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리
1. 아내에게 저항 하는 법
천근같은 몸이 괴로울 때는 조금씩 이제 삶이 다 하려나 느껴지기도 한다. 손목에 힘을 주며 양 팔을 의지해야 한다. 무릎을 세우려면 손목이 괴롭지만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렇게 몸을 받쳐야 하니 새벽빛이 일 때마다 몸과의 싸움이다. 드디어 남보다 빠른 노화의 몸을 딛고 일어선다. 아침이다.
갈수록 일이 내 마음 같지 않은 것도 서러운데 허리, 등 무릎 관절까지 찌뿌둥하지 않은 데가 없는 몸을 일으키는 아침도, 점점 두렵고 서운하다. 간신히 수저를 놓으며 만만한 후라이에 아침을 먹는 행위는 마치 기계에 윤활유를 치던 산업화 공장의 부품임을 인정하는 인위적인 행위이자 삶을 유지하는 거룩한 행위일 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투쟁의 시간 캡틴은 이미 폰으로 동영상을 틀고 입터지는 영어를 흥얼거린다. 거실과 맞닿은 화장실에서 혼탁한 영어소리가 나오는데 아침마다 지겨우리 만큼 시끄럽다. 이미 테이블에 책 받침대를 놓고 소설을 한 쪽 읽고 있는 나로서는 상당한 방해꾼이다.
“시끄러!”
하고 소리칠 수 있다는 유일한 권력을 가진 나는 잠시 볼륨이 잦아드는 것을 느끼며 그나마 반응이라도 해주니 어디냐 싶어 다시 잠자코 주방으로 간다. 밥솥에 어제 해놓았던 밥은 남아 있을까. 확인이 필요하다. 이런! 일인분의 밥알을 보고 그것을 식은 밥 찬통에 주걱으로 덜어 넣으며 밥솥을 얼른 물에 담근다. 잠시만 불어라. 그 사이 소설 한 줄을 더 읽고 다시 마른 발바닥을 질질 끌며 살짝 물에 불은 밥솥을 씻으며 정신을 차린다. 내 본캐는 아직 아이들 밥을 해놓아야 하는 어미이고 부캐는 거추장스러운 몸을 끌고 뼈가 닳은 손목을 움직여서라도 글을 써야하는 작가지망생인 것이다. 죽기 전에 몇 편 생각중인 이야기들이 펼쳐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여념 하나에 이정표는 그리로 쏠아다 모으고 있다.
하려던 바를 성취한 것도 아니고 생계에 연연해 살아야했던 지난 30년이 너무 아까워서 이제는 글로 전향하리라. 하며 마음먹고 또 미뤄지고 한 게 벌써 10여 년이니 이제는 너무나도 지극히 소소했던 그와 나의 이야기로 시작을 가리라. 지금 등 뒤로 훤히 밝았다고 햇살이 반사되어 무항성의 노트북을 비춘다.
“오늘 나만 나가면 되지?”
하며 캡틴이 묻는다. 그래요. 아이들은 온라인스쿨이라 아직도 잠을 자네요. 출근을 서두르며 그는 늘상 입던 아재 메리야스도 입지 않고 맨몸에 남방을 걸치고 갈아입은 옷을 세탁통에 던지러 간다. 순간 휙휙 지나가는 그의 모습에 모처럼 귀여운 매력을 느끼며 장난끼가 발동한다. 뭐야, 오늘은 안 입었네.
“오늘은 안 입었네 크으.”
그는 손에 빨랫감을 들고 있다.
“지금 세탁기에 넣어도 돼!”
아침이 되자마자 첫 빨래가 돌아가게 하는 나의 소임은 지난 빨래 개기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이때 이미 돌아간 세탁기에 뒤늦게 빨래를 넣고자 함은 반역이나 다름없는 룰에 아무도 항거하지는 않는다. 다만 학교가기 전 몰래 바구니에 던져놓고 가는 아이들을 향해 혼자서 중얼거릴 뿐이다. 굳이 아침에 빨래바구니에 빨래가 있다한들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지런히 아침을 시작하지 못함에 대한 불만이 뒤늦은 빨래에 집요함을 보이는 것.
