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noh Oct 21. 2022

해리건씨의 전화기

영화감상


해리건씨의 전화기


일이 좀 뜸할 때는 ott에 몰입할 수가 있다. 이번 주는 새로운 교안을 만들기 전 워밍업으로 영감을 줄 작품을 찾고 있었다. 두 시간의 여유가 줄 수 있는 행복으로 전에 보다 스킵해 었던 “해리건 씨의 전화기”를 이어갔다.


   미소년 크래그가 첫 장면부터 늪에 뛰어들 것 같은 우울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치 자본주의의 타락으로 사업에 실패한 젊은이가 생을 포기하듯 신발코를 바라보며 망설이는 것이 호기심 반 식상함 반이었다.


 최근 내가 느끼는 감정도 결국 모든 것이 딜레마의 상황이고 영화에서 조차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이 나오니 마음이 무거웠다.

마침 오늘 마음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날, 매일 관찰하는 나무의 색이 점점 갈색으로 변해가고 이도저도 집중이 안 될 때 작정하고 집중하면 좋을 내용이었다. 심지어 다음 모임에는 이 영화를 책으로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서핑을 해보니 스티븐킹의 작품이었다. 살아있구나 이 양반. 넷플릭스에서도 재현되는 존재감이란 한없이 글쓰기의 포부를 꿈꾸게 하는 이름이었다. 피가흐르는 곳에라는 책 속에 실려있는 네 편 중 하나이다.

 

❉❊❄❅❆❇❈❉❊❋


 교회에서 성경을 낭독하던 소년이 늙은 억만장자의 눈에 다. 부자는 그에게 자기 집에  정기적으로 책을 읽어 달라는 제안을 한다.

책읽어주는 소일거리를 시작한 크레그는 책을 통해 스스로도 배움을 쌓고 기기보다 책을 통해 즐길 수 있는 매력을 발견한다. 부자는 돈에 대한 남다른 신념이 있고 세상사를 자기 중심의 힘으로 살아온 고독한 늙은이이지만 아직 혜안이 있었고 두 사람의 관계에서 소년은 오래된 책읽기에서 낡은 책 냄새에 익숙해져 간다.



크래그가 책을 읽어 주러 간 화요일, 그날은 그 집에 소속된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노인이 사망한 것을 발견한다.



장례식 이후 노인에 대한 연민과 아쉬움, 또 그리움에

죽은 노인에게 전화를 하는 소년은 뜻밖에 응답을 받게 된다.

이별의 관에 누운 노인의 호주머니에 넣어 둔 전화기를 누가 받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생각보다 깊은 여운에 저자가 킹이 아니었다면 추리소설이라기 보다 인간의 내면을 좀 들여다 보는 심리책으로 남겨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번을 여전히 내게는 같은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에 전화했다가

이미 다른 사람의 번호가 된 것을 알고

아차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소년도 노인을 사랑했던 것이다. 외로운 이들의 사별을 극복하는 소심한 방식.


그러나

소년과 노인의 전화기는 둘만의 은밀한 비밀 같은 것이었기에

마음 전달의 통로로 남을 수 있었으나

전적인 지지와 사랑 너머

갈수록 전개되는 사건에 따라


뭔가 잘못되어감을

알아간다.


스스로의 윤리와 이반되는

초월적 현상에 양심의 갈등을 겪고

이 힘을

끊어버리는 과정이 첫 장면이었다는 것이 연결되며

마치 세례식에

죄를 끊어 버리겠습니까?

하는 사제의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이 세상의 불공정이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한다고

매순간 허공에 돌팔매를 하는 내게

짜릿한 유혹이기도 하지만

결코 인간의 의지로 악을 누를 수 없음이 무겁게 다가왔다.


소년이 가책 받는 부분에서 역시 나는 잘 살아왔고 순수하다는 말이

거짓일지 모른다는 역시 위선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세상에 대해 침묵하고싶다는 마음마져 들었다.


그런  힘이 내게 있다면

모르는 척 눈감고 살 수 있을까.

적지 않은 파도를 넘겠지.


작가의 이전글 미련했네 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