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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noh May 09. 2023

생명줄

제 몸의 소생길 찾아 뿌리를 내린다

로즈허브

얘는 가볍게 톡 치면 향을 내고 힘이 조금 더해지면 툭 부러진다. 빨래를 널다가 떨어뜨려  툭 떨어진 작은 송이를 그대로 버려지게도 할 수 있지만, 미안한 마음에 주워다 물병에 꽂아둔다.

처음에는 우연히 화병처럼 꽂아두었던 것이 며칠 후 가느다란 뿌리를 내린 것을 보고

앗!

살아간다. 살아지네!

소생을 느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그 흔하고 여린 생명에게 삶을 이어가는 과정을 맞이하게 됐다. 내가 무슨 조물주가 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찍 내쳐질 수 있었던 생명력에 대한 연민줄이라 할까. 부질없음과 그래도 끈질긴 인연의 중간지점에 태양아래 숨 쉬는 것들에 대한 존중이랄까.

모든 것이 한번 내쳐지면 먼지가 되어갈 터이지만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미련퉁이 같은 짓을 하는 허탈함까지 감수하다 보니 어느덧 생명의 존재가 기운을 준다.

거창한 취미의 정원가꾸기 집중까지는 아니지만

그동안 거칠게 지나온 인연들에 대한 보시랄까




 나는 결코 그의 존엄을 위태롭게 하려던 것이 아닌데 그 개인의 세상독법은 오만한 우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도 달리 이해를 구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찰나~ 왜 이다지도 거리는 구질구질할까. 도대체 도 닦는 구도자가 되었다고 서명을 하고 간판 걸어야만 세상은 명확해질 수 있는 것일까. 부유하는 정체성의 명함이 그렇게도  오염적인데 어느 언덕에 내 깃발이 꽂히며 이젠 좀 편안히 갈 수 있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지난달 독서모임에서 처음 뵌 분의 밝은 미소에 뿌듯함으로 며칠을 즐거워했지만 그분의 끝말로 인해 다시 사색에 잠긴다.

"꼭 이제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았구나 싶으면 바로 아니게 되거든요."

그래왔지 않은가. 오래된 관계, 즉 "친구"가 된다는 것은 정말 많은 시공의 거침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부터는  블랙홀 같은 모호함에 빠져 쉽게 믿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믿었다는 순간 이후 나의 착각이었다는 현실에 이르니까. 그래서 종종 경계하고 가식을 무기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애씀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얼마나 허탈한까.  그런 연후에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스스로로부터 내뿜는 장막에 숨을 쉴 수는 있을까.




종종

"누구나를 사랑하고 싶어요."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선험자를 보면  내가 식스센스의 주인공이 되는 착각을 느끼게 된다.

말이라도 예쁘게 발라놓으면 자기 포장이 만족스러울까. 왜 자연스럽게 사랑할 수 없을까. 그가 잘했다는 그 말에 당혹스럽더라도 박수가 나오면 안 되었을까. 있는 그대로 말하면 낮아지거나 실례가 되니까 얼마나 많은 고민과 배려를 통해 관계의 거리를 진실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사회에서 과연 이런 것들이 이상이 아닌 존재의 가치가 되며 성장할 수 있을까.

앉은김에

아침독서 잠깐 하려다가 로즈허브를 보며 단상에 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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