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사랑은 당장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씨앗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다. 특히 아이들이 바르게 크지 않을 때는 참 많이 좌절스럽다. 나는 정말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편인데, 아이들은 그 과정조차 성실하게 수행하기 어려워했다. 예를 들면, 거짓말을 하는 문제로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훈육해 왔음에도 중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내 생각만큼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는 것 같아,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을 바르고 사랑으로 양육하고자 첫 아이를 낳고 일말의 미련 없이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성경을 읽어주었고, 아낌없는 스킨십과 사랑으로 키워왔다. 주변 지인들은 알겠지만, 절대 오냐오냐 키우지도 않았고 훈육도 제대로 해왔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 한순간도 아이를 방치하거나, 내 감정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려 애썼다. 때로는 더 단호하게, 때로는 더 따뜻하게 품어주며 균형을 잡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내가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않았다.
그 좌절의 시간을 지나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먼저, 사람을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착각했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했다.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이미 그 진리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아이 앞에서는 또다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어린 자녀에 대해서는 내 노력으로 기질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통제한다고 해서, 내가 겁박한다고 해서 아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새기려 한다. 잘못된 행동에는 훈육하되, 아이의 문제로 인해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내 마음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또한 생각해 보니, 아이의 문제뿐 아니라 내 노력에 대해 보상받고 싶었던 마음이 더 큰 좌절로 이어졌던 것 같다. 결국 내 안에 ‘보상받고 싶다’는 욕심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제때에 보상받지 못하는 노력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모의 사랑이 대표적인 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보상을 받고 싶어 했을까. 내 안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전혀 다른 기질을 마주하고 있다. 그중 한 아이는 회피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이 타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회피하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문제를 분명히 짚고 훈육은 하되, 그 훈육이 곧바로 효과를 낼 거라는 기대는 내려놓기로 했다. 타고난 성향을 극복해 가는 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는 ‘기다리는 태도’를 다잡으려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아이를 바꾸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아이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갔다가 두 걸음 물러서더라도, 그 아이의 마음에 내가 심은 사랑과 진실이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라는 소망을 붙들고 가야 한다. 기다림은 결코 무기력한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단단한 사랑의 표현이자,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는 믿음의 행위라고 믿는다.
이제는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그러나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태도로 아이를 바라보려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부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아이와 함께 웃고, 아이가 넘어질 때 다시 손 내밀며 기다리겠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조금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