그러니 이미 세탁기가 돌아간 다음 나온 빨래를 들고 오히려 당당하게 잔소리를 할려거든 해라~하는 캡틴의 당당한 모습에 게다가 가슴팍을 드러내고 자기의 바쁨을 과시하여 내 입을 막으려는 그에게
“지금 넣어도 돼.”
라고 하는 관용의 말은 미리 잔소리의 지겨움을 방어했던 어깨에 상당히 부담을 빼는 일격이었던 것이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무척 분주함을 드러내는 그에게 아침 장난은 테클이 되므로 거기까지 봐두고 웃음기 어린 표정을 거둔다. 그도 그러는 줄 알고 출근을 한다. 큰아이가 빼꼼 나와 인사를 하고 작은 아이는 아직 이불속이다.
캡틴은 오늘아침 식탁에서도 내게 한방 먹었다. 간밤 뉴스에 이재정이가 똥줄을 탄다길래, 이재정이가 누군데? 하며 알면서도 지청구를 놓다가 시간이 없길래 이름말 똑바로 하라는 1절은 패스하고 그 사람이 왜 똥줄을 타느냐고 그냥 넘겨 받는다. 지지율이 훨씬 낮아서 그렇다나. 대한민국의 선거판도가 이상한 것은 사실이다. 나의 못된 성미는 그러나 됐고, 당신 치매야? 이름좀 똑바로 말해. 하며 다시 일격을 놓는다. 이런 익숙한 상황에 캡틴은 무시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렇게 아무이름이나 갖다 붙이는 게 너무 거슬린다. 해서 처음에 웃으며 넘기던 것이 이젠 노이로제까지 생겨 고만해라~하다가 치매로 몰아간다. 이미 오래전부터 타인의 이름에 대해 개념이 없이 바꿔 부르던 그 습성이 이제는 저러다가 사고치지 싶어 바로 지적질이 나가는 것이다. 그나마 없는 사교개념에 더욱 불리해질까봐 그것이 걱정이다. 늘 나라도 악역을 맡아 그 습관을 고치려 하나 나이 서른부터 할아버지였던 그는 쉽게 고치지 않는다.
인간이 어디 악한 이가 있겠는가. 점차로 상황에 따라 악해지는 것 아닐까. 나역시 순딩순딩한 물렁텅이였으나 어디 그래가지고 살아남기나 하겠나 싶어 패스할 것은 패스이고 짚고 넘어갈 것은 짚어버리자 싶어 개성을 확실히 해두는 터라 자칭 꼰대를 지칭하며 늙어가는 중이다. 굳이 라떼라고 말하는 것을 숨기지도 않을 것이며 인간 쓰레기짓을 눈감고 모르는 척 할 일도 없는 것이니. 굳이 그러한 시류에 의식해서 나를 감추는 것이 더욱 불편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지나친 시비를 탓할 마음은 없으며 타인의 그러함의 존재이유를 말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내게 불편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주 가끔 캡틴이 밖에서 어려운 일을 겪고 올 때 너무 속상해서 내가 그 자식들을 다 처치해버리고 싶은 무용담이 막 떠올라 혼자 무협의 세계를 펼쳐나가 오히려 캡틴에게는 두려움으로 비춰지나 나는 나의 캡틴이 좀 힘있게 자존을 지켜나가기를 바라므로 힘을 실어 주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미약한 존재에게 콧방귀도 뀌지 않아 우리만의 천국에서 오묘한 힘을 발휘해 시기를 극복하고야 만다.
자연인으로 야만인으로 눈을 부릅뜨고 살아갈 수 있는 나이지만 현실의 몸은 천근만근으로 아서라 하고 외친다. 돈키호테와 산초가 따로 없다. 뒤늦게 아이들을 위해 지은 밥의 소리가 취이익~하고 김을 뺀다. 현실의 오늘로 돌아와 나도 나갈 채비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