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뎌 햇감자의 껍질을 벗기었다. 살살 벗겨도 쉽게 벗겨져 오히려 숟가락이 필요했다. 깎이칼에 껴서 일이 더디니 배고픈 맘에 속이 탔다.
잠시 담그어 놓았을 뿐인데도 햇감자라 뽀얀 속살이 비친다.
이러면서 자꾸 또 옛날 생각. 주착없이 마구 떠오르는 어릴 때 일들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닌 것같아 속상하다. 내 머릿속 파노라마는 언니가 양푼에 감자를 한가득 안고 숟가락으로 껍질을 긁던 일도 생각나고 엄마가 나더러 감자껍질 벗기라 했던 일도 떠오른다. 그땐 정말 많이 벗기던 감자이다. 손목에 따끔따끔하게 흙물이 간질거릴 정도로 많은 양의 젖은 감자껍질을 벗겼다.그거 다 뭐 해먹었을까? 쪄먹었을 거라 본다.
어제 감자를 사야 한다니
딸애는 왜 그렇게 감자에 집착하느냐고 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온통 감자 생각뿐이라 내가 미쳐가는 것 아닌가 치매초기 증상이지는 않을까 탄수화물 중독의 다른 병증이 아닐까 고민스럽다.
오늘도 교육이 있다고 나오라는 줄 알고 출근했더만 온라인이라 집에서 받아도 되는 것이었다. 교육장에 덩그라니 나만 혼자 내 스마트폰으로 교육을 받았다. 너무 쓸쓸했다. 간 김에 행정업무를 보는데 20대 직원의
그것도 기억 못하냐는 힐책을 듣고, 또 한없이 감자 생각이 났다.있지, 너도 좀지나봐라. 자괴감생길일 수도 없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아까는 미안했는지 점심 안 먹고 가냐는 목소리에 됐다고 하면서도 내심 목소리가 떨렸다. 집에가서 감자나 쪄야겠다. 혹시 이런 게 감자공황장애 일까?
선선한 초여름 바람과 비온뒤 푸른 나뭇잎에 좋다가도 사람들이 모였을 전철역 입구에서 썬글라스 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옷깃을 올렸다.
내 코트의 색도연한 감자색이었다.
전철 유리문에 비친 감자같은 내 얼굴이마스크 안에 숨겨져 있다.오늘 헤어도 감자껍질 붙어있듯 꼬불거린다. 베티붑 ㅋㅋ 감자여인.
요즘은 마스크를 안 해도 되지만, 나의 벗은 얼굴에 아직 코로나를두려워하는 전철 승객이 있을까봐 마스크를 끈에 걸고 다닌다. 플랫폼에 환승을 기다리는 남녀노소의 승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안전에 대한 깊은 우려이겠지만 나는 그들이 우려할까 마스크를 쓰고 전철에 탄다. 이런! 돌고도는 기우병이 있나ㅜㅜ. 나도 모르게 감자처럼 등을 구부렸네, 등을 펴자!
바람탓에 감자색 코트를 입고 나왔는데때는 여름으로달려가고 롱코트를 즐기는 여인은 터널 속 감자가 되어 지하도를 감자처럼 굴러 돌아왔다.
그리곤 허기진 뱃속을 위해 점심을 챙겨 먹기보다 먼저 어제 사서 개봉도 못한 감자박스를 위해 커터를 찾았다. 잔인하게 도륙하듯 테이프를 쫙쫙 갈라~ 개봉하고 열 두개의 감자를 물에 담갔다.
그 감자가 지금 냄비 속에서 다 익었을 시간이다.
귀여운 감자의 폭폭한 노란 향에 졸린 나는 그리로 빨려든다. 아! 감자 향 속에 블랙홀이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