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
작가의 꿈을 꾸던 몇만 년 중에 일어난 일
칼국수가 나왔다.
뜨끈 뜨근한 국물을 후루룩 떠 마시고, 두터운 국수가락을 휘저어 입에 넣었다.
하아~ 그래 이 맛이야!
지난 며칠 동안 칼국수를 먹고자 했으나 같이 먹을 이가 없었다. 최측근마저도 혼자 먹으라며 잠자러 가버린 주말 이후 월요일. 입동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자 더욱 쓸쓸했다.
내가 뭔가. 내 생이 정말...
이런 한탄을 하며 마을학교 단톡을 보게 되었다.
이게 뭐람.
하부루타? 그거 내가 끝내주게 할 수 있는데... 토론 소믈리에?
게다가 이런 콜라보라니!
그들은 나에게 미끼를 던졌다는 것을 아직도 모를 것이다.
허겁지겁 신청을 했고 다음 날인 바로 오늘, 방금 전 토론회에 다녀왔다.
하! 완득이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1회 차 도서는 완득이였다.
15분 일찍 도착한 나로서는 10여분 늦는 강사와 회원에 대해 슬쩍 불신이 들기도 했다.
강사의 성함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긴 했지만, 그래서 혹시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그가 칠판에 자기 이름을 썼을 때 아하! 끝 글자가 다르구나. 모르는 사람이었네. 하고 간단하게 확인되었다.
전에 갔던 동화책 읽는 어른 모임 이런 것처럼 제발... 짜증 나지 않길 바라며.. 그 모임 때도 오늘같은 폭우보다 어렵게 폭설이 내려 두 시간 이상을 택시를 타고 첫 모임을 갔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애쓴 결과도 발 시리게 끝났다.
드디어 내가 지목되었다.
오늘은 어쩌려나 진정 토론의 소울메이트들이 등장하려나... 퍼붓는 겨울비에 우중충한 하늘을 안고 달려간 영종.
아침 드라이브라 마감하여도 아쉬울 것 없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깊게 우울이 파인다.
자유로운 영혼들. 소소한 그러나 드러날수록 자기 강단에 농염한 자태를 뽐내는 5인의 여성이 입실했다.
나는 첫마디가 시작 시간은 좀 지키자고 숨길 수 없는 성깔을 내보이며~너무 악독하지는 않게 그러나 그들이 듣기에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게... 의사를 표현했다. 깐깐한 척 해보았다.
그분들은 모두 한 차를 타고 오느라 15분이 늦었고.... 영종 모임인데 영종인들은 아무도 없고, 다 인천 연수에서 날아온 분들이었다!
강사 왈, 어제까지 신청자가 아무도 없어서 지인들 조직해서 대동했단다.ㅋㅋㅋㅋ
근데 어제 저녁에 나 하나 신청했다는 것이다.ㅋㅋㅋ
그런데 나마저도 영종이 아닌 뭍에서 다리 건너온 것이다!
갑자기 저들끼리 당신들의 천국을 만들던
그때 그 동화책 모임의 냄새가 스멀스멀 나는데
한 분이 말씀하신다.
"그렇다고 우리끼리만 똘똘 뭉치는 건 아니에요. 호호."
'네, 상관없습니다만...'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모임이 끝나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거대 담론을 마치고
강사님을 비롯한 세 분은 후다닥 똘똘 뭉쳐서 자리를 뜨셨고...
나는 간사님과 남아 있는 한 선생님에게 영종 칼국수나 같이 먹고 갈 요량으로
초면에
"점심 먹으러 갈래여?"
했더니 그렇게는 여유가 안 된다 하시니...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다시 혼자 시끄럽게 쏟아지는 겨울비 소리를 들으며
영종의 드라이브를 즐기며
간혹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보며
내 동네로 돌아왔다.
"언니, 칼국수를 좀 먹어야겠는데.. 아무도 먹을 사람이 없어서.."
2시 교육인 사람을 불러 1시에 칼국수를 시켜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그녀를 다독이며 보냈다.
"언니. 커피를 시키면 또 시간이 걸리고 빗길에 늦을라! 걍 가."
그녀는 '그래 또 봐.' 하며 우산을 척 펼치고 떠났다.
울동네도 칼국수집이 있었다는 걸 모르는 나로서는 언니에게 참 감사했다.
칼국수집 옆 빵집에 들어가니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갖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난 내 눈이 직감하는대로
빵집 유리문에 붙은 노란 식빵에 끌려
우자작 뜯어먹으면 좀 좋겠다 싶었는데..
식빵은 어쩌고
모카 크림빵을 들고 나왔다. 요즘 멘털이 많이 허약해 있다.
집에 돌아와
빵을 잡아 뜯는데 어우, 갈색 모카 크림이 잔뜩 삐져나왔다.
한 입 베어무는데...역쉬!
어디까지 처음 한 입은 황홀한 것.
칼국수로도 채워지지 않는 열정, 이것이 디저트의 이유라기보다 뭔가 허전한 마음의 갈증...
아까 모임이 끝날 때 하나의 다짐 발표 같은 것을 했는데
난 고민스러웠다. 제법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고, 남들 다하는 분리수거와 에너지 절약은 기본으로 하는 입장이라! 심지어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는 최측근이 이중으로 수돗물을 틀길래
'거 물 좀 아끼쇼! 허드렛물 있잖우!'하고 못된 잔소리를 범벅으로 활기치고 나온 터라...
그러니 내가 더 이상은 좁쌀영감처럼은 살기 싫어서 이 이상 어디에서 에너지를 줄이고 환경에 대한 마인드를 고취하나 싶어 나온 내 심중의 얘기가
"저는 그냥 멘탈갑이 되어야겠네요. 제멋대로 행동하는 분리수거장 모습을 봐도 아무렇게도 못했거든요."
호응갑인 이분들의 으샤으샤 받아주는 후속 발언
"그럼 한 마디 하시지 그랬어요.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겠지만!"
아. 내가 말 뽐새가 없었구나!
"전 누가 뭐라든 이상한 언니로 살아요!"
집단상담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랬군!'
후훗! 재밌는 분들이네~~
낯선 곳에서 어찌해도 살아나지 않는 멘털 저조증에서
살아남는 법은 없다. 그냥 뭉개고 사는 거다.
강사님은 너무 놀랍게 책을 쓸 생각이 없냐고 하신다.
'있지요, 물론이죠.'
이제 다 물 건너갔다 싶었는데 또 노 저을 일들이 생겨난다.
재밌는 세상이다.
나는 허기가 졌던 것이다.
며칠 째 고장 난 머리를 두둘겨파다가 영혼의 굶주림으로 쓰러져가고 있던 중인데
우연이 우연을 낳고 앞으로 또 어찌 될지 모르는 명함을 받았다.
일이 안 풀릴 때는 그냥 가끔 칼국수 잘하는 집에서 뜨끈한 국물을 마시며 배를 채운다.
강사님 그 말에 배가 좀 불렀던 오전이다.
지금 생의 퍼즐 한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