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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noh Jan 08. 2023

아버지의 해방일지

미추리독서모임 프롤로그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장편소설 2022년 9월 초판.



다른 각도, 다른 인생이지만 나와 내 아버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해서 읽으며 그리움을 느끼는 책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내 아버지도 처음 내게 가르쳐준 노래가 클레멘타인이었고

자라면서 이 노래의 슬픈 스토리를 애써 외면하며 그저 추억으로만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 고아리가 고상욱 씨와 불렀던 그 노래는 어쩌면 더 많은 이들이 향유했을지도 모르지요.

 

자전적 소설은 어디에서고 읽는 이의 이야기와 겹치게 되는데 이 소설은 특히 교집합 지점이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문학작품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빨치산이라는 한국사의 아픔의 흔적을 보여주는 고상욱 씨는 나와는 먼 타인이었습니다. 안성기, 최진실이 나왔던 영화 남부군을 보며, 조금 이해하고 있는 정도에다가 93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가 북송되며 한번 존재를 알게 된 게 전부였습니다. 연좌제야 여기저기 문학작품에도 많이 나오니 사시간이 아니고라도 들어 알고 있던 것이었구요. 더러 어디선가 이런 개념들을 볼 수밖에 없는 게 아직도 색깔론을 운운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기성세대이기 때문이겠죠.


 소설에서 빨치산 출신인 그를 시대의 이념화된 표상으로 한물간 꼰대쯤으로 바라볼 때는 그저 그런 시대의 산물이었을 거라 여기고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50이 다 된 딸 아리가 아버지가 남겨놓은 타인들의 거리를 퍼즐을 맞추듯 소개하며 자신의 거리에서 바라보게 되는 순간, 그녀가 느낀 아버지의 존재감처럼, 내게도 엄청난 폭풍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서러움이 다가왔습니다.




 떠나간 부모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이 오죽 먹먹할지... 남북의 과제를 안고 있는 이들의 역사바로 세우기는 또 아직 아련하지 않습니까. 신경 써봤자 해결되지 않는 지역문제, 정치문제를 내던지고 싶은 때가 또  지금의 현실이니 다시 우공이산으로 산을 옮기기에는 함께할 동지가 없음이 각박한 것 아니겠습니까.


혼자서 바위에 계란을 던지다가도 주춤주춤 손을 털고 마는 내 세대에는 친구도 뭣도 다  포기하고 싶은 이기적인 시절이기도 하구요ㅠㅠ.


 그러나 이 소설에서 무던히 고독하게 산을 옮기는 고상욱 씨를 보며... 잠깐 생각에 잠깁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지금의 시대는 남겨줄 게 아무것도 없는데... 각자도생으로 살아가게 되는 불신이 얼마나 큰 시대인가요, 저만 그런가요.




여세추이.

 내 아버지도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더욱 어색했고 안타까웠습니다.

 한 예로 사회적 품위의 시간을 위해 지출을 하는 것보다 고독을 선택한 울 아버지.

“왜 아버지는 남들과 달라요?”

 그냥 세상을 남들처럼 끼어살면 되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시절, 결코 알지 못했던 인간의 무게가 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훌딱 뛰어넘어 어느덧 중년이 되자 놀랍게도 내가 지탄했던 아버지의 머뭇거리는 행동이 이해되고 나 역시 그의 삶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이해할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무리가 있더군요. 어린 치기에 잘난 척했던 부끄러움이 미안함과 함께 남습니다.


 더 잘 보내드릴 것을. 왜 마주할 때는 알아보지 못했을까.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질곡의 시간 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 아버지의 모습이 내가 비로소 나 어릴 때의 그의 나이가 되어보니 알게 되더라는 식상한 이야기가 너무나 미안한 간절함이 되어 버립니다.


 먼발치서 의지할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고 싶어 했던 그의 빈자리를 가슴 한 곳에 두고 뒤돌아 나의 세상을 살아야 했고 어느 순간 나도 서서히 언덕이 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나 역시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지금의 삶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있습니다. 더 잃을 것도 쌓을 것도 없는 세상에서 이 시간을 오늘처럼 이렇게 살아가는 게 해방을 위한 둘도 없는 선택이지요.


 그간 뜨문뜨문 감질나게 펼쳐보던 것을 새벽부터 날 잡아 죄다 읽어버리니 속이 시원합니다. 우리가 만나기 전 한번 더 읽을 시간이 허락되기 바라며 모임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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