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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할래요"가 취업을 늦춘다

산업·직무를 좁히는 순간, 기회는 빠져나간다

졸업한 지 1년이 넘도록 취업을 못한 A 씨는 대학 시절부터 인사 직무만 준비해 왔다. 관련 자격증을 따고, 인턴 경험도 쌓았지만, 막상 채용 공고는 1년에 몇 건뿐인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경력자 우대'였다. 그마저도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이어서 번번이 탈락했다. A 씨는 "다른 직무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라고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격증도, 인턴 경험도 점점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반면 B 씨는 졸업을 앞두고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원래는 마케팅만 준비했지만, 지원 폭을 영업과 MD까지 넓혔다. 자신이 경험했던 실무 프로젝트 몇 가지를 각각 직무별로 다르게 재구성해 자기소개서에 담았다. 예를 들어, 판매 경험은 영업 지원 시 매출 달성률과 고객 관리 사례로, 마케팅 지원 시 프로모션 아이디어와 성과로, MD 지원 시 상품 선정 기준과 재고 관리 경험으로 풀어냈다. 결국 그는 식품 산업의 MD로 취업했고, 2년 후 원하는 마케팅 직무로 이동했다.


비슷한 함정이 특정 산업을 고집하는 데에서도 나타난다. 의류패션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해당 산업의 MD나 브랜드 마케팅 직무는 인기가 높지만, 채용 공고 상당수는 영업이나 영업 관리 직무에 집중돼 있다. 본사 기획·마케팅 TO는 매우 적으며, 사내 전환이나 계약직 전환, 업계 추천을 통해 충원되는 사례도 많다. 실제 통계를 보면, 신입 채용은 2024년 2,516명에서 2025년 488명으로 무려 81% 감소했고, 경영관리(기획·브랜드·마케팅 등) 직무 채용은 13명에 불과하다. 이런 구조를 모른 채 해당 산업만 고집하면,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녹록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희망하는 산업에서 실무와 유사한 경험을 쌓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회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해당 산업에서 종사한 경험을 어필하고자 아르바이트나 단기 경험을 찾지만, 실제 핵심 업무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스포츠 마케팅을 꿈꾸는 학생들이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서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소비자 접점 경험은 의미가 있지만, 실제 마케팅 전략 수립이나 캠페인 운영, 데이터 분석과 같은 핵심 업무와는 거리가 있다. 산업 경험만을 좇다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취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첫 취업 준비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산업보다 직무 경험이다. 영업, 마케팅, MD처럼 다양한 산업에서 통용되는 직무 역량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리고 같은 경험이라도 지원하는 직무에 맞춰 재시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같은 판매 경험이라도 영업 지원 시에는 매출 목표 달성률, 고객 확보·유지 활동, 판매 데이터 분석을 강조하고, 마케팅 지원 시에는 고객 니즈 분석, 프로모션 기획, 콘텐츠 제작 및 반응 분석으로 풀어낼 수 있다. MD 지원 시에는 상품 선정 기준, 재고 관리, 판매 트렌드 분석을 중심으로 어필하면 된다. 결국 경험의 가치는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산업 선택은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정 산업을 고집하기보다, 자신이 희망하는 직무가 포함된 채용 공고라면 폭넓게 지원하는 편이 안전하다. 만약 여러 공고가 동시에 떠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시장 규모가 크고 향후 이직할 수 있는 회사가 많은 산업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유리하다. 예를 들어, 소비재 산업은 제품·브랜드 경험이 다른 산업으로 확장되기 좋고, 식품 산업은 경기 변동에 강하며 제조·유통·브랜드·R&D 등 직무 범위가 넓다. 플랫폼 산업은 다양한 직무가 공존하고 내부 전환과 이직 기회가 많다. 이런 산업을 선택하면 첫 직무에서 쌓은 경험을 같은 업계의 다른 회사는 물론, 전혀 다른 산업으로도 이전할 가능성이 높아져 장기적으로 커리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취업에서 '고집'은 전략이라기보다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특히 신입 채용 기회가 적은 환경에서는 그 위험이 더 커진다. 기회의 문을 넓게 열어둔 사람이 더 빨리, 더 유리하게 커리어를 시작한다. 첫 직무는 인생의 종착지가 아니라, 더 큰 기회로 가는 관문이다. 유연하게 선택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기회를 잡는다.


사진: Unsplash의 Greg Ra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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