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 오는 아침

정체가 뭐야

by writernoh

너무 깜깜해서 새벽인 줄 알았더니 아침 7시였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인모를 통증과의 싸움에서 우울증이라 잠정결론을 내리고 나는 더욱 치열해지기로 했다. 세포 하나하나에 이리도 치사함을 느끼는 날이 오다니 이름하여 '노화의 길'이니!

힘들다고 드러누워 있는 일은 걷어 치우기로 한다.


인기척을 듣고 깨어나온 그는 과일부터 깎는다.

"어제 먹던 거 다 먹었어?"

"엉."

후다닥 토스트를 해서 먹게 한 후 일찍 나가야 하는 수험생을 먼저 챙겼다. 10분 차이로 오늘따라 갑자기 급히 나가야 했다. 나는 가족 기사였다.

식탁을 나서며 뒤도 못 돌아보고 따라나서며

"냄비 불 좀 꺼줘.!"

이러고 나왔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가 두 개였다. 작은 것은 먼저 끓길래 내가 끈 기억이 정확했다.

빵을 먹어도 난 국물이 필요했다.


수험생을 내려다 주며

"우산 있니? 시험 끝나고 창밖을 봤을 때, 심한 비가 내리거든 오늘만 엄마 찬스 써."

그러면서 차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다시 주차장. 차 안에서 딸과 남편을 만났다.

"커피도 마시다 말아서 어떡해!"

"응, 괜찮아. 커피는 다시 돌려 마시면 돼.~"

그보다 한손으로 그의 무릎을 치며 난 가스불을 껐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자기가 가스불을 껐는지 모르겠단다.

"큰 거 껐어?"

"글쎄... 끈 거도 같아."

이제 이 사람도 시작되나 보다.


두뇌의 혁혁한 퇴화.

난 아이 낳은 후부터 시작됐고 지금은 더욱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신체나이는 내가 10년은 더 누나라서 부실한 채로 살았는데 건강할 줄 알았던 남편은 요즘 급속히 퇴화하는 게 보인다. 지난 시간 천천히 느려졌던 나와는 달리 급발진하는 그는 더욱 충격스러운 듯!

'여보 밸브 돌린 기억만있으면 돼.밸브만 잠갔어도 다 끈 거야!'

거기에다 날씨 예보를 꼼꼼히 챙기던 사람인데 빗방울이 생기기 시작했다. 늘 보고 챙기던 우산도 손에 들려있지 않았다. 아침부터 괜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싶었다. 머리 복잡할 텐데.

딸이 내릴 차례다.

"너 우산 있니?"

"초록 우산 있어요."

아이를 내려 주고 전철역에 다다랐다.

남편은 스마트폰 검색을 하며 아침엔 안 온다 했는데... 읊조린다.

"여보, 차에 우산 있어!"

남편은 마침 색 있는 우산 밖에 없던 터라 초록 우산을 들고 출근을 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가스불은 얌전히 꺼져있었다.

먹다 남은 커피를 전자레인지에 다시 데우고 빵조가리를 통에 넣어 둔다.


잠시 후 문자가 왔다.

"부천 왔어. 여긴 비와.!"

그래 여기도 비가 와.


식은 커피 마저 마시고 식탁에 널려있는 과일접시에 과일을 찬통에 넣어 냉장고를 열었다.

앗!

저게 뭐니. 어제 먹던 과일이 얌전히 한 통 들어 있었다.


상념에 젖을 새도 없이 나는 설거지를

미뤄두고 한 시간 남은 내 일을 준비한다.

빗방울에 여직도 뿌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