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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만 다니겠다는 말이 위험한 이유

병행 없는 20대는 경쟁력이 없다

"이번 학기는 전공 6과목 듣는 것도 벅차서요. 학교만 다니려고요." 대학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듣는 순간 막막함과 안타까움이 함께 밀려온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학교만 다니겠다'는 생각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걸까.


한 30년 전에는 가능했을지 모른다. 학점 잘 받고, 졸업장 받고, 어학점수 몇 개 채워두면 웬만한 회사는 지원할 수 있었던 시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같은 신입 공채 경쟁자들조차 1~3년 차 경력을 가진 중고 신입들이다. 그들과 겨루려면 실무 경험과 조직 경험은 기본이다. 기업은 어떤 조직에서, 어떤 역할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해봤는지를 반드시 묻는다. 그 질문 앞에 학교 수업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솔직히 말해 자기소개서 한 줄도 제대로 쓰기 어렵다.


지금 시대는 '한 가지만 잘해서 되는 시대'가 아니다. 병행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병행할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워킹맘, 워킹대디, 멀티잡, 투잡, 잡노마드 같은 단어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이유다. 사람들은 회사에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주중엔 근무하고 주말엔 창작 활동을 한다. 이들은 무슨 초인이 아니라, 그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병행은 더 이상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약 20년 전에 대학을 다녔던 나조차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한 번도 병행을 쉬어본 적이 없다. 대학생 때는 전공 수업과 한국대학생인재협회 활동, 그리고 실무 인턴을 병행하면서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한대협 리더를 계속했고, 지금은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여전히 한대협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아이 둘을 양육 중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고, 브런치에 글을 쓰며 책 출간도 준비 중이다. 이 말만 들으면 "그걸 어떻게 다 해요?"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지만, 나 역시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다. 작게 시작했고, 몸이 기억하게 될 만큼 반복해 왔을 뿐이다. 당연히 버거운 순간들도 있었다. 몸이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행은 하면 할수록 감당력이 생기고, 오히려 나를 단련시켰다. 우선순위에 맞게 선택과 집중을 하는 법, 계획을 세우는 법, 빠르게 집중하고 생산적으로 일하는 법, 일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책임지는 법이 몸에 익게 되었다. 병행은 나를 무너지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속도와 방식으로 병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몸이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회복이 필요한 시기라면 멈추는 것이 맞다.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으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시도해보지도 않고, 노력해보지도 않은 채 단순히 "피곤해서", "귀찮아서", "좀 쉬고 싶어서" 병행을 미루는 건 다른 문제다.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선택이며, 더 이상 유예가 불가능한 시대에서 스스로를 뒤처지게 만드는 결정이다.


부모님이 당신의 노후까지 책임져줄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을 갖추고 계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다. 병행을 늦출 여유는 없다.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경쟁은 상당히 치열하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손해다. 남들이 달릴 준비를 마치고 출발선에 선 그 순간, 나는 아직 코스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면 이미 한참 뒤처진 것이다.


병행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태도의 문제다. 병행할 수 있느냐보다 병행할 생각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병행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감당하려는 사람이 해내는 일이다. "힘드니까 다음 학기에 할게요", "이번 학기는 학교만 다닐래요"라는 말은 뒤처지는 태도를 드러내는 신호다. 기꺼이 병행을 감당하려는 사람과 피하려는 사람의 차이는 결국 1~2년 후 현장에서, 포트폴리오에서, 말하는 깊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다. 학교를 다니면서 실무 프로젝트 하나만으로도 병행은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병행해 보는 경험'을 쌓는 것이다. 처음엔 엉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감당력이 생긴다. 병행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병행을 해본 사람은 다음번에도 해낼 수 있다. 그게 이 시대의 경쟁력이다.


지금은 병행을 피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러니 학교만 다니겠다는 말은 위험하다. 지금은 병행을 미룰 때가 아니라, 병행을 연습해야 할 때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gaelle-marcel-L8SNwGUNqbU-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Gaelle Marc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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