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당신의 무기력을 끝까지 감당해 줄 것이라 생각하는가?
한대협에서 수년째 리더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대학생들을 만났다. 어떤 이들은 강의 한 번에도 눈빛이 달라지고, 멘토링 한 마디에 노트를 펴며 진지하게 받아 적는다. 반면, 어떤 이들은 동기부여 강의를 해줘도, 심도 있는 1:1 멘토링을 해줘도 심드렁하다. 눈빛은 흐리고, 회의 시간에는 딴청을 피우고, 지각을 해도 서두르는 모습이 없다. 면접 당시에는 분명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는데, 활동 1~2주 만에 이렇게 의욕 없는 모습으로 바뀐다는 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대체 이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추측컨대, 이들은 '시작' 자체에만 집중하고, 그 이후의 설계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면접을 통과하고, 프로그램에 합격한 것만으로 스스로의 목표가 완료되었다고 여긴다. 마치 '입사'가 인생 목표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고, 그 이후는 비워둔 채 살아간다. 하지만 실제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회사들이 왜 '입사 후 포부'를 묻는지, 많은 대학생들을 만나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입사만 하고 나면 곧 목적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사람이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을 깊이 있게 살지 않는다. 하루가 쌓여 인생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오늘 하루가 뭐 중요해', '지금 열심히 안 해도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라는 안일한 태도는, 결국 스스로의 가능성을 스스로 꺾는 일이 된다. 20대 초반의 시간은 '실험'과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굉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시기인데, 정작 그 귀한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고 무기력 속에 자신을 묻어두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나이가 들고서야 허비한 시간의 대가를 깨닫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심드렁한 태도 속에는 '아직 누군가가 내 인생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깔려 있기도 하다. 부모님이든, 교수님이든, 혹은 리더든, 누군가가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말은 "성인이에요"라고 하지만, 행동은 미성년자와 다를 바 없다. 스스로 인생의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없고, 언제까지나 누군가가 도와주고 끌어줄 것이라는 판타지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현실이 있다. 사회는 당신의 성장을 끝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심드렁한 태도에 오래 인내해 주는 사람은 가족 정도다. 조직에서는 다르다. 상사든 동료든, 당신이 '심드렁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는 순간, 아무도 당신을 끌고 가려하지 않는다. 조직은 누군가의 무기력을 끌어안고 가지 않는다.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인심은,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리더의 입장에서 보면, 심드렁한 팔로워는 리스크다. 회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팀의 추진력을 떨어뜨리며, 다른 구성원들의 동기를 갉아먹는다. 그런 사람을 붙잡고 끝까지 도와주는 것은 조직의 '역량'이 아니라 '낭비'가 된다.
사회는 열정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몰아준다. 심드렁한 사람에게는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다. 냉정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들의 심리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무기력해 보이는 그 한 사람도, 마음 깊은 곳엔 변화의 열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열망은 제대로 작동하려면 '책임감', '현재에 대한 집중', '다음 목표를 향한 시선'이라는 점화 장치가 필요하다.
학교는 내가 돈을 내고 다니는 조직이기에 심드렁한 태도가 어느 정도 용인될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는 나에게 돈을 주는 곳이다. 사회생활은 곧 거래이며, 성실과 태도는 당신이 사회와 맺는 계약의 기본 조건이다. 일과 조직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세상은 심드렁한 이들을 동기부여하며 이끌어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
사회는 생각보다 바쁘고, 냉정하다.
움직이는 사람만이 다음 기회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