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을 핑계 삼으면, 업무 범위도 인생도 줄어든다
얼마 전 콘텐츠 마케팅 회의에서 각 담당자가 준비해 온 기획안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이 있었다. 한 콘텐츠를 흥미롭게 풀어갈 방법을 이야기하던 중, 한 담당자가 이렇게 말했다. "저라는 사람이 워낙 유머와는 거리가 있고 진지한 편이다 보니, 콘텐츠를 재미있게 만드는 걸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 우리가 보는 재미있고 유머 있는 콘텐츠를 만든 사람들이 모두 유머러스할까요? 제작자의 성격과 기질이 마케팅을 하는 데 제약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건 단순한 회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혹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면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축소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언뜻 자기 성향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제한하는 발언일 수 있다.
예전에 내가 입사했던 회사는 음악 플랫폼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었다. 면접장에 함께 있던 많은 지원자들이 "음악을 좋아한다"를 지원 동기로 언급했다. 그때 면접을 보시던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생선을 싫어해도 생선 장사를 잘할 수 있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개인적인 성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내성적이어도 영업을 잘하는 사람, 혼자 있는 걸 좋아해도 인사 업무를 훌륭히 해내는 사람,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높은 텐션으로 방송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수두룩하다.
성향과 역량은 다른 문제다. 성향은 타고난 기질이고, 역량은 학습과 경험으로 키울 수 있는 기술이다. 타고난 성향이 어떻든, 새로운 기술과 접근법은 충분히 익힐 수 있다. 재미와 유머도 마찬가지다. 의외성 있는 전개, 타이밍을 살린 구성, 공감 포인트를 뽑아내는 감각은 관찰과 훈련으로 얼마든지 개발 가능하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이 구분을 하지 않고, 성향을 역량 부족의 이유로 삼는 순간 스스로 업무의 범위를 제한해 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업무에서 제한을 두는 습관은 서서히 인생의 폭까지 줄인다. 성향·성격·기질 등을 이유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고, 새로운 경험 속에서 얻을 수 있었던 깨달음과 성취도 사라진다. 자기 효능감을 맛보는 순간들도 드물어지고, 인생을 사는 재미와 흥미도 떨어진다.
또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때로 자신의 미성숙한 부분, 예를 들어 인성과 태도, 소통 문제 등을 개선하지 않는 근거로 악용되기도 한다. 성숙해지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된다. 그들과는 솔직한 대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게 되고, 결국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의 폭도, 깊이도 줄어든다.
결국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직장 안팎에서 나를 한정된 세계에 가두는 말이 된다.
그래서 사고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 자신의 성향을 리스크나 제약이 아니라, 새로운 업무를 대할 때에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산으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진지하다"라는 성향은 제약이 아니라 메시지의 무게감과 설득력을 높이는 강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기획된 유머 포인트를 얹는 건 기술로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 웃기는 콘텐츠를 잘 만드는 사람들의 작업 과정을 분석하고, 그 구조를 흉내 내보는 것도 방법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실험을 반복하며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면 된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평소 말수가 적고 회의에서 발언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성향을 이유로 발표나 진행 역할을 피한다면, 그는 해당 역량을 기를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셈이다. 그러나 같은 성향을 '나는 말을 아끼는 만큼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능력이 있고 핵심을 정리하는 능력이 있다'는 강점으로 해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료 준비를 철저히 하고, 발언을 짧고 임팩트 있게 구성하면 오히려 신뢰를 주는 발표자가 될 수 있다. 처음엔 어색해도, 준비와 시도를 반복하면 '말이 적어서 발표를 못 하는 사람'에서 '짧고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이 입에 붙으면,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셈이다. 성향은 역량을 제한하는 족쇄가 아니라, 역량을 확장하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내 성향이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범위는 결국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이, 나를 가두는 가장 좁은 울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