨리 끝내야 할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할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 작은 마음의 변화가 우리 일상의 모습과 하루를 살아가는 에너지를 놀랍도록 달라지게 할 것이다. 투두리스트에 '마음'을 더하는 순간, 지쳐가던 우리의 삶이 다시 생기와 의미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Glenn Carstens-Pe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