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함이 없으면 인간관계도 일도 힘들게만 느껴진다
리더 생활을 하며, 돈을 벌며, 가정을 지키며, 자녀를 양육하며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과정을 겪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나 자신이 내면이 성숙해야만 타인의 모난 부분을 감당할 수 있으며 일과 상황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대학생인재협회(이하 '한대협')에서 만 17년 넘게 리더 생활을 해왔다. 그 생활을 돌이켜보면, 상사의 계속되는 성과 압박과 비난 때문에도 힘들었고, 오너십이 부족한 구성원들 때문에도 힘들었고, 같은 마음이라 생각했던 동역자들이 조직이 위기일 때 헌신하기보다는 자기 앞가림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힘들었다. 뒷담을 하는 소리들을 건너 건너 듣는 것도 피곤했다. 돈을 버는 과정도 가정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할 당시, 한대협도 초창기였고 당시 나는 유일한 실무진 리더로서 대학생들을 모두 이끌어야 했다. 동시에 교회 사역도 많이 감당하여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에 부쳤다. 직장 이후에 남편의 소원대로 식당 사업을 시작했지만 빚만 늘어갔다. 경제적 어려움과 동시에 가정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남편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그 영향을 내가 고스란히 받아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다. 당시 큰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었는데, 아이가 통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출산 후 1년 정도는 밤에 잠을 잘 자지도 못해 육체적으로도 정말 피곤했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한대협 리더 생활의 어려움까지 이중삼중으로 겹쳐 눈물범벅으로 밤을 지새운 날이 허다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리더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내하는 과정 속에 사업의 기회가 찾아왔고 이 사업을 한지 벌써 만 10년이 넘었다. 또한 그 인내 끝에 한대협을 진심으로 애정하고 충성하는 동역자들이 많아졌다. 대학생으로서 한대협을 찾아와 여기서 훈련받고 취업한 아이들이 어엿한 실무진으로 성장했다. 함께 산전수전 겪으며 코로나 위기도 잘 이겨낸, 기둥같이 단단한 동역자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의 소중한 가정도 자리를 잡았다. 우리 남편은 이제 나의 가장 큰 조력자다. 내 글을 읽으며 본인의 과거 이야기가 있어 불편할 수 있는 데도 하나도 내색하지 않고 '내 팬'이라며 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시아버지께서도 본인의 이야기가 내 글에 담겨 있어 민망해하시지만 시아버지께서 내 글을 제일 자주 읽으시는 것 같다. 사실 나의 진짜 팬은 시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하하. 그리고 내게는 아들 둘이 있는데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벌써 중학생, 초등학생이다. 두 아이 모두 학급 리더를 맡는 등 엄마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꿈을 키우는 중이다. 자신들의 롤모델이라며 나를 치켜세워준다. 가족들이 보여주는 애정과 지지는 나에게 큰 힘이 된다.
나는 이러한 경험에서 쌓인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한대협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대학생들에게 내면의 성숙함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내 경험을 예시로 들며 어떠한 태도로 일해야 하는지, 어떠한 태도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위기 상황에서 어떤 마인드셋이 필요한지 아낌없이 알려준다.
나는 브런치에서 글을 통해 대학생들과도 좀 더 자주 만나고, 좀 더 많은 분들과 인사이트를 나누고 싶다. 고진감래라더니 인내 뒤에 이룩한 지금의 삶이 정말 값지기 때문이다.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 이제는 누구보다 나를 신뢰해 주시는 나의 멘토님이시자 상사님이신 지도교수님, 팔로워에서 리더로 성장한 동역자들의 애정과 존경을 느끼며 살아가니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없다. 브런치를 통해 이러한 복된 삶을 함께 영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