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도 일은 할 수 있는 거다.
언제고 즐겁게 쉬어본 적이 있는가
환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깨어지는 거다.
이웃집 순이네도 밤새 지지고 볶고 세상 미운 인간들이 되어 눈이 퉁퉁 부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굴뚝은 막혔고, 순이는 늘어진 양말을 붙들고
자기만 늘 세상과 격리된 듯
외로움에 처절한 심정으로
차가운 수돗물에 제 눈에서 떨구어진
굵은 방울 섞인 쌀을 씻는지도!
어제와 같은 밤이면
차라리 세상에 없고 말 것을
오늘따라 더욱 아침이 눈부신 것이
자신을 조롱하는 거라 여기며
올 들어 가장 시릴 거라는 아침을
뚜벅뚜벅 맞으러 나간다.
기억하라.
가장 기대했던 순간의 모멸을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스무 살의 겨울을!
차곡차곡 쌓여가는
하얀 시림을 거부하지 못한
서글픈 운명의 날에
순이는 집을 나선다.
이제 순이에게 가족은
발아래 사라지는 눈조각으로 그친다.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문을 열어 조용히 이리로 손짓한다.
호밀밭 파수꾼처럼
순이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고 싶다.
아이야 이리 오려무나.
순이는 이내 사라지며
나를 지나친다.
저런.
보잘것없는 이들의 하찮은 위로가 연통의 김처럼 뿌옇게 흩날린다.
순이야. 순이야.
유통기한 지난 진통제로 삶을 버티는 스무 살의
나의 모습.
어느 크리스마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