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noh Nov 21. 2022

그녀의 부심

반찬의 정의


오징어채를 사서 열심 볶아본다

내 입맛이 뭐냐

고추장 농도 짙게

달콤 짭쪼름해야 반찬이지!

그러나 누군가의 부심은

길이가 일정해야 하고

색은 연하게

건강한 통깨의 엣지까지 곁들여야

건강한 입맛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생의 절실한 의미일 수 있다.

그걸 심지어 고집하는 모습이 장엄하기까지 하다.

나의 입맛은

타인의 성대한 정성의 일부를 흠모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그 훌륭하다는 맛은 내 맛이 아니다.


반찬만들기로

자기만의 부심이 있다는 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나의 글쓰기는 나만 웃기거나 허탈하거나 간과하기에 아까운  맨밥같은 일상 의 반찬꺼리에 대한 고발이다.


오늘 나의 고발은

가족에 대한 부심 강한 여인이다.


몇년 전

연락뜸해지고 우연히 길에서 만났을 땐 그녀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마치 625이후 생환한 이산가족 처럼

붙들고 호들갑이라~

거리의 민망함을 자제하고 만날 날을 정했다.


막상 만나기로 한 토요일,

그녀는 오자마자 자신은 잠시 후 가야한다고~

갑자기 가족의 일정이 생겼단다

한편으론 나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지. 하고 자위를 했지만

먹던 아이스크림 빼앗긴 애처럼 서먹서먹 울컥하며

떠나는 그녀의 자취에 혼자남은 번화한 거리의 민망함은 내몫으로

허탈함을 더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길을 걷다 또 만나며

이사온 우리 집으로 한번 놀러오겠단다.


 유붕이 있어 자원방래면 불역열호아~~


나같은 샌님은 또 이런 걸 마다하지 못해 일정을 잡았다.


한때 같은 일을 하며 지치고 힘들 때

밤늦게까지 (식구들이 옆방에 알아서 자도록 두고)집에 오라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일의 스트레스를 날리던 동료.

나의 부심은 진지한 대화인가!

그때 난 그게 참 위안이 됐고

입담좋은 그녀와의 대화가

꽤 즐거웠다.

언젠가는 모처럼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해서

닭도리탕을 한솥해 놨다고

귀중한 자녀들의 몫을 나눠 먹이기까지 해서


그보다 또 감사한 일이 내겐 없었다.


그런 기억의 흔적으로 나는 그녀와의 약속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늘 오전 그녀는 내 집에 오기로 했고

조금전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가족의 일이 있어 늦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다음에 보자고 했다.

빙고!

삐진 거 맞다.


그래서이 샌님기질은 이제

다음에는 약속을 잡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리도 후다닥 잘 하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이었고

나는 하필 번번히

그녀의 가족 밥차려주는 부심에 밀린다.

그냥 오늘 오전의 햇살은 나혼자 즐기고

그녀는 또 열심히 자기집 남자들을 위해 밥을 차리고~~~


길가다 또 만나게 될 지 모르지만


난 오늘도 봄빛같은 늦가을 하늘 빛을 즐기며

시뻘건 오징어채를

상상으로만 볶고 묻히고.

그녀의 부심은 그녀를 꽉 채우게

놔두고~



작가의 이전글 모든 글은 행복하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